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참 가깝니더~” 축사 위쪽 밭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며 외쳤다. 아주머니는 3km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시는데 이곳까지 산책삼아 걸어오시는 것 같았다. 축사는 우리집에서 200m 떨어져 있으니 참 가까운 것이다. 머쓱하게 “예~ 그치요.”하고 대답을 했다.

축사가 완공이 되고, 돼지들이 이곳에 자리잡은 뒤부터는 매일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돼지를 굶기면 안되니까 말이다. 보통 내가 도착하면 대부분은 몸을 파묻고 자거나 쉬고 있다. 내 발걸음 소리를 누군가 듣게되면 짧고 굵게 ‘꿀’한다. 아마 다른 돼지들에게는 ‘밥 주러 왔다.’정도로 들리나 보다. 그 때부터 “꿀꿀” 소리가 시작되고 축사 입구에 다다를 즈음엔 귀가 아플정도로 요란하다. 꼭 양철판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같다.

잠입에 실패하고, 상태가 그 정도 되면 뛰어야 한다. 대단히 흥분한 수십개의 눈과 소리가 나를 향한다. 일단 발효실 앞까지는 뛰지만, 발효실 문을 열고는 잠깐 발효향을 느낀다. 천연발효빵 냄새, 된장 냄새, 청국장 냄새가 뒤섞여 있다. ‘오늘도 발효가 잘 됐군’ 속으로 생각하며 사료를 외발수레에 옮겨 담는다.

밥통 자리에 사료를 놓으면 주로 혀를 이용해 떠먹는다. 그렇다. 개처럼 핥아 먹는게 아니라 혀로 떠먹는다. 풀이나 과일은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먹지만, 대부분 가루로 돼 있는 발효사료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쩝쩝’ 먹는 소리는 요란하다. 어릴 적 ‘쩝쩝 거리지 말고 먹어라’하고 혼나던 게 자꾸 떠오른다. 돼지들 서로는 그런 밥상예절이 없는게 분명했다.

사료를 주고 나면 다시 사료를 섞는다. 미강이라고 부르는, 현미를 백미로 만들며 나온 가루가 주 재료다. 가축(주로 소)에게 많이 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알려져있다. 돼지도 마찬가지인데 (발효가 덜 된) 생 미강을 먹으면 여지없이 설사를 한다. 예전에는 죽을 끓여서 먹였지만 요즘에는 공장에서 나온 배합사료도 싸기 때문에 잘 안먹인다. 우리는 발효를 통해 먹을 수 있는 사료로 변신시킨다. 섞은 재료들이 하루 이틀만에 55도정도까지 치솟는데 여간 흐뭇한게 아니다. 

작년 여름 일곱마리였던 돼지들은 에크와 삼일이가 새끼를 낳아서 17마리가 되었고, 백설이와 굴이, 메이가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안동의 한 농장에서 흑돼지들을 데리고 왔다. 작년 가을부터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라 이미 덩치가 크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이사가 예약돼 있다. 키워서 내보내는 녀석들은… 이름이 없다.

돼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 일도 함께 늘고 있다.
발효사료를 위한 발효실을 만들었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추면서, 통풍도 잘 돼야 한다.

마릿수가 늘어난 뒤부터는 발효시켜야 할 사료의 양도 늘어났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이 넘쳐나서 마음이 바쁘다. 축사가 준공이 됐다고 해서 끝난게 아니었다. 80톤 톱밥을 삽으로 퍼 넣었고, 돼지 음수용 물꼭지 설치도 꽤나 골치가 아팠다. ‘창고’로 지은 곳은 작업대, 선반, 발효실을 만들어 이제 작업실로 불러야 한다.

사료통도 스텐레스으로 된 기성품을 설치하려고 했었는데, 5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라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대구의 공단까지 찾아가 스텐 철판과 파이프를 구입했다. 대략 1/10가격으로 더 효율적인 사료통을 곧 만들 예정이다.

해야할 일들이 태산 같은데, 며칠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했다. 바로 똥치우기다. 우리 농장 축사는 ‘톱밥발효돈사’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톱밥 위에 똥오줌을 싸면 절로 발효가 일어나 냄새나 파리가 덜 생기는게 특징이다. 심지어 발효된 똥을 돼지들이 먹기도 한다. 비닐하우스 임시 축사에서 그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진짜 자기들의 발효된 똥을 먹었다.

당황스럽게도 새 축사에서는 내가 ‘돼지 더위 쉼터’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에 똥을 쌌다. 전부 톱밥(흙)바닥으로 돼 있으면 여름철에 더울 게 뻔하므로 한 쪽에다 1.2m 폭으로 길이 16m, 10m 되는 콘크리트 공간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스프링쿨러를 설치해 냉수 사우나가 될 자리였다. 건축업자와 눈치싸움을 엄청 했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을 화장실로 쓴 것이다. 각 방의 돼지들 모두 똑같이 행동한다.

다행인 건 싼 똥들은 화장실을 오갈 때 밟히고 펴져서 말라붙었다. 냄새도 안날 뿐더러 발로 밟아도 별 감흥이 없다. 끝이 사각인 삽으로 벗겨내듯이 긁어냈다. 오래된? 똥은 꽤나 힘을 줘서 긁어야 했지만 다 긁고 나니 이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긁어낸 똥은 외발수레에 담아서 퇴비사로 옮겨두었다. 나중에 톱밥과 함께 발효를 시켜 밭으로 낼 것이다.

이사온 뒤 바로는 도망을 가더니, 며칠 지난 뒤부터는 날 보면 밥달라고 몰려온다.

어제는 하하농장 사업자등록증에 ‘양돈업’을 추가했다. 한 때는 혐오하던 분야였는데, 이제는 나와 아내의 직장이 되었다. 우리는 공히 ‘양돈업자’다. 매일 아침 돈사로 출근해서 돼지들을 돌보고, 축사를 관리해야 한다. 1월 30일에 축산업 허가를 받았으니 이제 새 직장에 두어달 나간 셈이다. 아쉽게도 이 직장은 휴일도 없고, 정년도 없다. 오늘 한 일이 평생 반복될 일이어서 부담되는 건 없다. 다만, 돼지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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