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편_칭챙총 놀리던 아이들, 내 앞에서 싸대기 날린 아빠

세고비아(Segovia)에 위치한 세고비아 로마 수도교(Acueducto de Segovia).

거센 맞바람을 힘겹게 맞서며 세고비아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바람대로 시 외곽에 대형 마켓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고원지대를 넘어오며 싱싱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상상을 했었는데 물건너 가버린 것이다. ‘역시 도시는 내 체질이 아니야’라고 투덜거리며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중심가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이어서 더욱 더 짜증나게 했다. ‘고기도 못 먹는데 힘까지 빼다니!’

오르막의 끝에는 나를 놀라게 하는 건축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기둥’이었다. ‘아!’ 예전 어떤 책에서 얼핏 본 적이 있는 로마시대의 수로였다. 규모가 어리둥절하게 할 만큼 컸다. 그리고 수로가 있는 그 곳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짜증이 나야만 정상이지만 있던 짜증까지 싹 씻겨 내려간 것이, 아마도 도심에서 좋은 느낌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정보센터에서 얻은 지도는 그곳은 굉장한 관광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 야영장 역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세고비아를 구경하기로 정했다.

다음날 아침, 세고비아를 아침부터 구경하기 위해 일찍부터 움직였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울퉁불퉁해진 피부를 세면대 위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그 끝에 있는 꼬마 둘이 나를 보고 키득키득 자꾸만 웃길래 나의 얼굴에 뭔가가 묻었나 싶어서 더욱 자세하게 살폈다. 

샤워장 안에 있던 아저씨가 나가고 나자, 그 꼬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칭챙총’하며 깔깔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역시! 웃는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았어!’. 열 살정도로 보이는 파란눈의 꼬마들이었다. 기분이 상한 것은 둘째치고, 갑자기 정수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이란에서도 그토록 놀림받았지만 유럽에서는 덜한 편이라 웬만하면 넘어갔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이고, 이렇게 내버려 두었다간 안되겠다싶어 영어로 아빠가 어딨냐고 소리쳤다. 당황하는 표정이었을 뿐 다행히 울진 않았다. 동양인이 화내는 것이라 나름대로 재미있었나보다. 말을 못알아 듣는 것 같아 만국 공통 아버지 명칭 ‘빠빠’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듣고 손으로 가리켰다. 데려오라고 말했지만 내가 가는 것이 빨랐다. 그 꼬마들을 따라 갔더니 그곳에 그들의 부모님들이 있었다.

“영어할줄 아세요?”
“네 할줄 알아요.”
“이 아이들이 저보고 칭챙총이라 부르네요. 왜 그런….”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꼬마의 뺨을 거세게 한방 날려버렸다. 그리곤,

“정말 죄송합니다. 여행하는데 기분을 망친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뺨을 맞은 건 꼬마였지만 놀란 것은 나를 포함한 그 주변의 사람들 모두였다. 심장이 철렁하며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왜 칭챙총이라고 놀리느냐? 뭘 잘못했느냐? 등 몇마디 하고싶은 말은 했지만, 내가 그들의 기분을 망친 것인가, 그 꼬마들이 내 기분을 망친것인가 혼란스러웠다.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서로 악수하며 헤어졌지만 찝찝함은 야영장을 벗어나기까지 계속됐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