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편_문화유산 가득한 세고비아.

2000년 전에 만든 수로임에도 어떻게 이렇게 잘 유지가 되었는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흔치 않게 16세기에 건설된 고딕 양식 성당 "고딕의 마지막 숨결" 이라고 부른다.
수로와 수로 아래 식당. 지나고 나니 아쉬운게 이런 식당에서 밥을 먹었어야.
광장에서 바라본 수로
건물 사이로도 이렇게 보였다.

 자전거를 한쪽 구석에 묶어놓고 도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처음보인 것이 어제 놀라움을 긁어냈던 로마시대 수로, 그러니까 한참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에 몇몇의 총알자국 이외에는 거의 멀쩡했다. 거대한 돌들이 쌓아져 있었는데 사이사이에 흙이나 시멘트 등 어떠한 물질도 발라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돌들은 서로의 힘에 의해 서 있다는 것인데, 그저 감탄사만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증은 차치하고 그 수로 자체가 예술작품처럼 감동을 주었다.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어째서 내가 저것에 감동을 받을까’하며 골목길을 걸어갔다. 멀리서 손풍금 소리가 골목으로 스며들어 길 좌우 돌벽에 부딪히며 다가왔다. 조금 더 걸어가자 손풍금 소리에 ‘뽀뽀해 주세요’라고 하는 ‘베사 메 무쵸’ 노래자락이 덧씌워졌다. ‘어디 가게에서 연주를 하고있나보다’하곤 이곳저곳 들여다봐도 낌새가 없었다. 그러다 그 골목 끝에서 소리가 직접 들렸는데, 얼굴도 초라하고 옷차림도 초라한 한 아저씨가 빈깡통을 발치에 두고 손풍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래서 스페인이구나!!’ 

노래가 너무 듣기좋아 그 옆에 앉아서 주변을 구경했다. 아무래도 그 음악에 취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보였다. 노래를 한참을 듣고나서 깡통에다 감상료 1유로를 넣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그라체’라고 인사를 해 잠시 당황했다. (스페인어로 고맙다는 ‘그라시아스’, 이탈리아어로 ‘그라체’)

골목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그 끝에는 시의 중심이 되는 ‘마요르’광장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야채시장과 성당이 서 있었다.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흔하게 봤던 네모진 성당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각 모서리에 뾰족한 나무가 선 것 같은 조각이 있었고, 흔하디 흔한 외벽의 인물 부조도 없었다. 다른 곳의 성당과 비교해봤을 때 분명 단순한 모양이었으므로 좀 덜 감동적이어야 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 도시의 기운 때문인지 그 건물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웬만하면 비싼 입장료 때문에 내부로 들어가길 꺼리는데, 머릿속 생각과는 틀리게 마음은 성당안으로 이끌었다.

성당 크기에 비해 좁다란 문을 통해 들어간 그곳. 바깥의 소음은 거의 완전히 차단되고 특별한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 그 소리는 도저히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높고 넓은 성당 내부를 몇 번이나 튕긴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벽에서도, 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소리가 나오는 것 같았다. 리듬은 지칠정도로 빠르게 흘러갔지만 소리는 결코 그 리듬을 쫓아가지 않고 느긋하게 따라갔다. 

성당내부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겹치고, 거기에다 슬픈눈을 가진 예수님 상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종교에 빠질 것만 같았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분위기를 느꼈다. 아무래도 종교의 사원은 인간에게 감동을 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더욱 더 예술적으로, 웅장하게 발달한 것은 아닐까.

시에스타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알카사르성’이다. 사실, 로마시대 수로와 성당에서 충분한 감동을 느꼈기에 빼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좀 덥기도 해 귀찮았다. 그래도 해도 좀 기울었고, 시간도 남았기에 긴 골목을 거쳐 그곳에 당도했다.

‘풋’ 기가차서 입안으로부터 자연스레 나온 소리다. 세고비아는 오늘날 기껏해야 몇만명도 안되는 소규모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 성은 무엇인가! 아니 오늘 보았던 수로와 성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은 도시에 뒷골이 서늘한 이 건물들은 도대체 뭐냐 말이다. 아마도 과거에는 대단한 권력자가 이 곳에 살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살았음이 확실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성을 보고 바로 생각난 것이 놀이동산의 성이다. 아무래도 유럽 및 미국산 동화속에서 성이 자주 출연한 탓일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구석 돌아볼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공개해 놓은 공간만 해도 충분했다. 내부는 어찌나 화려한지, 다른 곳에서 본 성과는 달리 깔끔하고 아름답게 복원되어 있었다. 중세시대에 사용되었던 여러 가지 물건들, 의자나 카펫, 철갑옷과 대포도 있었다. 또, 성 탑에도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넓은 평원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성은 월트디즈니의 만화 백설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너무나 훌륭한 관광지였다. 아침에 야영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여러모로 그 곳 세고비아는 나에게 충분한 감동과 휴식을 주었다. 훌륭한 건축물들이 즐비했고, 아름다운 음악과 평온한 분위기 등등 관광지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포르투갈은 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흔치 않게 16세기에 건설된 고딕 양식 성당 "고딕의 마지막 숨결" 이라고 부른다.
세고비아 대성당
대성당 내부. 정말정말 높았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마침 연습시간이어서 어마어마한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천장도 일반형 돔이 아니라 문양이 크게 들어가 있었다.
알카사르 데 세고비아(Alcázar de Segovia). 동화 속 성 같은 외관으로 디즈니 영화 「신데렐라 성」에 영감을 준 성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래에서 알카사르 데 세고비아를 바라본 모습.
알카사르 데 세고비아(Alcázar de Segovia)
성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원지대.
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성벽 위에는 병사가 올라가서 공격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세고비아 시대를 바라본 모습. 세고비아 대성당이 보인다.
알카사르 데 세고비아(Alcázar de Segovia)의 성탑. 가까이에서 보면 부정형 바위로 쌓고, 틈새를 메꾸었다.
성 내부의 갑옷. 말도 타고 있다.
왕과 왕비의 자리.
내부가 어마어마하게 화려했다.
해질 녘 그림자놀이.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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