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을 떠나기 바로 전 포카라 시내에서 바라본 설산
빙하가 녹아 내려와서 그런 지 물이 완전 옥색이었다.
작은 마을과 바위들 그리고 출렁다리

안나푸르나 산행안내지도를 샀다. 그리고 출발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그냥 안내지도 외에는 따로 준비해야 할 것도 없었다. 겨울옷이야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방에 넣은 것 뿐. 그리고 출발지인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버스가 어디서 언제 떠나는지 물어보는 것 뿐이었다. 거대하고 긴 안나푸르나 산에 비해 너무나 간소한 준비였고 다소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이제야 그곳에 간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거리에 비해 한참만에, 몇번의 자동차 고장이 있었고, 결국엔 다른 차를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도착한 ‘베시사하르’. 거리는 카트만두까지 거리의 반도 안 되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비슷하게 걸렸다. 아무래도 도로가 모두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그런 것 같았다. 어두어져서 도착한 그곳에는 다행히 숙소가 여러곳이 있어 첫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숙박비도 타멜이나 포카라에 비해 훨씬 저렴하여 기분도 좋았다

포카라에서 2000루피(26000원정도)에 발급받은 산행허가증을 입구에서 확인받고 드디어 산행로로 들어섰다. 계곡에서 들리는 시원한 물소리가 제일 처음 우리를 반겼다. 카트만두를 제외하곤 네팔의 대부분이 공기가 맑았지만 더욱 짙은 숲이라 그런지, 나무가 뿜어내는 상큼한 기운때문인지, 훨씬 공기가 좋다고 느꼈다. 10월이라도 도시에서는 다소 덥다고 느꼈지만 상쾌한 기분 때문에 그런 것도 물러갔다. 산길은 다른 한국여행자들로부터 들었던 바대로 산행로는 완만하게 유지됐다. 걱정했던 끼니해결도 정오쯤 되었을 때 눈앞에 식당이 나타나 전혀 무리없게 해결해 주었다.

이래저래 기분 좋게 산행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쫓아와 불러세웠다. 뭔가하고는 따라가봤는데, 어떤 아저씨가 있었고 우리를 불러세운 여성은 사무원인 듯 했다. 그제서야 내가 올라온 길에 ‘TRC check post’라는 현수막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합판으로 만들어진 작은 사무실이었는데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산행 ^&*#$^@ 포터나 가이드 ^&*%&$ 꼭 ^%#&*($& 데려와야 *%#&^@”

갑작스런 상황이라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멍~’했고 아저씨는 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의 설명이 끝난 후 이해한대로 내가 몇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포터나 가이드를 꼭 데리고 와야한다구요? 여행 안내서에는 괜찮다고 되있는데?”
“$!@!$ 얼마전 !@!% TRC $@%^#! 오늘 !@$%!^@ 산행 @!%^$# 안되 !$%@^”
“TRC 라는 법규가 생겼는데 오늘부터라구요? 꼭 데리고 와야한다구요?”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TRC라는 어떤 법규?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것은 네팔의 ‘여행사’, ‘짐꾼’, ‘산행 안내원’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했다. 산행로가 잘 닦여져 있지 않고 여행정보도 많이 없던 시절에는 네팔에서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안내원과 짐꾼을 고용해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던 것이 정보가 많아지고 산행로도 많이 정비가 되어 안내원과 짐꾼이 없어도 충분히 개인적으로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도중에 길이 잃을 가능성이 있는 교차지점에는 안내표지판까지 잘 설치가 되어있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게 네팔에서 중요 ‘산업’이었던 산행 ‘짐꾼’과 ‘안내원’ 고용횟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여행사를 통한 산행이 줄어들면서 ‘산행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네팔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해 TRC라는 법규가 생긴 것 같았다. 네팔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법규다. 산행을 하는 모든 관광객들이 무조건 고용을 해야하는 것이니. 나같은 헝그리 여행자도 앞으로는 무조건 고용해서 산행을 해야한다. 내가 산에 간 날이 그 법규가 적용된 최초의 날이었던 것이었다.

“왜 @!$%! 여행사 @%^@ 않고 !@%$ 왔죠?”

아저씨는 나에게 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그냥왔는지 굉장히 의아해 했다. 다 사기꾼 같아보여서 한번도 여행사에 문의해본적이 없었다. ‘한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이 법규가 적용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하며 한탄했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못믿겠어요”
“여기 보세요”

신분증도 진짜같았고 정부에서 만든 것 같은 여러가지 서류를 보여주며 진짜임을 증명했다. 대충 분위기를 알아챘다.

“용서해 주세요. 플리즈. 어제까지만해도 그냥 들어갔잖아요. 하루차이에요”
아저씨는 그 말에 약간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학생이라 돈이 많이 없어서 그냥 왔어요. 학생이에요. 어쩔 수 없었어요”
“!@$@!% 당신이 잘 못한 것 !@%@ 여기 $!@#%!@ 적어”
“어떻게 적으란 거에요?”

친구한번 보고, 아저씨 한번 쳐다보고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었는지 무엇을 적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또박또박 얘기해줬다.

“나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그냥 왔기때문에 TRC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다음번에 올 때는 반드시 TRC를 통한 안내원을 데리고 올 것이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법규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라고 쓰라고 하는 것이었다. 쓰는 동안 자꾸 철자가 틀려서 얼마나 부끄럽던지. 어쨌든 그대로 쓰고는 “용서받고” 그곳을 떠났다.(나중에 산행하면서 만난 산행객들 중 우리처럼 짐꾼이나 안내원 없이하는 사람들은 1~2팀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만 더 늦게 이곳에 왔다면 꼼짝없이 다시 포카라나 카트만두로 돌아가서 ‘안내원’과 ‘짐꾼’을 고용하고 와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짠돌이 이스라엘 젊은 여행자들조차 모두 ‘안내원’과 ‘짐꾼’을 데리고 왔었으므로. 하루 300~500루피(3900원~6500원정도)를 인건비로 줘야하는 그들을 데리고 오지않아 돈은 많이 절약했지만 네팔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컸다.(후에 또다시 없어졌다는 얘길 들었다. 아마도 힘좋은? 여행자들이 압력을 넣은 것 같았다. 네팔처럼 돈벌이가 힘든 나라에서, 제대로된 산업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것이 유지가 되었으면 했는데, 다소 안타까웠다)

나무로 된 다리도 있었고,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저지대?에는 열대나무들이 있었다. 산을 오르면 설산이 있기에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밭에는 작물들이 빼곡했다. 나무들도 더러 자라있었다.
길은 산으로 향했다. 이 길을 무려 17일을 걸어야 했다.

산행길을 얼마 더 가지 않아 또다른 복병을 만났다. ‘마오이스트’들. 마오이스트는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자들이고, 마오이즘은 중국 마오쩌둥의 사상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네팔의 무능력한 정부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려고 20수년간 정부와 맞써 싸운 단체다. 그런 그들이 왜?

“이봐요, 여기로 오세요. 하루 100루피씩 계산해서 돈을 내고 가야 합니다. 학생은 200루피 할인해 드립니다.”
포카라시에서 받아온 산행 허가증을 들이밀며,
“네? 우리는 포카라시에서 이미 2000루피나 내고 허가를 받았는데요?”
“아, 네팔에는 정부가 두 개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내는 것이구요.”
“못믿겠어요. 신분증을 보여주세요.”

그러니까 지금의 정부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가끔은 그들과 정부간의 총격전도 벌어진다고 들었다. 무능력한 정부도 문제지만 이미 실효성 없음이 드러난 마오쩌둥의 사상을 추종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안 내겠다고 버티던 여행자들이 많아 나 역시도 어찌할까 고민했지만,

“그럼 학생이니까 깎아주세요.”
“몇일이나 하죠?”
“17일이요. (가만보자 좀솜공항에서 나간다고 하면 더 줄일 수 있겠다) 아니 14일이요.”
“왜 날짜 계산을 못하죠? 정말이에요?”
“네, 저희는 좀솜까지만 할거에요. 그럼 학생 할인에 1200루피죠? 깎아주세요.”
“그럼 1인당 1000루피씩만 내고가세요”

결국 1000루피씩 내고 그 자리를 떴다. 정부?사람 답게 날짜가 적힌 영수증도 줬다. 다소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앞에서 개기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베시사하르에서 다소 늦게 출발한 탓에 해질녘에 아슬아슬하게 ‘바훈단다’라고 하는 목표마을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숙소가 많았고 이미 여행자들이 가득가득 메우고 있었다. 준비를 소홀히 하여 걱정했던 하루였지만 잘 지나갔고, 숙소 주인아주머니께 여쭈어 보니 산행을 끝내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최고 5000m가 넘는 길이지만 차근차근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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