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서 벗어나 육지지역으로 들어선 후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잠깐 넘어가는 언덕일 것 같던 그 오르막은 오른 이후 내려가질 않았다. 빠져나오기전 두터운 비구름을 만나 온몸을 흠뻑 적시는 경험을 했지만 거짓말 같이 오르막 끝을 지난 후 부터는 조그만 구름조차 볼 수 없었다. 물론 뒤돌아 본 그곳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른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왔고, 평소에도 그렇게 부는지 산마루 곳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그 바람때문인지 식물의 키도 작아졌고, 나무도 성글게 자라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스페인 넘어와서 거의 처음 만나는 새파란 하늘이었다. 그러나 비가 더 이상 오지않아 즐거운 것은 잠깐이었다. 마르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어 밥을 해먹기 위한 그늘도 드물었다. 도중에 만나는 작은 마을엔 행인도, 담소를 나누는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아 그늘의 온도와 바람의 온도가 낮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목적지는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마드리드를 돌아 포르투갈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뿐이었다. 그저 이제 고생을 끝내고 어서 가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세고비아’에 도착하기 전까지 특별한 관광지도 없었고, 야영장도 없었다. 해가뜨면 아침을 먹고 페달질을 하는 것. 저녁이 되면 대충 자리 찾아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 마른풍경과 추수가 끝난 황량한 밀밭을 바라보는 것도 처음엔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황량한 지역을 달린지 이틀째 되던 날, 무심결에 조그만 세계지도 책을 펼쳐보았다. 그 책에는 지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지리정보도 나와있었다. 그 책에 의하면 내가 달리는 그곳은 스텝지역에 속했다. 뜨거운 건조기후와 성글한 나무들을 보고 그럴 것 같다고 판단은 했지만, 넓게 퍼진 올리브 나무와 밀밭 때문에 설마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당연히 별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저녁을 먹고난 후 해가지길 기다렸다가 깔개를 가지고 넓은 공간에 나가 누워있었다. 사람도 없고, 차소리도 멀리에서 스치고 지나가기에 별밤을 느끼기에 최적의 조건. 예상했던대로 별은 하나둘씩 나타나다가 수십개씩, 수백개씩, 수만개씩 늘어갔다. 날짜도 그믐에 가까웠으므로 달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붉게 타오르던 서쪽 하늘이 파랗게 식을 때 쯤에는 별똥별도 하나둘씩 떨어지며 소원을 빌도록 유도했다. 북두칠성뿐만 아니라 다른 별자리도 좀 알고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선을 그어가며 별자리를 만들어보았다. 여기는 자전거 자리, 저기는 사진기 자리, 저건 돈자리? 잉? 아니야 욕심을 버리자. 저건 여자친구자리, 여자친구? 미래의 여자친군지 참 눈도 크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생머리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런데 눈꼬리가 쳐졌네? 영심인가? 아니야 그러니까 훨씬 더 귀여운 것 같다. 별이 많다보니까 선을 대충 그어도 나만의 별자리가 되었다. 하지만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잊혀지고 말았다. 별자리를 만들다가 지겨워지거나 잠이 올 때서야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자크를 열어 아직도 별이 가득한지, 혹시 외계인이 조용한 이곳에 내려와 나를 구경하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확인했다. 그러다 멋쩍어져서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고개를 넣었다.
그 지역을 지나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맞바람이 세게 불어와 몸은 힘들어 했지만 매일밤 하늘은 하얀빛의 모래밭을 광활하게 보여주었기에. 5000미터가 넘는 티베트 고개에서 별을 보려다 실패한 후, 이란에서 꼭 볼 거라고 다짐했지만 각종 사건으로 실패, 그리스 무지개 동산에서 하루를 즐겼지만 아쉬움이 많았었다. 몇일동안이나 너무 자유롭게 주행하고 밤하늘을 느끼며 “자전거 여행은 역시 이런 맛이야!”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