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sis라고 하는 거대한 절벽과 해변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기대에 찬 마르세유로 들어갔다. 대도시답게 도시 끄트머리부터 커다란 도로가 나타났다. 프랑스답게 자전거 도로도 넓은 인도 중앙을 달렸다. 주말이었던 탓에 행인도 드물고 도로도 한산했다.
아침에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어 자리가 있냐고 물었을 때 몇자리 남지않았으니 빨리와야한다고 했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호스텔을 찾았는데, 역시나 만원이었다. 파리를 가지않을 생각으로 제2의 도시에서나마 프랑스 도시를 느껴보고자 했기에 그곳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만원이라니 어쩔 수 없이 예약만 해놓고 다시 되돌아갔다.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1의 항구도시로 약 2500년 전부터 항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리적 이점으로 다양한 이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었고 특별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나에게도 마르세유는 익숙한 이름이지 않던가.(사실은 파리 남부에 위치한 베르사유와 헷갈렸다)
방에다 짐을 두고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신기하게 하루전까지의 해안지방만해도 선선한 바람이 기분좋게 불고 있었는데, 그곳은 바람도 별로 없고 뜨거운 열기가 도시전체에 감돌고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서점으로 갔다. 그 도시 최대서점이라고 찾아갔는데 썰렁한 분위기에 크지도 않은 규모가 놀라웠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못보던 사진집들이 많아 공부는 많이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패스트 푸드점. 매장안에는 인공향수와 괴상한 향이 섞여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불쾌했지만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사였다. 거리를 걷다 마주친 집시 아줌마. 떨어진 아이의 장난감을 주워줬더니, 그것을 주웠다고 돈을 요구했다. 거리 곳곳은 파헤쳐져서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명하다고 생각한 어느 성당에 구경갔더니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주변엔 각종 술병과 쓰레기, 각종 오물로 지저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구석진 곳을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해질녘에는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보였다.
복지정책이 비교적 잘 시행되고 있다고 한 프랑스의 제 2의 도시가 ‘형편없었다’. 프랑스 도시에 대한 높은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프랑스는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제 2의 도시가 그런데 다른도시는 오죽하겠는가. 같은방을 쓰던 파리에서 온 아저씨에게 이런 감정을 털어놓았더니 마르세유가 프랑스에서도 유별나게 못산단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 이후부터 이렇게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너도나도 도시에서 살아보겠다고 물건너 온 이주민들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이주한 뒤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으로서 살아야 함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정체성을 바꾸지 못해 혼란을 초래한 것 같았다. 아랍인들, 흑인들, 백인들 그리고 동양인까지, 그전까지는 그럭저럭 다민족 국가로써 잘 어울려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보니 그들 서로간의 이질감이 물씬 느껴졌다.
숙소를 3일이나 예약하고 이미 지불한 상태라 떠나고 싶었지만 그곳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없나하고 살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전거 대회 ‘뚜르 드 프랑스’가 그곳을 지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대회가 생소하지만 이미 일본은 HD방송으로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고, 중국역시도 경기가 열리는 동안에는 매일밤 경기를 분석하고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방송을 할 만큼 유명하다. 수십명의 선수들이 팀별 전략적인 주행을 통해 순위를 다툰다. 경기는 프랑스 전국의 들과 산을 오르내리며 무려 20여일동안이나 연속 진행된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그들의 자전거 페달질은 거의 괴물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속이 50km/h에 이르고 내리막에서는 100km/h까지 낸다고 그러지 않던가. 자전거 동호인의 한 사람으로써 그런 유명한 대회를 구경한다는 것과 그런 ‘괴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에 몇일간 요양하며 대회를 기다렸다.
대회는 앞 도시에서 12시경 출발하여 4시경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청소를 이유로 숙소에서 빨리 쫓겨나야 했으므로 10시쯤에 숙소를 나섰다. 선수들이 지나가는 도로와 가까운 그곳엔 벌써 경찰들이 몇몇 배치되어 교통을 통제하거나 정리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이끌고 결승선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하루전만해도 아무것도 없었건만 도로 양편에 광고판이 붙은 난간이 수키로 설치되어 있었고 기자들을 위한 공간도 넓게 설치되어 있었다. 간이상점을 차려놓고 ‘뚜르 드 프랑스’로고가 새겨진 여러 가지 상품도 팔고 있었다. 발빠른 몇몇 회사에서는 무대를 설치해놓고 홍보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승선 바로 옆에는 아직 이른시간임에도 여러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떤 가족은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와서는 자리고수에 힘을썼다.
나 역시 결승선 주변에 자리를 잡고 섰다. 슈퍼마켓에서 사온 과일로 요기를 하면서 견뎠다.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금방금방 늘어났다. 아침부터 기다리지 않는다면 결승선 주변자리는 어림도 없어보였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면서 특별한 광경이 펼쳐졌다. 대회를 후원하는 회사에서 사람들이 나와 여러 가지 기념품을 나누어 주는게 아닌가.
기념품의 종류에는 모자, 장난감 자동차, 야광팔찌, 쵸코쥬스, 커피, 치즈, 젤리과자, 부채, 물 등등 참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이 있었다. 물론 쓸만한 물건은 젤리와 물 이외에는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기를 쓰고 손을 내밀었다. 어린이들은 그 회사의 이름을 합창하며 자신들에게 시선을 돌려 물건을 받았다. 어떤 아저씨는 손을 내밀었음에도 모자를 받지못했는데 받지 못한 그의 표정은 가히 가관이었다.
젤리 과자를 나누어주던 사람은 퍼레이드 행렬이 들어오기 전에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관중들이 있는 곳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젤리과자를 한주먹씩 여기저기 뿌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쫓아와 주웠고, 어른들 역시 소리만 지르지 않았지 다를바 없어보였다. 공중으로 날아가던 젤리를 재빠른 손놀림으로 하나 낚아채 먹어보았다. 억울하게도 맛있었다. ‘제길’
그렇게 기념품을 받느라, 그것을 받는 사람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새 시작점에서 먼저 출발한 퍼레이드 차량들이 들어왔다. 그 차들은 후원기업의 차량들로 각종 장식으로 치장되어있었고, 홍보요원들이 차량위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자사의 제품의 모양을 본 딴 차량이 들어올 때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광고차량이 다 들어오고 난 후에야 전광판을 통해 선수들이 곧 결승선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다린 시간만큼 기대를 했다. 그 괴물이라는 사람들을 직접 본다는 것이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경험이 될 터였다. 들어올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철로 된 난간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분위기를 상기시켰다. 그러던 것이 방송국 카메라 오토바이가 들어오고 난 후에 잠깐의 침묵이 있고, 사람들은 ‘와~’ 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이름을 불렀다.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에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저쪽을 바라보는 순간 선두 선수들이 ‘휘휘휘익’하고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휘휘휘~~익’하고 들어왔다.
당황스러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내 앞을 지나쳤다. ‘괴물’들을 사진으로나마 담고싶은 마음에 선수들이 도착한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의 거의 모든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인지 그 쪽 방향은 완전히 차단됐다. 선수들이 도착하는 곳에 내가 갔을 때는 이미 주요선수들은 이동버스에 올랐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예비자전거를 실어나르는 보조차량들 뿐이었다.
거의 5시간을 그곳에 투자했는데 돌아가려니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여러 기업들의 광고를 참고 봐줬는데 결과는 그냥 ‘휘휘휘~~익’이었다. 웬지 장사꾼들에게 속은 기분도 들고 아쉽기도하고 허무했지만 그것을 본 것,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