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종교지도자가 정치까지 맡아 나라를 꾸려갔었다. 중국이 침략하기 전 1950년대 까지만 해도 달라이 라마가 그 위치에 있었다. 또, 티베트에서는 환생을 믿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가 돌아가시더라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판단하여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아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달라이 라마라고 할지라도 어릴 적에는 어찌할 수 없었는지, 판첸라마가 섭정으로써 대신 통치를 했었다. 달라이 라마가 단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판첸라마가 통치했던 기간이 상당했다고 한다. 물론, 판첸라마 역시 환생으로써 계속된다.
라싸에는 달라이 라마가 계셔야 하는 포탈라 궁이 있고, 시가체에는 판첸라마가 계셔야 하는 타시룬포 사원이 있다. 1959년 티베트 민중봉기 후 독립이 불가하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게 되고 판첸라마는 계속 남아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가 됨은 물론 독립운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판첸라마는 돌아가셨고 전통에 따라 환생한 판첸라마를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지정한 진짜 판첸라마는 사상 최연소 정치범이 되어 바로 중국 감옥에 갇히게 되고,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의 자녀로 알려진 아이가 판첸라마로 지정되어 현재의 판첸라마 위치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판첸라마’의 힘으로 달라이 라마를 지정할 것이 뻔한데, 그 뒤에 중국공산당의 흑심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타시룬포 사원. 언덕위의 지붕이 황금색인 건물을 빼놓고 사원이라기보다 티베트 전통마을 같은 모습이었다. 희끗희끗한 무채색의 건물들이 촘촘히 세워져 있어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곳에는 역시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자꾸만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자기네 땅 마냥 키덕키덕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상상이 되어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불과 십수년 전 독립운동의 실패로 수십만명의 티베트 사람들을 중국공산당이 학살한 사실을 그들은 알고나 저럴까!
아래쪽의 건물들은 승려들이 거처하는 곳이거나 공부하는 곳이었다. 위쪽은 부처님을 모신 법당과 과거의 판첸라마를 모신 법당이 있었다. 아래쪽부터 천천히 둘러보며 올라가는데, 주변이 ‘짝!, 짝!’하는 소리와 함께 시끌시끌했다. 무슨 싸움이 났나싶어 들어간 그곳에는 젊은 승려들이 서로 큰소리로 떠들며 가끔씩 박수를 요란하게 치는 것이었다. 참 희한한 일도 다있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문답식으로 공부한 것을 확인하고 외우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당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부처님을 모신 곳이 있었고, 역대 판첸라마를 모신 곳도 있었다. 그곳에 앉아있는 부처상은 티베트와 중국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주지 못했다. 특이한 점으로 법당마다 최근의 판첸라마 사진을 모셔놓았는데, 귀티가 자르르 흐르는 아이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가짜 판첸라마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뭐하는 사람인가 생각했었다. 그곳을 지키는 승려에게 ‘판첸라마?’라고 물었을 때 비로소 그 사진속의 아이가 그 가짜 판첸라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곳엔 수많은 사복 군인들이 있었는데, 가짜 판첸라마를 경호하는 듯 했다.
법당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부처님을 모신 곳이 있었고, 역대 판첸라마를 모신 곳도 있었다. 그곳에 앉아있는 부처상은 티베트와 중국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주지 못했다. 특이한 점으로 법당마다 최근의 판첸라마 사진을 모셔놓았는데, 귀티가 자르르 흐르는 아이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가짜 판첸라마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뭐하는 사람인가 생각했었다. 그곳을 지키는 승려에게 ‘판첸라마?’라고 물었을 때 비로소 그 사진속의 아이가 그 가짜 판첸라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곳엔 수많은 사복 군인들이 있었는데, 가짜 판첸라마를 경호하는 듯 했다.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슬픈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도 만약 독립을 하지 못했더라면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움찔했다. 그 식당의 여자아이의 표정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