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타를 떠난 뒤 곧 사람이 살 것 같지않은 사막을 만났다.
억센 사막 풀들과 칼같은 산들이 꼭 티베트에서 본 풍경 같았다.
고갯길을 넘어가는 중. 너무 뜨거운 햇볕과 공기. 물을 살 곳이 없을 것 같아 물을 많이 실었더니 기운이 싹 빠졌다.
끝도 없이 사막이었다.

퀘타를 벗어난 그곳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마치 티베트로 갑자기 돌아간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키가 발목까지오는 억센풀들하며 좌우로 펼쳐진 검고 날카로운 민둥산 하며, 하지만 하늘과 땅에서 뿜어대는 뜨거운 열기는 그곳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위험한 사막의 기운이 팍팍 느껴져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지만, 경찰들이 보호를 해준다고 꽤나 많은 여행자들로부터 들었기에 페달을 불쑥불쑥 밟으며 나아갔다.

“이봐요!! 멈춰요!!”
“네?”
“여권주세요. 여기부터는 저희가 따라가야 합니다.”

첫번째 검문소를 지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의 여권의 인적사항을 적더니 경호를 받아야 한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나타나 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 이후로 경찰은 나와 같은 보조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쫓아왔다. 때로는 차량이 따라오기도 했으며, 때로는 오토바이가 쫓아왔다. 아무래도 담당구역이 바뀔 때마다 그것 또한 바뀌는 듯 보였다.

그날은 유난히 힘이 부쳤다. 전날 준비한 몇개의 난(동그랗고 납작한 빵)을 다 먹어도 힘이 나질 않았다. 다소간의 오르막과 역풍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해도 불과 일주일 전엔 40도가 넘는 곳에서 하루 190km 를 가볍게 달렸던 나였다. 사실 그곳은 고도가 높아서 다른 파키스탄 저지대보다는 훨씬 시원한 편이었다. 

너무나 힘들게 100km 정도 달렸을 때쯤 도로변에 경찰 천막이 쳐져 있었고, 그곳에서 쉬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먹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배도 너무고파 더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1.5리터짜리 물을 6개나 더 짊어진게 화근이었다.)

영어가 되지않는 그들에게 이곳에서 자고 가겠다고 온몸으로 말을했다. 좋다고 대답을 받고는, 그곳의 모든 경찰이 구경하는 가운데 텐트를 치고, 너무 피곤하고 배가고파 잠이들었다. 해가지기 전에 일어나 밥을 해먹고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탄 경찰한명이 왔다.

“여기서 자면 위험합니다. 이곳에서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안전한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야합니다.”
짐을 챙기고 텐트를 걷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도 경찰 있는데 여기서 자면 안될까요?”

하지만 그 경찰의 태도는 완강했다.

10km가 훨씬 넘는 거리를 달려 도착한 검문소. 너무나 밝은 달빛 아래에 있는 검문소였다. 지나가는 차량은 모두 그곳의 검문을 받았다. 지나는 차량은 몇분에 한대 정도였고, 그 외의 시간은 은은한 달빛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었다. 차도 얻어마시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짧은 대화도 나누었다. 잘 방도 깨끗하고 넓어 오히려 보통의 여행자 숙소보다 나아보였다.

하루를 맛있게 자곤, 다음날 아침 떠나려는데 다음도시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검문소장이 얘길했다. 시작할 때부터 이곳은 위험한 지역이니까 경찰이 하라는대로 할 것이라고 마음 먹은 터였던지라, 약간은 튕겨본 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이 다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거뭇거뭇한 사막의 산을 비켜가며 내려갔고 공기는 뜨거워져 갔다.

뜨겁고 강력한 역풍에 맞서 힘들게 달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멀리 보이는 사막지대엔 크고 작은 회오리 바람이 일었다. ‘캔사스 외딴 시골집’을 날려버릴만한 강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에 3~4개까지 동시에 일어난 그들의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힘들고 지친 그 때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즈’로 훌쩍 날아가고픈 욕망이 일었지만, 부질없는 생각. 경찰차라도 나타나길 바랐지만 그 도시 이후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캠핑차량을 타고 지나던 스위스인 노부부가 멈추어섰다.

“헬로우~! 아까 검문소 명단에서 봤어요. 지금 외부기온이 40도가 넘는데 괜찮아요?”

“네, 아직은 괜찮아요.”

“뭐 도와줄건 없어요? 아, 물좀 드릴께요.”

“네, 고맙습니다.”

“정말 용감한 젊은이네요. 저희는 젊어도 하지 못할일을 하고 있어요.”

“아니에요. 그냥 가는건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꼭, 무사히 여행하길 바랄께요.!! 안녕히~”

경찰차라도 나타나면 바로 타야겠다고 한 나였기에 용감하다는 말은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국경까지 같이 가면 안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늘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역풍은 어찌나 센지! 오후 다섯시쯤 되었을 때 총을 든 한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가고 있었다. 경찰인 듯해서 얼른 달려가 말을 걸었다.

“살람알레쿰, 폴리스??”

“@!#^$&%^%*^$*&%$^@#!@”

내가 총을 가리키며 다시한번 물었다.

“폴리스?”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힌디어나 우르두어도 잘 이해못하는 내가 낯선 발루치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대충 분위기로 봐서 자신은 경찰이 아니라는 것 같았다. 그리곤 앞쪽으로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 했다.

“!@$%^%#&$%*#^&@$%^#!%@”

그리곤 바로 주머니에 있던 실탄을 꺼내보이며 내쪽으로 들어보였다.

“제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른 여행자의 책에서 보았던 총기강도가 아닌가 의심이 됐다.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 그냥 버스타고 지나가는건데, 실수한 것 같다.’ 사진기를 꺼내들며 얘기했다.

“사진 한번 찍을께요”

‘가만히 찍히면 보통사람이고 덤벼든다면 이판사판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서서 찍힐 뿐이었다. 그리고 지체할 것도 없이 인사하고 없던 힘을 짜내어 힘차게 달렸다.

‘큰일날뻔했다!! 휴~!’

퀘타에서 이란을 잇는 발루치스탄 사막지역은 파키스탄 사람들도 꺼려하는 무법지대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도 정세가 매우 좋지않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탈레반)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지역을 지나다 이유없이 총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한 이유로 외국인에 대해서 경찰이 보호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 온 것이었는데, 내 주위엔 총을 든 이상한 청년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나타나지 않으면 길에서 벗어난 황무지에서 야영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것은 죽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야겠다고 생각하곤 수십여분을 더 달려 어느 조그마한 마을앞에 멈춰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린아이들이 달려와 ‘펜’을 달라고 외쳐댔다. 그나마 사람냄새를 맡으니 다행스러웠고 곧이어 그 마을의 기둥처럼 보이는 한 사내도 나타났다.

그들에게 몸과 눈빛으로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치고 배가고파 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도와달라는 소린 하지않았는데 추레한 트럭이 오는 것을 보고 그 사내가 벌떡 일어나 차를 잡아세워버렸다.

“!@@^#$&%*$%^$^#%$@$^%@&$^*%^#”

그리곤 나에게 눈치를 주며 트럭기사에게 말을 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타프탄!”

트럭기사 아저씨는 웃으며 타라고 했다. 그 웃음이 약간은 의미심장하여 잠시 멈칫했지만, 타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 타는 김에 화려하게 치장된 트럭을 타고싶었지만 그 트럭은 생각보다 밋밋하고 초라했다. 자전거와 짐들을 트럭에 가득실린 짐들 위로 얹져 싣고 출발했다.

트럭은 느린 속도로 평평한 길을 밤늦게 까지 달렸다. 기사 아저씨들은 해질 때 한번, 완전히 어두어 졌을 때 또 한번 해서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렸다. 해가 질 때는 길가에서 조그만 카펫을 깔고 기도했고, 저녁기도는 마스지드(모스크)에서 다른 기사들과 함께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독실한 신자 같았고, 생각했던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아스라히 떨어져 오는 차량들의 불빛이 나타난 이후 한참만에 눈앞으로 오는 것으로 봐서 대단한 평지같았다. 머릿속엔 부산 앞바다 수평선 저편의 오징어잡이 배들로 가득찼다. 역시나 아쉬움이 일었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일단은 목숨을 붙여놓고 불안한 정세가 끝난 이후에 다시 찾아와도 문제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새벽엔 트럭을 세우고 잠시 잠을 잤고, 이른 아침에 다시 출발해서 국경마을엔 아침에 도착했다.

“슈크리아. 이거 받으세요”

고마워서 200루피를 꺼내 아저씨들에게 드렸다.

“점심값 하세요~”

하지만 아저씨들은 결단코 사양했다. 그리고 내가 자전거에 짐을 다는 동안 아저씨 한분이 슈퍼마켓에 다녀오더니, 시원한 오렌지 쥬스를 두 개 주셨다.

“조심히 잘 가”

단 이틀동안이었지만 너무나 힘든 날이었다. 뜨거운 공기는 물론이고 거센 역풍. 거기다 총으로 무장한 사내까지! 이곳 사막을 일종의 ‘통과의례’의 장소로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자콥아바드까지의 뜨거운 주행으로 만족해야했다. 또, 이란은 나라 거의 전체가 사막 아니던가! 

총을 든 사내가 나를 공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마지막에 트럭을 태워준 아저씨들이 없었다면 분명 큰일을 당했을 것이다. 처음 파키스탄에 입국할 때 안좋은 이미지만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이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들 모두 골고루 있는 것이고, 그 나라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더 잘 알려져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지, 결단코 그 곳에 나쁜 사람들만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 덕택에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알라께서 도우신 건가? 어쨌든 인샬라!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자고 출발하려했었다. 자신들의 관할구역까지 에스코트가 역할이었으나 경계선까지 차를 태우고 내려주었다.
맞은 편에서 다른 경찰이 와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사막길이었다. 막말로 가다가 누가 죽여도, 혹은 죽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래도 도중에 주유소는 있었다. 이런 곳에서 물을 구할 수는 있었는데 너무 많은 물을 실은 탓에 체력에 무리가 되었다.
사막 중간에 자란 나무. 어쩌다 혼자...
탁 트인 곳이어서 그런지... 작은 회오리 바람이 많이 일었다.
총을 든 민간인을 드디어? 만났다. 알고보면 마을을 지키는 민병대?이지만 그 땐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 사진을 찍으며 위기를 극복했다.
다음 마을에서 만난 아이. 이곳 마을 아저씨가 히치를 대신 해주었다. 이곳에서 파키스탄 - 이란 국경까지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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