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던 우리 부부는 아기가 생기면서 출산을 스스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스스로 출산을 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데 의문을 던졌죠. 출산에 대한 공부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실행했습니다.

하하농장의 첫번째 ‘하’의 주인공 모하는 2013년 12월 17일에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건강하게 낳았고, 9살인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큐를 만들고 싶어서 영상도 찍고, 글도 써 놓았으나 결국 제 때 쓰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서야 글을 꺼내 놓습니다. (그 때 써 놓은 글을 아주 살짝만 수정했어요)

글 목록

  1. 처음 알게 된 출산현실, 굴욕3종 세트
  2. “느그가 아를 집에서 낳는다고?”
  3. 아기가 생기다
  4. 가정출산 준비. 어라? 이게 끝이라고?
  5. 아기는 병이 아니잖아요?
  6. 모하의 가정출산기 – 브이로그

눈치보지 않는 인생

모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해나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인생들이 아니기에 걱정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거의 모든 부분이 내 결정이었다. 부모님은 잠시 설득하다가 “그래, 니가 알아서 해라” 하며 늘 내가 마음 내키는대로 하도록 놔 주셨다. 기분나쁜 뜻으로 그렇게 얘기한게 아니라 정말 알아서 잘 하길 빌며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유하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방황을 했지만 자신의 앞길은 대부분 본인이 결정했다. 다만 어머니는 유하가 꼭 대학에 가길 바랐다. ‘아버지 없이 키운 자식’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하셨단다. 유하도 나처럼 대학을 때려치고 싶은 부류였지만 어머니의 부탁으로 대학은 4년동안 착실히 그것도 매우 모범적으로 잘 다니고 졸업했다.

그 이후에는 순전히 본인의 결정으로 인생을 살고있다. 앞서 얘기했듯 유하는 오히려 나보다 더하다. 어머니께 통보 비슷하게 한다. 이런 우리니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신다 하더라도 끝까지 추진하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순조롭게 준비를 해 나갔다.

임신 초기일 때 우리모습. 우리 논에서 일하다가 찍은 사진.

의외로 단순했던 준비물

출산은 예삿일이 아니기에 아주 복잡하고 힘들게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았다. 가정출산 경험자가 많아서 인터넷에 여러가지 정보들이 난무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런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상당히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자연출산 관련 커뮤니티에서 겨우겨우 한 두 사례정도 찾아볼 수 있었고, 진통과정이라던가 출산과정이 나름 소상하게 적혀져 있었다. 아쉽게도 이들도 구체적인 준비물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올려놓지 않았다.

나보다 출산관련 공부를 훨씬 많이 하고, 후기도 다양하게 읽어본 유하는 이것저것 얘기하며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낯선 용어들이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간단한가 싶기도 했다. 유하가 얘기했던 건 명주실 아니면 배꼽폐색기, 의료용가위, 위생매트가 다였다. 명주실과 배꼽폐색기는 탯줄을 자르기 전 탯줄을 묶거나 집는데 사용하는 것이고, 의료용 가위는 그 탯줄을 자르기 위해, 위생매트는 출산 시 나오는 피나 양수가 이불에 묻지 않도록 깔아주는 용도였다.

나는 머리가 명석하지 못한 편이어서 하나씩 동작을 해보며 준비물을 점검했다. 이건 여행을 자주 떠나면서 나름 터득한 방법인데,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쓰면 좋다. 예를들어 도보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걷는 시늉부터 시작해 밥해먹는 장면, 텐트를 치는 행동, 밤에 오줌누러 나가는 것까지 일일이 해보면서 모자나 라이터, 후레쉬를 잊지 않고 챙겨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출산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행동에 옮겼다. “자.. 그러면, 누워서 힘주고 있다가 아기가 이렇게 나오고, 안고 있다가 탯줄에 맥이 끊기면 명주실로 꽁꽁 묶고, 가위로 자르고, 태반이 나오면… 그치! 방수할 수 있는게 필요하겠구나? 아, 그게 위생매트라고?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하지? 그럼 된건가? 아 다 나왔네? 하하”

실제로 구입해야할 준비물이 그것밖에 없었다. 명주실, 의료용가위, 위생매트. 아기 옷이나 속싸개, 기저귀는 이미 준비가 돼 있었다. 우리가 따로 준비한 것도 있었지만 지인들이 물려준 것들이 아주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기저기커버나 기능성 천기저귀도 있었다. 그것들을 유하가 친정에 잠깐 간 동안 마지막으로 세탁기로 돌리고 삶아왔다. (세탁기가 없는 우리집에서는 내가 모두 손빨래해야 한다)

탯줄을 자르기 위해 의료용 가위를 준비했다.

준비물1 : 배꼽폐색기

우선 명주실을 구하러 나섰다. 읍내 이불집에 있을 거 같아 장보러 나간김에 들렀는데, 두 집 모두 명주실은 없다고 답했다. 가보라고 추천받은 한복집과 뜨개방도 명주실은 없었다. 아마 명주실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듯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돌잔치용 명주실을 팔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못미더웠다. 원산지 표시가 잘 안 돼 있었고, 100% 명주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원산지 표시가 된 곳은 다 ‘중국’이었고 성분에 폴리에스테르가 섞여있었다.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으므로 명주실을 쓰는 계획은 폐기시켰다. 옛날처럼 멋지게 명주실을 감아 탯줄을 자르려고 했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2안으로 생각해 둔 배꼽폐색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산부인과에서도 다 쓰기 때문에 위생에 문제가 없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인터넷 주문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다만 낱개는 팔지 않았고 50개가 판매 최소단위였다. 한 번의 출산에 두 개정도 쓰니 ‘25인분’인 셈이다.

준비물2 : 의료용 가위

그 다음 구해야 하는게 의료용 가위. 의료관련 매장이 종로 4~5가를 지나며 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차! 우리는 봉화에 있지.’ 여지없이 인터넷 주문을 해야했다. 봉화나 영주에 있을리 만무했다. 실은 집에 있는 스테인리스 식용가위로 자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출산장면에서 그런 큰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걸 봤기 때문이다. 

출산기를 열심히 살펴보던 유하는 딱 잘라 말했다. “어떤 남편이 탯줄이 너무 질겨서 고생했대.” 그 말을 듣고나니 탯줄을 자르며 끙끙대는 내 당황한 모습이 즉시 떠올랐다. 주방에 있는 그 가위는 가끔 어긋나 잘리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던 것이다. “그럼, 바로 주문하지 뭐.” ‘깨갱’하는 내 모습에 유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준비물3 : 위생매트

위생매트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쿠션감이 있는 소풍용 돗자리를 상상했으나 포장된 모습은 꼭 생리대처럼 생겼다. ‘매트’라는 상이 내 머릿속에 딱 그렇게 박혀 있었다. 나는 이게 맞나 싶었지만 유하는 정확히 이 제품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보통 위생매트는 병원에서 많이 쓰는데 몸이 불편한 중환자들 엉덩이에 깔아준다. 혹시나 자신도 모르게 배설물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구입한 게 또하나 있는데 대형 생리대였다. 평소에는 면생리대를 썼지만 출산 후 많은 분비물(오로)을 처리하기엔 면생리대는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유하가 이끄는대로 그렇게 준비를 했다.

며칠 뒤 주문한 가위와 배꼽폐색기가 도착했다. 배꼽폐색기는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허술해보였다. 시험삼아 하나를 뜯어 집어 보았는데 한 번 집고난 후에는 다시 벌어지지 않는 구조였다. 탯줄로 들어갈 수도 있는 외부 오염물질은 확실하게 막아줄 것 같았다. 

가위는 확실히 일반가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두 날을 고정하는 중심부분이 날의 끝 쪽으로 훨씬 더 치우쳐져 있었고, 두 날의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게 정교했다. 시험삼아 종이를 잘라보았는데 힘을 덜 들이고도 단번에 자를 수 있었다. 살을 자르는 목적의 가위가 다르긴 달랐다.

정말 더 준비할게 없어? 위험할 땐 병원~

중요 장비 세 가지 외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집에 있었다. 진통 때 활용할 짐볼(공기를 넣는 큰 고무공)은 처형이 다이어트용으로 구입한 걸 빌렸다. 다만 2cm 정도 높이의 돌기가 빼곡히 박혀있어서 불편했지만 얇은 담요를 몇 장 덮고 앉는 것으로 해결했다. 

출산 때 깔 요는 당연히 집에 있었고, 벽에 기댈 때 필요한 등받이 쿠션도 몇 개나 있었다. 분비물을 닦아낼 수건도 여러장 있었고, 출산 때 이리저리 쓸 용도의 아주 큰 수건은 강원도 양양에 사는 이웃 지산님이 보내주셨다.

출산 상황을 여러번 그려보고, 재현해봐도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준비물을 다 준비하고 나니 목 아래까지 올라갔던 긴장한 심장이 본래의 자리로 내려온 것 같았다. 가정출산을 하겠다며 큰 마음을 먹었지만 늘 불안했다. 

출산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가정출산을 하러 간 조산사의 가방을 소개했는데 장비가 어마어마 했다. 배꼽폐색기나 가위 따위는 보이지 않고, 휴대용 심장제세동기를 비롯 각종 의약품과 주사기 등등 의료장비들이 큰 가방안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산모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준비해야하는 장비들이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했고, 간단한 만큼 고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빨리 끝났다. 우리는 응급상황이 생기면 즉시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정했기에 응급상황을 위한 장비는 준비하지 않았다. 

분만 할 수 있는 병원이 안동에 있었으므로 안동까지 가는 30분이 응급상황에 좀 길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태연했던 건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연출산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출산을 해 본 경험자 입장에서 보면 철없고 뭘 모르고 한숨이 나오는 ‘믿음’이지만 우린 그것 빼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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