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편_기념사진이 무슨 소용. 그냥가자. 얼른가자.

양떼들에 이어 소떼도 있었다.
아빌라의 성벽에서 기념사진.
정말로 어마어마한 유적지였건만, 날 붙잡진 못했다.
기가 막힌 크기, 상태였다.
수확이 끝난 밀밭 끝에서 잠을 잤다.
뭐라도 찍어볼까 해서 그동안 신고다녔던 신발을 찍었다.
일몰도 정말 아름다웠다.

세고비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빌라라고 하는 곳이 나왔다. 이곳 역시도 그저 그런 도시인줄 알았건만, 프랑스 카르카손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이는 성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로 말할 것 같으면, 대충의 느낌으로 카르카손의 시테성보다 몇배는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내부의 있는 마을 역시도 조밀했던 카르카손의 시테성 마을보다 규모자체가 틀렸다. 

또 하루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곤 여행안내소에 들러 야영장의 위치를 물었다. 세고비아와 틀리게 야영장은 없었다. 유스호스텔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야영장이 없다는 소리에 그만 떠나기로 마음을 먹어버렸다. 도시 안에서는 야영을 못하고 한적한 곳에서나 자유로이 야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 째 되는날, 1300m 정도 되는 마지막 고개를 넘은 뒤 고원지대를 빠져나와 한참이나 아래로 향했다. 길은 계곡을 따라 내려갔는데, 계곡 곳곳엔 피서객들로 만원이었다. 맑은 계곡물을 그저 지나칠 수 없어 한쪽 구석에 자리잡곤 하루를 보냈다. 촉촉한 물소리가 한국의 그 흔한 계곡을 생각나게 했다.

올록볼록한 국경지대, Coria라는 도시를 지나고 나니 거의 무인지대에 가까웠다. 주도로와 떨어진 곳에 드문드문 집이 보일 뿐이었고 대부분은 거대한 목장으로 사람은 없었지만 도로에 바싹 붙은 철조망 덕분에 갑갑함을 느꼈다. 때문에 국경지대에서의 하룻밤은 도로와 가까운 곳에서 어설프게 보냈다.

드디어 마지막 나라 포르투갈이다. 야영을 한 곳에서 국경까지는 불과 10km 정도. 국경에서 기념사진을 거창하게 찍겠다고 했지만, 도착한 국경선엔 아무것도 없었다. 좁은 도랑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기념사진이 무슨소용이냐, 그냥가자’

좁다란 도랑을 하나 건넜을 뿐인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스페인은 시골마을이라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물론 프랑스쪽이 더 그랬지만) ‘역시 유럽은 틀린가봐’라는 생각을 하게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 그 국경마을은 완전 시골마을이었다. 도로정비상태도 허술했고, 집들도 허름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처음들른 구멍가게 아저씨는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신기한 식생, 너무 싼 물가, 친근한 사람들 등등 스페인 바로 옆이긴 하지만 다른 특징들이 많았다. 그래도 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집에 대한 그리움이 극대화 된 상태에서 그런 것들은 배경이 되어버렸다. 스페인까지만 하더라도 맞바람이 불었지만, 포르투갈에 들어선 이후로는 뒤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내 몸도 날고, 기분도 날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1년 2개월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사이기간동안엔 끝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솔직히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분을 항상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몇일뒤면 그토록 바라던 유라시아의 끝 도시 리스본이다.

바람님의 도움으로 페달을 밟는 족족 날아갔다. 언덕길도 많이 나왔지만 괴상하게도 하나도 힘이들지 않았다. 흥분으로 인해 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된 탓일까. 포르투갈 기착 첫 번째 도시가 ‘카스텔로 브랑코’, 두 번째가 ‘아브란테스’ 였다. 스페인까지 야영장 사용료가 10유로가 훌쩍 넘는 것에 비해 그곳은 불과 3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슈퍼물가도 너무 싼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유럽에서 한국보다 싼 곳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음에만 쫓기지 않는다면 느긋하게 쉬엄쉬엄 가도 괜찮았을 테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그런 것을 못마땅해 했다.

고원지대가 끝나고 내리막이 나왔다.
계곡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어? 코리아? 이렇게 똑같은 지명이 있다니.
야영장에서 다 정리한 후 기념사진 한 장.
포르투갈로 흘러가는 타구스 강(의 지류)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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