시원했던 산악지역을 벗어나니 엄청난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목표로 했던 청두시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마지막 날 잘못된 만남으로 의지에 반해 주행을 했다.
밤 늦은시각 목표지점에 겨우 도착, 횡단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후베이 지역을 벗어나 사천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전에 통과한 지역은 800m 이상되던 고산지대였다. 그래서 에어콘 없이도 잘 버텼고, 모기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후베이를 벗어난 사천지역은 그야말로 극성더위였다.
아침 기온이 뉴스 보도상 30도를 조금 웃돌았다. 보통이면 그것도 더운 온도이겠으나, 낮에 얼마나 더웠는지 30도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공기를 가득 메운 수증기,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거의 정신을 빼앗았다.
그 때문에 음료를 많이 찾았고 음료는 포만감과 함께 식욕을 떨어뜨렸다. 그 이유 때문에 점심을 거르기가 일쑤였고, 그 때문에 더 허기지고 음료를 찾고 그러다가 구역질과 어지럼증을 동반한 일사병 또는 열사병 초기증세가 많이 나타났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 엎드려서 한시간씩 자기도 하고, 약국같은데서 두시간씩 앉아있다가 가기도 했다. 물론 나무아래나 버스정류장 같은 것이 나타나면 거기서 한참동안 앉아쉬는건 다반사.
그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숙소는 아주 고마웠다. 숙소를 정할 때 따뜻한 물이 나오냐고 항상 묻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사천지방엔 차가운 물이 안나왔다. 낮동안 뜨거운 공기와 태양으로 달궈진 수돗물은 미적지근 할 뿐이지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는 차가운 물이 너무나 너무나 그리웠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그 때 뉴스를 통해 보도되던 최고기온은 40도를 넘지 않았다. 항상 39.5도 뭐 이런식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중국에서 유학을 오래한 사람이 얘길 해주었다.
‘중국의 법에는 40도가 넘어가면 모든 작업장은 쉬게되어 있다고, 그래서 뉴스에는 그거보다 낮은 온도로 내보낸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그 때의 온도는 40도가 아니라 40도를 웃도는 날씨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팔트에 줄 곧 있었으니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모든 방송을 정부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래도 온도를 속여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그런 파렴치한 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나마 뜨겁고 매운 ‘사천쇠고기국수’(스촨니우로우미엔)가 있었기에 힘든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중국 횡단 목표지점인 ‘청두시’가 점점 가까워졌고, 결국 90km 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미 그 때 90km 가까이 달린 시점이라 어찌할까 고민은 했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쉬고 다음날 이른시간에 영광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그 날 저녁까지 달려 영광을 맞이할 것인가.
때마침 ‘청두시’로 향하는 중국소년이 함께가자고 하여 점심을 먹어야 하는 것도 깜빡하고 못이기는 척 출발했다. 예상했었던 오르막길이 나왔다. 소년은 조금만 가면 된다고 이야기하며 재촉했지만 식사도 굶고 이미 하루치의 거리를 달린 이후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가파른 오르막길도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갔으며 도중에 나오는 숙소가 있으면 무조건 자고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숙소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겨우겨우 해질녘이 되어 정상에 도착했다.
소년은 이 내리막만 내려가면 청두시라고 했다. 기쁜 마음에 어서가자고 이제 중국횡단은 끝이라고 얘길했다. 포장이 많이 벗겨진 내리막을 한참을 내려가니 도시가 나왔다. 소년에게 ‘쩌리청두마?’(여기가 청두야?)라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리를 지르고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복받쳐 올라왔다.
비교적 번화된 곳에 잠시 멈추어 그곳 이정표와 유스호스텔이 표시된 지도를 대조해보며 나의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하지만 그곳 이정표와 비슷한 지명은 눈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 이상하여 그 소년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어보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청두 바로 옆에 있는 도시라고 했다.
그곳에서 청두까지는 20여km 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흥분하여 여기가 맞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았다. 횡단 목표지점이 바로 20km 앞에 있는데 그만두기가 뭣하여 그대로 가기로 하곤 그 소년에게 네 갈 길을 가라고 했다. 그 소년 역시 청두까지 가야한다며 함께가자고 했다.
도로의 전등이 있냐고 물었을 때 있다고 대답하여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는데, 도중에 불빛은 끊어지고 암흑속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또,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굶은 상태라 몸과 정신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콜라와 쥬스를 많이 마신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 속이 메스꺼운 것은 물론 무엇인가 제대로 판단하기도 힘들었다. 그날의 암흑주행은 그렇게 정상적이지 못했다.
밤 9시가 다되어 청두시 끄트머리에 닿았다. 그도 나도 너무 배가고픈 나머지 길에서 파는 훠궈를 조금 먹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어디로 들어가는 것인지. 길을 알려주겠다며 계속 같이 오던 그가 고맙기도 하면서 귀찮게도 느껴졌다.
괜찮다고 하며, 길 찾는 것은 내 전문이라며 다음날 밥 사주겠다고 꼭 유스호스텔로 찾아오라고 하곤 겨우 그를 돌려보냈다. 생각보다 매우 큰 청두시 도로, 한참을 헤메어 목표로 했던 지점에 11시가 한참넘어 도착했다. 하지만 가려했던 유스호스텔은 보이지 않아 주변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청두는 정말 뜻 깊은 곳이었다. 중국 횡단의 서쪽 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침략하여 보통 티베트 까지 중국으로 보지만 나는 결코 티베트를 중국으로 보지 않는다. 청두에서 티베트 국경(자치구 경계)까지도 거리가 좀 있지만 실제로 티베트 땅은 지금 사천지방으로 편입된 청두 서쪽의 고산지역까지 이다.
물론 그곳엔 아직까지도 티베트인들과 티베트 문화가 그대로다. 그런 이유에서 중국의 횡단 마지막 대도시라 기쁜 마음에 도착해야 했지만 밤이 늦은 시각인데다가 배까지 곯아서, 거의 죽을똥 살똥 하는 상황. 여관 침대에서 숨을 쉑쉑 거리며 옅은 미소를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40일간의 2700km 상하이 – 청두 중국횡단은 그렇게 조용히 끝이났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