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로에 오른 뒤로 순풍의 도움을 받아 속도는 25~30km/h 를 유지했다. 몇일동안 쉬고 육류도 좀 먹은 덕으로 그리고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주어 너무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목적지는 ‘보드가야’. 보드가야는 부다가야라고도 불리며 불교성지 중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이유인즉 부처님께서 이곳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라고 불리는 ‘아사타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 나무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다고 하며 그 주변으로 세계각지에서 세운 절과 승려들로 붐빈다고 했다.
그 보드가야를 가기위해 길을 나선 것인데, 첫날은 다시 ‘싸싸람’이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그 여관 주인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아유 걸?? 보이??”
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마 내 긴머리 때문이겠구나 생각하고는,
“오브콜스 보이~”
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내가 거울을 봐도 ‘어떻게 보면 여자처럼 보이겠구나. ㅋㅋ 이쁘다’ 라고 했으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문제의 날. 전날 쉽게 달려지는 것 같다 생각해서인지 조금 무리를 했었다. 130km 를 6시간 정도만에 달렸는데 당연하게도 근육에 무리가 왔다. 그래도 바람이 순풍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달리고 있었다. 오늘은 약 110km 를 달리면 목표지점인 보드가야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내가 주행할 때는 자전거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도 옆에 붙어서는 어디사느냐, 어느나라사람이냐, 혼자하느냐, 직업이 뭐냐 등등 질문을 많이하고, 어디 앉아있기만 하면 옆에 앉아서 질문을 쏟아부었었다. 어떤 큰 트럭이 나를 보고는 멀리에 멈춰섰는데 그런 사람인가보다 하곤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큰소리로 나를 불러세우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인가 해서 뒤돌아 갔는데,
“@!#^$&^@%!!^%@&#^%@!%$^@#%&”
힌디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인도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고 대충 귀에 들어왔다. 트럭을 태워주겠다는 것 같았다. 여행목적 중 하나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
“ok”
자전거를 트럭옆으로 세우고는 짐을 푸는데 운전기사 아저씨는 계속 내 팔을 만졌다. 아저씨는 알록달록한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눈은 깊숙히 파져있었으며 길고 높은 코를 가졌다. 그리고 덥수룩한 턱수염과 콧수염을 길렀는데 콧수염은 어찌나 긴지 끝은 말려 올라가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 느끼한 미소와 함께 입에서는 약간의 술냄새가 났다. 그런 아저씨가 내 팔을 만져서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설마 했다. 자전거를 짐칸 위에다 싣고 나는 운전석 옆에 앉아서 출발했다. 아저씨는 계속 내 팔을 만지다가 어깨를 만지고 가슴도 만졌다.
“노! 아이엠 보이 오케이?”
하면서 손을 내쳤고 그제서야 눈치를 챘다. 그러나 아저씨는 이미 알고있었다는 듯,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느끼한 미소를 띄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마디,
“노 프라블럼”
‘내려야겠다’ 생각했다. ‘이거 제대로 미친놈 아냐, 잘못걸렸군’
“#@^$&%*%^%# 보드기야 !@#^%@ 꼴까따 #%$@^~!#$% 꼴까따 !@%$$@! ”
아저씨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보드기야’ 라고 했는데, 아저씨 입에서 ‘꼴까따’가 계속 나오는 걸 보니 자기랑 꼴까따까지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아엠 보드기야~, 유 꼴까따~ 오케이??”
그래도 막무가내. 차 한잔 마시려고 잠시 세운 틈을 타, ‘나 자전거로 갈테니 내리겠다.’고 몸짓으로 말하고는 가방을 하나 내렸다. 그랬더니 이 미친 아저씨가 시동을 걸고는 ‘노, 노’ 큰소리로 차를 사러간 보조를 불렀고 차는 출발했다. ‘오호라~ 한번 해보자는 거지’, 라고 하는 생각과 ‘진심으로 미친놈인 것 같다. 이러다 X되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번쩍거리며 오갔다. 겁이나서 가방속에 있던 다용도 칼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한국인의 쓴 맛을 보여줘야 하는건가. 좀 다른 군대를 갔다왔다는걸 니가 알겠나. 자전거 여행으로 다져진 체력은 또 니가 어떻게 감당할려고? K-1, 프라이드 애청자라는 것을, 폭력액션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해줘야 하나?? 흠… 좋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하며 계획을 세웠다. ‘흠.. 팔을 이렇게 꺽고 자동차 키를 뺏은 다음 자전거를 내려달라고 하면 되겠구나. 만약에 그래도 안해준다면 내 주머니의 칼을 꺼내 보조를 잡고 위협을 해야겠다.’
계속 내 팔과 다리와 가슴을 만지려고 시도하는 아저씨 때문에 차는 도로위를 ‘팔자’형태로 주행했고 내 시계를 보자며 왼손을 잡아 끌다가 도로 가에 있는 봉형 난간을 몇개 부셔먹었다. 아마도 이 아저씨는 나를 아주 아주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얼굴이 곱고 이쁘게 생겼다고 꼭 옷안의 몸, 성격 역시도 고우란 법은 없는데, 사실 자전거 여행으로 살이 많이 빠졌고 그 때문에 얼굴도 많이 갸름해져서 이쁜남자를 찾는 호모들의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해왔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빠르게 찾아오다니! 그것도 느끼충만한 인도 아저씨로부터.
차량에 문제가 생긴 탓인지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아저씨는 지나가는 다른 트럭에게 손을 흔들었다. 완전히 멈추는 때를 기다렸다가 아저씨의 손을 잡고 꺽어버렸다. 그러나, 너무 쉽게 꺽여져 아쉬웠다. 왜냐하면 이렇게 반항했을 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했을 땐 이렇게 하자 등등 대책을 다 세워놨었기에. 뒷덜미를 손날로 내려쳐 기절을 시켜버릴까 하다가 참고는 열쇠를 뺏았다. 뺏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아저씨 팔을 풀어줬다. 그리곤 자전거를 내려달라고 말했다.
“바이사이클”(여기선 바이시클을 이렇게 발음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상황파악 안되는지 열쇠를 달라고 했다.
“짜비”(열쇠)
“바이사이클”
“짜비”
“바이사이클
‘바이사이클’이라는 말과 ‘짜비’라는 말로 차 안에서 긴장감을 높였다. 내 자전거를 내려주면 열쇠를 주겠다고 몸짓으로 얘길했다. 열쇠가 자기에게 꽤나 중요한지 열쇠부터 달라고 했다. 당연히 열쇠를 주면 다시 출발할 것이기에 주지 않았다. (넌 영화도 안보냐) 그래도 안되자 차장에게,
“바이사이클”
하고 말했으나 그는 기사아저씨의 눈치를 많이 봤다. 가슴속에서는 뭔가가 부글거리며 끓어올라왔고 ‘계속 그렇게해라.. 누가 이기나 해보자’ 라고 생각하는 중에 결국엔 차장이 자전거를 내리러 올라갔다.
운전석 뒤쪽에 있던 짐들을 내렸고 차장이 내린 자전거를 받고는 짐을 자전거에 실었다. 그러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뭔일인가 싶어 많이 몰려들었고 나는 위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솔직히 그 아저씨가 위험으로 해방된 것일 수도 있다. 괜히 이쁘장한 외국인 몸 한번 제대로 만지려고 했다가 칼에 그였을 수도 있었기에. 아니면 팔과 다리가 몸으로 부터 떨어져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험을 했을것이다.(개인적으로 암바-격투대회 프라이드에서 자주쓰이는 팔뽑는 기술-를 이런 때를 대비해 연구했음) 아저씨는 떠나가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알라뷰”
속으론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XㅂXX”
불과 20km 만을 트럭으로 이동했다. 20km 해봐야 자전거로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였다. 그것 때문에 잠시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었는데, 만약 그 아저씨가 나보다 훨씬 힘이세고 보조 역시 어리지 않고 힘이 센 어른이었다면 꼼짝없이 남자 둘에게 성적인 뭔가를 당했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너무나 끔찍하다. 그나마 내가 비교적 잘 대처를 해서 다행인데 역시나 인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압축되어있고 터무니 없는 나라는 영감과 절망, 스릴과 당황을 한번에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 여행 안내서 첫장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보드가야가 가까워 오자 날씨는 점점 더 맑아져 갔고 거칠게 불던 바람도 잔잔해져 갔다. 간간히 자라던 나무들도 좀 더 촘촘해져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자전거 타고가던 어떤 꼬맹이가 ‘헬로~ 프렌드~’하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 ‘웨어 이즈 유어 프렌드?’ 하고 답하고는…‘아 이제 관광지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느낀지 얼마되지 않아 이정표가 나왔다. ‘깨달음의 고장 보드가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