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120km를 달려 어떤 식당의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잤다. 사실 수많은 모기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둘째날은 잠을 못잤던 탓에 50km 만 달려 ‘사히왈’이라는 도시, ‘하라파’라고 하는 인더스 문명의 핵심 도시를 그냥 통과해 세째날은 190km나 달려 물탄이라는 도시에 묵게되었다. 길 위는 ‘후라이팬’, ‘오븐’ 이었다.
보통 한국의 더운 날씨를 ‘찜통’에 비유하곤 한다. 이곳 날씨는 찜통에 비유할 수가 없다. 습기가 많지않기 때문에 ‘찜’이 되지 않는다. 그럼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가. ‘후라이팬’이나 ‘오븐’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햇볕이 너무나 뜨거워 ‘오븐’이었고, 그 빛을 받아 다시 내뿜는 아스팔트 및 흙이 너무 뜨거워 ‘후라이팬’이었다.
바하왈뿌르, 사디카바드, 석쿠르를 거쳐 자콥아바드까지, 라호르에서부터 약 900km를 정신없이 달렸다. 도중에 넓은 해바라기 밭이 눈길을 끌어 그 앞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빼고는 줄 곧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주유소가 나오면 차가운 물로 머리와 몸을 씻기에 바빴고 음료가게가 나오면 얼음을 얻어서 한번에 마시기에 정신이 없었다. 더위는 나의 혼을 완전이 빼놓았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 황량한 벌판 위에 주유소가 보였다. 그곳에 도착했지만 흔하게 보이던 편의점은 없었다. 막무가내로 들어가 주유장치 옆 그늘에 앉았다. 내가 힘든 것을 알았는지 아저씨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는 대신 차가운 콜라를 하나 들고 나오셨다.
“슈크리아. 정말 덥네요” (슈크리아 = 고맙습니다)
“현재 기온이 섭씨 52도에요. 괜찮아요?”
“네??!! 52도라구요?”
왼손으로 다섯손가락을 펴고, 오른손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그리고 왼손을 내밀며
“피프티”
왼손을 내밀며
“투??”
“네, 저쪽에 온도계가 있는데, 현재 기온이 그래요.”
아직 4월이라 40도를 조금 웃도는 날씨라고 생각했건만 52도였다니.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해먹었다. 반찬이라고는 양파 하나와 계란 두세개가 들어간 계란국 하나. 밥을 먹고나면 6시쯤 되어 해가 지평선에서 조금 올라와 있을 때였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전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매번 생각뿐인 실천이었다. 그나마 6시도 비교적 시원할 때여서 다행이었다. 6시부터 12시까지 100km 정도 달린 후에 오후부터는 휴식을 자주하며 거리를 조절했다. 보통은 20~50km 를 더 달렸고, 물탄시에 갈 때는 90km를 더 달렸다.
옷은 매일 입던 긴 등산바지와 상의, 모자는 라호르에서 새로 산 것이었다. 모자에다 수건을 덧씌우고 날리지 않도록 클립으로 고정했다. 주유소가 나타날 때마다 멈추어서는 화장실로 달려가 수도꼭지 아래에 머리를 박았다. 처음에는 머리에만 물을 묻히다 결국엔 온몸에다 물을 퍼부었다.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물을 적셔도 30분이 채 못되어 옷은 바싹 굳어버렸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때론 ‘중국인이다!’, ‘어디서 왔어?’, ‘짐이 왜이렇게 많아?’ 등등등의 질문세례를 퍼부으며 귀찮게도 했지만, 밥값도 받지않고 차가운 음료나 물을 챙겨주고, 세수를 하고싶다는 시늉을 했을 때는 세면대까지 안내를 해주거나 그것이 없을 때는 먹는물까지 내어주며 친절함을 배풀었다.
물탄시 전에 자전거 여행자가 지나가는게 보였다. 그는 아랍사람처럼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려고 소리쳤다.
“헬로우!!”
그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내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을 때 비로소 눈을 맞췄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오늘 물탄에서 출발했어요”
“첫 출발지는 어디죠?”
“바르셀로나에요. 저는 스페인에서 왔습니다.”
“네?? 바르셀로나, 스페인이요?? 혹시 로라 남자친구입니까?!?”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암리차르에 있을 때 당신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남자친구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얘기했죠.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세상 좁네요”
자리를 옮겨 가까운 주유소로 갔다. 그곳 그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도 아닌데, 주유소 주인아저씨는 우리를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차가운 음료를 갖다주고, 음식도 갖다 주었다.
“경찰 경호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어때요?”
“타프탄에서 물탄까지 경찰이 경호를 해줬어요. 교대하며 계속 따라오더군요.”
“아… 그렇군요… 길은 좋나요?”
“나쁘진 않아요. 괜찮습니다.”
“바라나시에서 만나기로 했다던데, 그곳이 끝이에요?”
“네, 거기서 로라를 만나서 같이 여행한 후에 바르셀로나에 돌아갈 생각이에요.”
“아!! 그러면 거의 다 왔군요!! 여기서부터 바라나시까지는 평지밖에 없어요!! 완전 평지에요!!”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여 그곳까지 100여일만에 왔다고 했다. 거리계를 보니 8000km가 조금 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거리. 나는 그곳까지 7개월을 조금 넘기고 있었으니 그의 여행속도를 알 수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