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오르막을 올랐다.
고개 부근에 마을. 너무 고요하고 평화롭다.
휴게소 앞에서 만난 여행자. 페르난도와 올가.
내 사진도 한 컷. 이란에서 고통받았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고개 근처엔 구름이 많다 싶었는데 역시 급 어두어지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기막힌 큰바위 숲을 만나 몇일 신나게 요양했다. 그 덕에 산으로 향하는 페달질은 어느때보다 가벼웠다. 최고 고도 1600m 가량의 고개를 그 날 넘어야 했기에 최대한 서둘렀다. 마주오던 자전거 여행자가 이 지역을 이야기 할 때 표정이 굳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휴! 거긴 40km 오르막이에요~’

언제나 그랬듯 숲속은 아름다웠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들과 논밭의 모습들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신에 대한 열정으로 산 정상에 세워놓은 조그마한 사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준비한 비상식량을 자주 자주 먹으며 체력저하방지에 노력을 하며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차츰차츰 멀어지자 쇠약해지고, 또 산 능선을 따라 여느 때처럼 구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언덕이 그 언덕이겠지’ 하던 것도 몇 번이었다. 1600m 의 고도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언덕도 마지막이 아니었을 때 식당을 만나 밥을 먹었다. 그곳에는 벌써 모여들었던 구름들이 키자랑을 하며 뭉게뭉게 피어올라 어두어지고 있었다. 두터운 고기를 다 처리했을 때쯤 창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도착하는 남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쳐다봤고, 그들은 나의 자전거를 쳐다보는 듯 했다.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헬로~ 어디서 오시는 길이에요?”

“이오안니나에서 출발했어요. 그쪽은요?”

“저는 메테오라에서 출발했어요.”

그들은 내가 내일 도착해야할 곳에서 오는 길이었고, 나는 그들이 다음날 도착해야할 곳에서 오는길. 그러니까 양 도시를 기준으로 중간에 만난 것이다. 이름은 페르난도와 올가. 대충 흘겨봐도 ‘고수’느낌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먼저 물었다.

“처음 출발한 곳이 어디죠? 저희는 스페인 꼴로냐에서 왔어요.”

“중국 상해에서 출발했어요. 한국사람이구요.”

“아… 그렇군요. 우리는 인도로 향하는 길인데,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주세요.”

“네… 저는 포르투갈로 가고 있거든요. 저에게도 필요한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터키는 산이 많구요, 이란은 다 사막이에요. 이란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상당히 괴로운 날들이었죠. 차들이 많이 험하니 주행할 때 조심하세요. 파키스탄은 대부분을 경호를 받아야 할거에요. 그리고 몇월에 가죠? 4월에 제가 지날 때는 정말 더웠는데. 지금 간다면 우기라서 더 힘들 수도 있겠네요. 꼭 훈자마을에는 들리세요. 네팔 다음으로 좋았던 곳이에요.”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지방에 꼭 가세요. 아씨씨, 시에나, 피사, 피렌체 다 좋아요. 그리고 프랑스에 가면 베지에라는 마을부터 뚤루즈까지 ‘까날 두 미디’라는 운하가 있어요. 차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어요. 거의 자전거 뿐이죠!! 자전거 천국이에요!!”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이제 유럽을 횡단한 것에 비하여 너무 ‘고수’같아 물었다.

“혹시 이번 여행이 처음이 아니죠?”

“네, 저희는 아프리카종단과 남미종단을 이미 자전거로 했습니다.”

“뜨아!! 그렇군요.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프리카는 어땠나요?”

“비포장도로와 먹을 것 때문에 고생했죠. 그래도 정말 재밌었어요.”

“여행한 곳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에요?”

그 질문에 둘이 함께 외쳤다.

“우유니!!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이에요.”

“저도 알아요. 아~ 우유니!!”

“보통의 여행자는 낮에만 와서 구경하고 나가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주변에서 야영을 했어요. 해질녘에 자전거를 타고 붉게 물들여진 그 소금사막을 가로질렀어요. 그리고 밤에는 그곳에서 하늘가득한 별밤을 즐겼지요. 두말할 것도 없어요. 최고였어요. 최고!! 자전거 여행자였기 때문에 더욱 더 좋았죠!”

파키스탄의 야영장에서 만난 사진가의 사진을 본적이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이 땅에도 있었다. 물속의 땅은 거북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지만 무엇인지 그 위에 두껍게 물이 고여 있었다. ‘저게 머에요?’, ‘우기 때 비가 내리면 저렇게 되는거에요.’

“가고싶어요!! 아~~”

약간은 과장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스페인 부부와 그 자리에서 한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잠깐 인사만 하고 떠났어야 했는데, 심장을 두드리는 자전거 여행 이야기의 끈을 놓기란 쉽지않았다. 여행을 하고있는 중이었지만, 또다른 여행이야기를 들으니 어처구니 없게도 머릿속에선 ‘여행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기 언덕아래에 메테오라가 보이는 곳에서 야영을 할거에요. 해질때가 되면 다른 곳은 구름으로 덮여져 있는데 메테오라만 빛이 난대요”

“아~ 그렇군요. 저는 메테오라에 3일을 묵었어요. 해질 때만 되면 메테오라 주변을 제외하곤 다 구름이 끼어있었는데, 정말 그렇겠군요!!”

“정상부근에는 지금쯤 비가 내릴텐데 가실거에요? 저희가 통과할 때 조금씩 내리던데…”

“괜찮을 거에요”

한시간을 넘게 대화했다. 어딘가 머무는 곳에서 만났다면 훨씬 즐거운 만남이었을 텐데 헤어짐이 아쉬웠다.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자기들의 갈 길대로 갔다. 그 자리를 뜨고 얼마 가지도 못해 비를 만났다.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다리근육도 뭉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때마침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생각났고, 또 항상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비오면 어떻게 해요?’, ‘아~ 그냥 맞아야죠, 가방도 방수라서 괜찮아요, 몸만 젖는 거지요.’ 하지만 몸만 젖는 것이 아니라 비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젖은 옷이 증발하며 체온을 낮추는데 그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생각지 못하고 자신감에 차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갔다. 굵은 빗방울 사이로 멀리에 정상을 나타내는 듯한 불빛이 깜빡거렸다. 정상을 가늠하면 더 힘들어지기에, 얼굴을 들면 빗방울에 눈을 뜰 수가 없기에 바닥을 보며 ‘헉!, 헉!’

언덕너머에서 반짝이던 번개 불이 고개를 넘으니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정상에서 바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는 줄 알았건만 거의 평길수준의 도로가 몇몇 낮은 봉우리를 이은 능선으로 나 있었다. 비는 더 세차게 왔고 ‘후회막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내리막이었기에 빨리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곤 고속으로 달렸다. 자전거 속도에 비례하여 강력한 바람이 닥쳤고 몸의 체온은 뚝! 뚝! 떨어졌다. 턱은 덜덜 거리고 팔과 다리는 후들들거렸다. 주변에서 내리꽂는 번개 불은 세찬 비와 어울려 지옥의 어딘가를 연상케 했다.

서쪽에서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염소를 기르는 농장을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UFO가 한밤중에 나타난 듯한 착각을 일게했다. 내 자리는 세찬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변은 짙은 구름으로 어두웠기 때문이다. 때마침 농장에는 몇 마리의 양치기 개만 있었을 뿐, 양들은 온데간데가 없는 듯 느껴졌기에.

신비한 분위기에 취해 비가 오든 말든 사진기를 꺼내 들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분위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역시나 그 모습만 담길 뿐 분위기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간의 문명은 역시나 자연에 비하면 미약한 존재라고 느껴질 때 온몸에 강력한 전기장이 느껴졌다. 바로 머리위까지 번개가 내려온 모양이었다. 70%이상이 전기가 잘 통하는 수분으로 된 나와, 금속으로 된 사진기를 번개가 비켜간 것이 다소 의외이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몸은 부들부들. 깊은 숨을 천천히 들이고 내쉬었다. 외계인이 그만 보라고 충고한 모양이었다.

주눅이 들어 뒤로돌아 나왔다. !! !! ‘악!!’ !! !! 그렇게 소리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자연스레 그렇게 나왔다. 정확하게 이쪽 땅에서 저쪽 땅으로 큰 반원으로 된 무지개가 피어있었다. ‘무지개 동산’ 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무지개가 잘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몇 번이고 훑어보았다. 너무나 신비했다. ‘빨주노초파남보’ 너무나 선명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는 처음이었고 또다시 볼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는 순간 금방 본 것은 별거 아니라는 듯 서쪽의 태양빛은 더 강력해지고 내리는 비는 더 세차져 아주!! 아주!! 선명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런 선명한 무지개는 완전히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금방 것의 반만 보여주었다. 입에서는 뜻 모를 흐느낌과 눈에서는 뜻 모를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진을 다 찍고나니 ‘시간맞춰’ 무지개는 사라졌다. 꼭 나만을 위한 하늘에서 내려준 축제 같았다. 앞으로 자연을 사랑하라고 자연이 주는 선물 같았다. 땅을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고, 태양을 사랑하고, 구름과 비를 사랑하라는 뜻으로 그들이 합작하여 내려준 축복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무엇을 여기에 비하리오.

그곳에서 얼마 못간 곳에 하늘이 열린 넓은 목장지대가 나왔다. 그곳 주인에게 눈빛으로 야영 허락을 받고는 밥먹는 것도 잊은채 드러누웠다. 소나기를 한참을 퍼부었던 탓인지 하늘은 깨끗하게 개어있었다. 햇님이 서산 너머로 달아나자 별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두꺼운 분이 벗겨지며 보이는 여자친구의 비밀스런 주근깨가 놀랍도록 나타나듯 별들은 초가 다르게 늘어났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하늘에,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오게만든 나의 ‘인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구름과 같은 높이!! 신비한 분위기에 한 컷 찍었다.
내가 선 자리는 소나기가 무지하게 쏟아졌지만, 서쪽에는 하늘이 뚫렸다.
염소 농장인 듯한데 나무가 특이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신기한 나무들.
번개가 날 스치고 뒤로 돌았더니, 선명한 무지개가 딱!하고 있었다.
무지개!
무지개!!
이토록 선명한 무지개는 그 이전에도 못봤고, 지금까지도 못봤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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