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란테스에서 리스본까지 거리를 계산해보니 150km 정도였다. 190km가 넘게 달려본 적도 있지만 평소 80~120km 정도를 달리니까 150km 는 쉬운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거리를 가지고 두 번에 나누어 가기도 어중간했다. 아침일찍부터 저녁까지 달리면, 또 바람님은 도와주고 계셨으니 가능할 것 같았고, 아드레날린도 몇일간 도움을 많이 주었기에 충분했다.
길은 강변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유구한 세월동안 강물은 주변지역 지형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예상대로 커다란 굴곡은 없었다. 바람님의 도움으로 기가막히게 날아갔다. 기분도 좋고, 속도도 좋고, 날씨도 좋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님이 가끔씩은 얄미웠지만, 구름님이 비를 내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다리를 건넌 이후로는 굴곡이 심해져 약한 경사였지만 오르고 내려가길 반복했다. 점심도 적당한 시간에 해먹고, 슈퍼마켓도 자주 나와 간단한 요기를 자주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리스본으로 향했다.
리스본에 도착하면, 도시경계를 나타내는 이정표에서 기념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부산(또는 상해)에서 서쪽의 리스본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으니, 다른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인적으로 뜻 깊었기 때문이다. 물을 끼얹어 촉촉한 모습으로 손을 들고 찍을까,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모습으로 찍을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호탕한 웃음을 웃는 모습으로 찍을까,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여서 너무 힘들었다는 것을 표현할까. 등등 그런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다.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심장은 달리지 않아도 쿵쾅댔다. 음식을 먹지않아도 군침이 돌았다.
리스본이 10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봤다. 다음 이정표가 나올 때쯤에는 리스본이다. 체력이 많이 빠졌지만 도저히 천천히 갈 수가 없었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힘차게 밟았다. 길가의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리스본에만 도착하면 수십일간의 휴식이 있지않은가. 길을 따라 열심히 날아갔다. 그리곤 리스본 입구로 향하게끔 되어있는 이정표를 보고 좌로 틀어 내려갔다. 도로가 넓어지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전용도로로 이어졌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유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도로 바로 저편이 리스본이었음에도 전용도로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길이 갈라졌던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 이정표를 살펴보았지만 리스본이라는 이정표는 전용도로방면 그것 하나 뿐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도시로 이어지는 길.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해는 아직 지지않은 상태였지만 시간은 이미 7시를 넘기고 있었다. 어두어지면 어쨌든 불편한 것이다.
원래 가던 길 방향으로 계속 갔다. 그랬더니 그곳엔 고가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힘도없고, 짐도 무거운 상태에서 고가도로를 타기란 죽고자 하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 리스본 북부도시로 통하는 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꾸역꾸역 올라선 그곳에서 드디어 리스본으로 향하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야 했지만 리스본으로 들어가는 주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라는 사실에 너무 실망하여 기념사진 이야기는 이미 저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도시의 끝, 버스정류장에서 노선표를 보니 내가 리스본에 들어온 것이 확실했다. 이제 그 때부터는 유스호스텔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그 전에 패스트 푸드점에서 뿌려지는 무선인터넷을 통해 유스호스텔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었다. 버스 노선표를 보고 그곳을 찾아낸 위치는 완전 도시 심장부였다.
부둣가를 따라 난 도로를 따라 도심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서산 넘어로 가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가로등에 의지해 가는 수밖에 없었다. 도로위의 차량들은 정말 쏜살같이 날아다녔으므로 나는 인도위에서 달려야 했다. 도시외곽 공장지대라서 그런지 육중한 기계음이 몸속에 난 불을 지폈다. 비릿하고 지저분한 냄새와 키가 큰 풀이 가득한 버려진 공장들은, 또,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이 도시가 버려진 도시처럼 느껴지게 했다.
호스텔에 자리가 있는지 전화부터 해야할 것 같아 공중전화를 찾았다. 첫 번째 전화기는 돈을 먹어버렸고, 두 번째 전화기는 돈을 넣는 구멍을 열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전화기에서 드디어 전화를 할 수 있었지만 호스텔의 누구도 받지않았다. 호스텔이 폐업을 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보았지만 찾아가보는 수밖에 여지가 없었다.
이정표가 따로 나와있지 않았으므로 대충의 감각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도시는 굴곡이 심한 구릉지대에 있었기에 중심부로 가기 위해 올라가야만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행인들의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썰렁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도로 변에는 잡초가 우거진 ‘버려진’땅이 가득했고, 사람들이 사는 주택지역은 언제나 내가 올려다 봐야만 하는 곳에 있었다.
그러다 체인이 끊어져 버렸다. 1년 2개월 여행중에 이번이 두 번째인 것을 감안하면 다소 억울한 것이다. 도심 근처에도 못가고 어두운 길 가운데서 체인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올라갔으니, 내려갈 것이다 생각하고 체인만 주워들고는 조금 끌다가 내리막을 달렸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도심부가 아니라 리스본 입구에서 봤던, 똑같은 조각물이었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어가고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탈하고, 짜증나고, 배고프고, 미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조명이 다소 밝은 버스정류장 아래에서 체인을 이어 붙이고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똑같은 길을 다시 가자니 내 자신이 미워졌다. 자전거를 1년이 넘도록 탔는데 길하나 잘 못찾아서야…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