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요트가 정말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가는 길. 이 때가 한창 여름휴가철이었고, 해변 곳곳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냥 길 위에서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남녀가...
휴가철 답게 해변은 어디나 붐볐다.
돌로된 해변엔 사람이 많지 않았어도, 모두들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방면으로 바라봤다. 프랑스 첫번째 도시 멘톤인 듯.
이탈리아-프랑스 국경. 예전 톨게이트?같은 것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제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항상 내 머릿속에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각종 복지정책이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환경을 중시하여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각종 다큐멘터리의 배경으로도 많이 출연했고 과거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으며,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하튼 좋지않은 이미지라고는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다. 

특히 교육분야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대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에서 학비를 대준다고 했다. 물론 외국인 학생에게 까지 그 혜택을 준다고 들었기에 한 때 프랑스 유학을 꿈꾸었지만(아직도 꿈꾸지만) 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이 까다롭고, 졸업하기는 훨씬 더 힘들다고 해서 접긴했다. 그래도 그런 대단한 정책이 맘에 들었다. 파키스탄에서 만난 젊은 프랑스 여행자들에게 이 말을 꺼냈었다.

“프랑스 대학은 정말 학비가 공짜에요?”
“네, 뿐만아니라 학생들 생활지원비까지 나와요. 학업에 열중하라는 뜻이죠.”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놀랐었다. 학업에 열중하라고 생활비까지 나오다니!!

평지같은 해변도로를 따라 프랑스로 이어질줄 알았지만 내륙으로 잠깐 들어갔다 짧은 터널을 지난 다음에야 프랑스 국경이 나왔다. 국경이라 해봐야 푸른색 바탕에 12개의 노란별이 둥글게 그려진 기(旗)가 커다란 철판에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아니, 그 옆에는 오래전부터 사용을 하지않은 듯한 고속도로 검표소같은 것도 함께 있었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프랑스로 진입했다.

진입하자마자 나타난 도시 ‘멘톤’, 파스텔로 채색한 것 같은 빛깔의 건물들이 처음 반겼다. 바다쪽으로 불쑥나온 조그마한 반도를 돌아들어가니 육지로 둥글게 깊숙이 들어간 백사장이 나왔다. 해변은 각종 상점과 음식점들로 빽빽했고, 손님들로 북적북적거렸다. 바다는 금방전까지와는 다르게 우유를 다량 포함한 듯한 우윳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깔이 너무 너무 기이해서 해변의 간이의자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까이 가보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전까지 속까지 훤히 내려다 보이던 바닷물은 어디가고 우유를 초~대량으로 탄 것 같은 우윳빛이 된 바다. 순간 바닷물 색깔로 국경을 나눈게 아닌가 의심을 했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높은 기대로 입국을 했기에 바닷물의 신기함은 놀라움을 더해줬다. 그런데 바닷물에 잠깐 손을 담궜다 돌아나오는 길에 코피가 터질뻔했다.

몇몇 여성분들께서 웃통을 벗어제치고 계셨던 것이다. 처음에 벗은여성을 봤을 때는 나이도 좀 있고해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내가 잘못본 것이 아닐까 했지만, 혹시나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둘이 아니었던 것.

예전 네팔의 ‘오쇼 타포반’ 명상센터에 있을 때, ‘오쇼 라즈니쉬’가 비디오를 통해서 강연을 한 내용이 생각났다. 모두가 웃으며 자빠질 때 그의 영어를 이해못해 친구에게 내용을 물어봤다. ‘프랑스 가족이 있었다. 어느날 여동생과 오빠가 성행위를 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오빠보고, 오빠는 아빠보다 느낌이 더 좋아 라고 얘길했더니 오빠가 하는 말이, 오늘 아침에 엄마도 그렇게 얘기했어’ 했다는 거였다. 물론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돈 농담조로 프랑스인의 개방적이고도 약간 변태적인 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었다. 몇몇 프랑스 영화를 통해서 그들은 그런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들의 개방된 성 문화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놀라움을 금치 못해, 백사장과 바싹 붙은 관광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천천히 밀며 걸어갔다. 물론 눈길은 앞이 아닌 백사장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불만이었지만, 안보고 그냥 지나쳐서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도중에 아름다운 여성께서 상의를 내려놓기라도 했을 때는 주변 벤치에서 감상에 젖곤 했다.

그 날의 주행목적지가 가까운 ‘니스’였으므로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됐지만, 이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페달을 밟았다. 때아닌 오르막을 만나 살짝 고생을 했다. 하지만 오르막 저편에는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휴양도시라고 일컬어지는 ‘모나코’가 있었다. 모나코를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기에 홍콩같은 분위기를 상상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모나코는 상상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규모의 조그만 도시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유럽에서 본 적 없는 고층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규모 탓인지 가파른 사면에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신기한 모습에 내리막길을 따라 넋놓고 그곳으로 향했다.

제일 처음 받은 느낌이 ‘럭셔리’다. 특급호텔로 보여지는 고층건물도 그리 최신식 건물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 주변에 눈에띄는 차량들이 평소 보기가 힘든 모양의 차들이었고, 입구의 ‘벨보이’는 이전까지 보았던 어떤 ‘벨보이’보다 가장 편안한 인상을 자아냈다. 또 어느 상점 앞을 지나다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천정이 아주 높은 상점이었음에도 완전한 통유리에 그 안에는 그 높이만한 최고급 사진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상점일 뿐이었음에도 왠만한 박물관, 갤러리 보다 더 그런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곳을 구경하는 것은 괜히 나답지 못하고 느껴서 페달을 밟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도중의 터널은, 검정색 아스팔트에다 무슨 유리조각도 아닌 괴상한 반사체를 뿌려놓아 우주속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럭셔리 그 자체’인 도시였다.

얼마 못가 니스를 만났다. 프랑스 끝에 있는, 프랑스에서 2~3번째 정도의 대도시였다. 그런만큼 들어서자마자 복잡함이 와 닿았다. 넓은 교차로 중앙에는 괴 예술조각품이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갑갑함이 몰려왔지만 인터넷에서 슬쩍 본 바로는 그곳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 그래서 그곳에 하루나 이틀정도 묵기로 하고 숙박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물론 스스로 알 길은 없고 ‘여행정보센터’로 가야할 것이었다. 처음엔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오른쪽으로 난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미리부터 이곳이 해변이 유명한 관광지라고 알고 있었다면 해변을 먼저 갔을텐데 나는 그런 것조차 알지 못했다. 니스까지 거리가 얼마안되어 손쉽게 왔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행정보센터를 찾느라 진을 다 빼버렸다. 결국엔 길가의 자전거를 탄 경찰에게 정보센터 위치를 물었다.

어이가 없게도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름대로 겉을 멋있게 한다고 한 것이 내 눈에는 그저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유스호스텔의 위치도 멀지 않았다. 행인들이 많이 지나가는 도로 바로 옆 블록에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고 냉대했다. 아주 큰 규모의 호스텔이었음에도 자리가 없는 것을 보니 그곳 ‘니스’가 대단한 여행지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자리가 없다하니, 예약을 할 수가 없는 처량한 자전거 여행자는 그곳을 떠서 야영장으로 향해야 했다. 다시 관광정보센터에서 야영장 안내지도를 받아 나서는데 그 지역 주변에 야영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난감 해야할만큼 수십개의 야영장이 있었다. 불행한 것은 도심과 가까운 곳은 하나도 없고 최소 10여km정도는 벗어나야 했다.

10여km를 가야했지만 도심에서 그곳까지 안전한 자전거도로가 안내해 주었으므로 불편하다기 보단 오히려 기쁨이었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로사이클대회 ‘뚜르 드 프랑스’가 열리는 나라다웠다. 도착한 야영장도 그리스처럼 크고 깨끗하진 않았지만 이탈리아처럼 상술로 가득차 보이지도 않았다. 늦은 밥을 해먹고는 빈 자전거를 끌고 다시 니스로 향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러나 저녁이 되니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나를 반긴 것은 거리에서 불법복제된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를 파는 아저씨였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인도라도 들려서 볼리우드 영화를 몇편 사고싶었던 나였기에 거침없이 몇편 집어 들었다. 비용을 지불하고 ‘닷네밧’하고 인사를 했더니 꾸물꾸물 하는 아저씨. 그래서 내가 인도여행을 했었다고 하니, 파키스탄에는 안가봤냐고 되물어봤다. 그제서야 그 아저씨아 파키스탄 아저씬줄 눈치채고 ‘슈크리아’하고 인사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도시이름은 멘톤. 파스텔톤.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
우윳빛깔의 바다였다. 방금 전 이탈리아는 이 색깔이 아니었는데...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
자전거 한 컷.
우윳빛 바다.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
모나코로 가는 길에 배려다 본 멘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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