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인데, 집 짓는 일은 축사를 짓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축사는 건물을 짓기도 전인 허가 과정에서 마음을 소모한다. 허가가 가능한 지역이 매우 제한적이고, 운좋게 제한적인 지역 안에서 짓고자 해도 걸림돌이 많다. 

축사가 들어선 이후에는 주변의 재산가치를 하락시키고, 가까운 마을은 악취와 오폐수로 피해를 입는다고 알려져 있어 반대가 심하다.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허가업무를 대행하는 설계사무소도 마음 편히 일을 진행시킬 수가 없다. 심지어 일부 건축사무소에선 축사업무는 아예 맡지 않는다. 골치가 아픈 일을 맡지 않고도 일거리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축사가 추진되는 마을에는 곳곳에 축사 반대 현수막이 걸리고, 집회나 항의방문이 이어진다.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를 아는 좁은 군 단위 지역에서는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농장도 축사를 짓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 집은 골짜기 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다. 집 앞으로 200m만 더 가면 길이 없다. 길 끝에는 다른 사람의 논과 밭 각각 한 뙈기 씩 있을 뿐이다. 그래서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 탓에 차 엔진소리가 들리면 엔진회전수에 심장이 동기화가 된다. 부릉부릉부릉 -> 두근두근두근 우리 집에 항의하러 온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볼 일을 보고 다시 돌아나갈 때까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역시나 화가 난 몇 분은 집 앞에서 크락숀을 울리며 나를 불러내고는 항의를 했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우리의 사육방식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고, 악취나 폐수가 없고, 혐오스럽지 않은 축사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돈사’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오리라 예상하고 허가를 받기 6개월 전부터 주변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렸었다. 허가를 받는 시기가 되어서야 항의를 한 건 그만큼 축사허가가 힘들기 때문에 ‘설마’하겠나 하고 기다렸던 것 같다. 허가를 못 받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육식을 병행하고,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40kg이 넘는 시기에, ‘채식주의자’가 아닌 ‘육식주의자’의 축사건축 반대는 이유가 있다. 정미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 중 한 곳에 별로 크지도 않은 돈사가 있는데, 냄새… 아니 악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맡을 일이 없으니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수구 냄새’도 아니고, ‘며칠 지난 음식물 쓰레기통 냄새’도 아니지만 그 둘을 합친 것보다 심각한 악취를 풍긴다. 백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는데도 페인트 통에 코를 박고 있는 느낌이었다. 냄새를 감지하는 후세포는 금방 피로해 진다고 하지만, 돈사 냄새는 끊임없이 후세포를 자극했다. ‘악취고문’이었다.

악취가 심한 이유는 명확하다. 밀식사육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서 사는 돼지들이 싼 똥오줌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제대로 발효되지 못하고 가스(암모니아, 페놀류, 아민류 등)를 발생시킨다. 분뇨를 처리하는 기술과 악취를 저감하는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긴해도 기존 축사들이 즉각적으로 도입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축산업은 큰 자본이 필요한 만큼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형 농장이 많다. 생활기반이 없는 지역에 축사를 짓고 직원을 고용하여 운영을 하는 형태다. 이런 축산업자에게 지역주민들의 피해민원은 안중에도 없다. 일부 부동산업자, 토목업자들은 외딴 곳에 땅을 구입한 뒤 축사허가를 받아놓고 높은 프리미엄을 받아 되파는 경우도 있다하니 ‘축사반대’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리는 그나마 군청 앞에서의 시위도, 현수막도 붙지 않고 진행되었으니 매우 다행이다 싶지만, 순조롭게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우리 축사 앞에 세 사람이 와 있었다. 차가 지나가는 것도 못 느꼈는데 그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은 산책을 가는 줄 알고 신나서 따라나섰다. 

축사가 추진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반대 현수막이 붙는다.

알고보니 옆 골짜기에 새로 이사 온 분과 건너 마을 어르신들이 오솔길로 넘어온 것이었다. “맑은 공기 때문에 여기로 왔는데 이게 뭡니까?” 그 분들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고개를 연신 떨구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럴 때는 동물복지나 축산업에 대한 포부 같은 건 뒷전으로 미루고 ‘생계’ 이야기를 꺼낸다. 마침 아이들을 데리고 간 덕에 설명이 쉬웠다. 둘째 윤하의 때아닌 재롱이 어르신들을 웃게 만들었다. 결국 새로 이사 온 아저씨는 윤하를 보며 “20년은 더 벌어야겠네!”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분들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날엔 마음이 참 괴롭다.

이곳에 온 지 7여년 동안 ‘자연농’을 실천해보겠다며 매년 실패를 거듭했다. 자연농은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땅을 갈지 않으며, 퇴비나 화학비료, 농약을 쓰지않는 방식의 농사다.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논밭은 묵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탓에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거기서 뭐 먹고 살라니껴?” 우리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골짜기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걱정이었다. 실제로도 2,000평도 안되는 땅에서 ‘자연농’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이런 우리가 “흑돼지 몇 마리 키워보려구요.”라고 했을 때 다들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겉으로는 ‘그래 그렇지, 그렇게라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반응이었다. 축사를 왜 반대하는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만큼의 반응도 너무나도 고맙다. 이제는 웃으시며 인사하고, 예전처럼 채소도 갖다 주시고 편하게 지낸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삽겹살 집에서 회식을 하거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때, 그 누구도 눈치를 보거나, 항의를 받거나, 혹은 현수막이 걸리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주는 돼지들과 그들을 키우는 이들에겐 혐오와 비난, 항의가 빗발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와 같은 소규모 ‘자연’양돈 농가들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레 그런 인식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생명에 대한 예의 – 이 말은 참 쓰기가 껄끄럽다 -를 조금씩이라도 생각한다면 변화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축사신축은 이제 두 공정만 남았다. 이제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다. 과연 생각한대로 실천하며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께서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2018년 12월 2일에 한겨레 애니멀피플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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