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하바드에서 뭄바이로 향하고자 했기에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무엇이 있나 여행안내서를 살폈고 인도전체에서 몇 안되는 추천 여행지 ‘카주라호’가 있었다.(추천할 것이 너무 많아 추천된 여행지는 그야말로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알라하바드 다음 목적지는 카주라호. 하지만 카주라호로 가기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뭘 잘 못 먹었는지 변의 상태가 좋지않았다. 평소에도 그러다가 만 적이 많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출발했다.
속이 좋지않은 탓에 평소의 속도가 나오지 않았고 중간중간에 멈추어 ‘짜이’(마시는 인도차)로 속을 달래주곤 했다. 카주라호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라 3~4일 정도면 도착하리라 생각했지만 속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천만다행이게도 가까운 거리마다 숙소가 자리잡고 있어서 하루하루 힘들게 조금씩 주행했다.
밥을 먹으면 힘이나다가 길 주변 숲에다 묽은 거름을 주고나면 힘이빠지고를 반복하다 ‘만가완’이라는 정말 별볼일 없는 시골마을에서 이틀이나 머물면서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그곳에서는 안되겠다싶어 지사제, 정로환 등 가지고 있었던 ‘묽은 거름 정지제’를 끼니때마다 먹었다. 그리곤 변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지만 완전히 낫진 않았다. 그래도 시골에서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출발했다.
카주라호를 하루만에 갈 수 있는 ‘리와’라는 도시에 도착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아래 밥을 맛있게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로 만든 음료 ‘라씨’를 사먹었다. 라씨에서 희한하게 막걸리 맛이 나는 것을 신기하다며 맛있게 마셨다. 그게 문제였다.
저녁엔 ‘변문’에서 ‘소변’이 나왔다. 갔다오면 또가고 또가고를 반복하고 그 때문인지 몸에서는 열이나고 그랬다. 감기약과 지사제 등 소용될 수 있는 많은 약들을 먹었지만 무용이었다. 다음날 역시나 화장실 숨쉬듯 출입하며 출발하지 못했다. 계속 나오는데 자전거를 타고가며 길바닥에 자꾸 할 수는 없지않은가. 그리고 소화를 못시키는 때문인지 몸의 힘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초췌한 몰골로 고민을 하다 하다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없다는 결론. 자전거도 탈 수 없다는 결론. 괜찮은 밥을 먹으면 낫겠다 싶어서 대형 관광지 카주라호에서 쉬자는 결론.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버스를 타야겠다는 결론. 많은 결론아래 다음날 버스를 타고 약 100km 떨어진 카주라호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가는 도중에는 ‘빤나 국립공원’이라고 하는 자연보호구역이 있었는데 여행안내책자에서는 호랑이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국립공원을 그저 버스타고 지나가니 아쉬움이 극에 달했지만 중간중간에 버스가 주유소에 정차해 내가 뒷간에 갈 수 있었던 것만해도 대단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루동안 쉬면서 한국식당에서 파는 밥도먹고 김치도 먹고 했다. 하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가 먹는 약으로는 ‘지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결국 인도약국에서 파는 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물론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가까운 곳에는 병원이 없었다.
“플리즈, 설사병약 센걸로 주세요”
“증상이 어때요?”
아저씨는 그 말을 하면서 맥도 짚어보고 눈도 쳐다보고 했다.
“가장 센걸로 주세요, 플리즈, 아이 올모스트 다이”
그 말을 한 뒤 엉덩이에 손을 가리키며,
“노 쉣, 워터~~” (변이 아니라 물~~)
유심히 나의 표정과 말을 살펴보더니 몇가지의 약을 내 주었다. 수분이 많이 빠져나갔으니 이온수를 먹어야 한다며 물에 타는 이온가루도 줬다. 많은 양의 약에 ‘이 아저씨 장삿술이 너무 좋은걸?’ 하고 미소지어주고는 바로 약을 먹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동네 와가지고 함부로 까불지 마라는 얘기 같은데 내가 겪은 이번 일도 그 비슷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온 약은 아무리 까불어도 씨도 안먹힌다. 정로환 끼니때마다 목구멍에 넣어봐도 인도 세균들한테 쪽도 못쓰고 그대로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이었다. 지사제는 말할 것도 없다. 무슨 오히려 설사제 같은 느낌이었다. 완전 배신~!. 항생제? 쳇 세균을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세균이 항생제를 항복시켜서 자기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항생제가 세균에게 항복당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항’생제가 아닐텐데.
그러다가 먹게된 인도 지사제, 항생제. 금방까지도 국물 줄줄 흐르던 샘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그 수많은 약들은 하나도 듣지 않더니 인도약 한방으로 뚝 그쳤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는 말은 그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세균’이라는 범죄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인도놈들이고 인도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잡고 재판하기 위해 ‘한국지사제’라는 경찰과 ‘한국항생제’라는 판사를 불렀다. 그리곤 당연히 이 얼빵한 경찰과 판사는 한국법에 따라 잡아다가 재판을 진행했던 것. 그런데 이 ‘세균’들은 경찰에게 반항하고 판사의 재판에 거부했다. 왜냐? 이 ‘세균’들은 자존심 강한 인도놈이니까. 세균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뭐야~ 이 사람들, 변호사 데려와~! 변호사!! 여기가 인도지 한국이냐!? 내가 너희 말을 왜들어!! 짜식~!” 그러다가 진짜 인도 경찰과 판사들이 닥치니, 세균들은 당황하고 이 무식한 인도경찰들은 세균들이 보이는대로 죄명도 묻지않고 흠씬 패버리고 판사들 역시 죄명도 묻지않고 사형선고를 해대니. ‘김세균 사형. 이세균 사형. 홍세균 사형!!!…’
세끼의 밥과 함께 먹은 인도 ‘경찰’과 ‘판사’ 들 덕분에 하루만에 싸그리 나아버렸다. 샘은 마르고 도자기를 빚어도 될 만한 찰흙이 나왔다. 인도약만 먹었으면 금방 나았을 병을 일주일이나 끌었다니. 꼭 기억하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