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시작된 산악지역, 이번에는 더 험했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토가족이 사는 지역
갑작스레 만난 터널, 공포스러웠지만 통과완료
장강을 건넌 이후부터는 줄곧 산악지대였다. 미리 ‘구글어스’의 위성사진으로 대단한 산악지형이라는 것을 확인했기에 마음의 준비는 했었다. 하지만 그곳은 페달을 밟는 힘만으로 결코 정상을 내 주는 법이 없었다. 거의 항상 반 이상은 걸어야만 하는 긴 오르막들이었다. 그곳 산지의 특징은 위쪽은 둥글둥글하니 유순할 것 같은데, 아래쪽은 간담이 서늘하리만큼 깍아지른 날카로운 절벽이었다. 그런 이유로 산 봉들이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루어진 것보다 대부분 띄엄띄엄 된 것이었다. 하나의 긴 오르막을 오른 이후, 건너편 산 주변에 도로가 지나는 것을 볼 때면, 허탈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수키로를 내려가 다시 그곳으로 오르는 수밖에.
그곳은 주로 옥수수를 수확하며 살아가는 토가족 본거지였다. 무슨무슨 자치구라는 것이 아니어서 그 지역을 한참이나 통과한 이후에 그 사실을 알게되었다. 가게에서 무엇인가 사려고 할 때면 언제든 쫓아와서는 삶거나 구운 옥수수를 팔려고 했다. 대부분 잘 구어진 맛있는 옥수수라 몇 번을 사먹었었다. 가파른 산지를 일궈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후베이 성에서 사천지방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몇일동안의 오르막길을 보상하려는지 완만하고 긴 내리막을 선사했고, 그 뿐만 아니라 기가막힌 풍경도 선사했다. 바위가 드러난 산이 많이 있었는데, 마치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보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런 산 아래에도 꼬박꼬박 토가족이 땅을 일구며 살고 있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아니나 다를까 깊은 터널이 하나 나오고야 말았다. 중국에서 수백키로에 이르는 산길을 달렸지만 터널하나 만나지 못했었다. 터널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적 두 번 만난적이 있었다. 그것을 경험하고 터널을 통과하기보다 다음부터는 그 위로 난 산길을 이용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 위로 길을 낼 수도 없는 절벽을 뚫은 터널.
터널 앞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었다. 다시 돌아가 다른길로 갈까, 버스를 기다렸다가 버스로 갈까 어떻게 하지. 그러다 결국 터널을 통과하기로 맘을 먹곤, 터널 안을 살펴보았다. 반대편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전등도 하나 없는 암울한 터널이었다. 깊숙이 박혀있던 후방 안전등과 전방 등을 꺼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탓에 불빛은 가물가물했다. 아무래도 그런 상태로 터널통과는 무리인 것 같아 지나는 차량에 부탁을 해서 불빛을 밝혀달라 부탁 하려했다. 하지만 손을 흔들어 봐도 내리막길을 세차게 내려오는 차량들이 멈출리 만무했다. 그 와중에 토가족 할머니, 아주머니, 아이들은 나에게 와르르 몰려와서는 옥수수 하나 팔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엔 그들이 얼마나 미운지. 옥수수를 딱 두 개만 사서는 묘약이라 생각하며 우드득 우드득 씹었다. 암울한 터널을 바라보며.
차량이 거의 오지않는 틈을 타 페달을 밟았다. 가물가물한 내 전등 불빛은 터널 속에서 다 흡수가 되는지 있으나 없으나. 다행히 조금만 들어가니 반대편 출구가 조그맣게 보였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방향으로 빠르게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불빛은 입구 근처 몇미터만 밝게 비출 뿐이지 나머지는 그대로 깜깜했다. 빛이 터널속으로 들어오면 터널의 어둠이 그것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것 같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순간 갑자기 ‘툭’하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렸다. 겨우 멈추어 상황을 살펴보니 앞바퀴 양쪽으로 달린 짐가방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아무래도 도로 오른편 높은 하수도에 가방이 걸린 것 같았다. 자전거를 조심스레 기대세우곤 땅을 헛짚어가며 가방을 찾았다. 공포 영화만을 봐도 무서움에 몇일 밤잠을 설치는 나다. 그 순간은 그런 공포영화속에 내가 들어가있는 듯 했다. 마주오는 차량의 소리는 식인괴물이 소리를 치며 달려오는 듯 했고, 빛을 먹는 어두운 터널 벽으로부터는 ‘좀비’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듯 했다. 가방을 찾고는 ‘넌 악의 굴이야’라고 소리를 치고 겨우 터널을 빠져나왔다. 터널 이후의 하늘은 신기하리만큼 변해있었다. 태양빛이 두터운 구름사이로 삐쳐나오는 멋진 모습은 일정한 통과의례를 거친 후의 축하잔치 같은 느낌이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