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옆으로 흐르던 강
첫 날 야영한 곳의 풍경
밭이 안보여서 어디서 농사짓나 했는데, 라싸를 조금만 빠져나오지 이런 농경지가 많이 펼쳐졌다.

꿈같은 티베트 자전거 주행

라싸에서 출발한 날은 많이 헤맸다. 정확한 지리를 모르던 까닭에 그저 서쪽으로난 길을 따라갈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던길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겠지 하던 것이 20km가 넘도록 방향이 바뀌지 않자 그제서야 내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라싸로 돌아갔다.

도중에 도랑 옆에서 밥을 해먹었다. 밥은 물을 많이 넣고 한참을 끓였는데도 잘 익지 않았다. 씹히는 맛이 그렇게 기분나쁜적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꿈만같던 티베트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길이 잘못됐다는 사실도 크게 감정을 훼손하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길은 좋은 길이 아닌 다소 덜포장 된 도로였다. 숨은 평소보다 많이 찼지만 기분만은 어느때보다 최고였다. 첫날은 길도 헤메고 해서 많이 달리지 않은 상태에서 야영을 했다. 여행을 떠난 이후 처음 야영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텐트를 줄 곧 들고만 다녔는데, 티베트에서는 위험하다는 생각지 전혀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선해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도로위로 다니는 차량이나 사람들이 매우 드문 편이었다. 살짝만 가려진 곳에서 야영을 한다면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누군가가 발견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설익어 푸석푸석한 맛을 내는 밥이 조금 미웠지만 잔잔한 물소리와 파란하늘, 황량하지만 신비한 산의 자태에 침을 흘려야만 했다.

 깊은 계곡을 통과할 때는 뜬금없이 번개가 내려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넓은 강을 따라 지나는 길에서는 강물 저 끝까지 보이는 듯 훤했다. 바람도 고요하고 기온도 너무나 적당했다. 지나치는 마을의 사람들도 너무나 순수해보였다. 아이들도 호기심에 넘쳐 지나가기가 무섭게 따라붙으며 좋아했다. 이제야 자전거 여행을 제대로 하는 것 같구나 싶었다. 그 전까지, 중국에서 자전거를 탄 것은 정말 고생이었지 여행이 아니었던 것 같앗다.

 정말로 꿈같은 주행의 연속이었다. 피곤한 일주일을 보내고 일요일 늦게까지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따스한 햇볕을 맞이하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시야는 상당히 멀리까지 깨끗하여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던 산까지 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도로는 왜그렇게 잘 닦여 있는지 중국의 티베트 지배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설마 저 산을 넘나? 하고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저 사이로 난 계곡을 따라 지나면 되는 거였다.
산에 걸린 구름이 비를 뿌렸다. 그리고 무지개를 던졌다. 옛다~
펑크수리를 하는 다른 여행자들. 티베트는 식물들이 정말 거칠다. 가시가 달린 가지만 밟아도 바로 펑크!
사람 사는 곳을 빠져나가니 식물이라곤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힘이란!
수시로 양떼/염소떼와 마주쳤다. 아직도 유목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았다.

자전거 여행 중 최악의 동행

 며칠 간의 야영으로 근질근질해진 머리를 감으려 계곡물에 머리를 담그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수염을 길게 길러 중국사람인지 티베트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않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나의 자전거 뒤에 그의 자전거가 있었다. 중국난징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였다.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였다. 성격이 괜찮은 것 같아 함께 주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대단히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 이상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장’아저씨는 자전거 여행을 상당히 즐기는 사람이었다. 7년째, 매년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집은 난징(남경)으로 남쪽으로도 가보고, 북쪽으로도 가보고… 하여튼 수많은 곳을 다녔다. 티베트는 난징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안, 골무드 방면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자전거는 대단히 낡고 부실해 보였지만 7년째 그 자전거만 타고 있다고 자랑하셨다. 짐도 나처럼 짐받이에 메달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배낭을 뒤 짐받이에다가 얹고 묶어 놓았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항상 양 옆으로 기울었고 아저씨는 자주자주 확인을 했다.

가는 방향이 같아 거의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 장아저씨
처음엔 멋진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잠깐 휴식을 할 때는 무를 까 드셨다. 체력보충에도 좋고 고산증에도 좋다고 했다. 사탕도 먹고 비스켓도 먹었다. 점심은 드시지 않았는데 나처럼 취사도구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의 점심은 항상 비스킷으로 떼우는 것. 나는 점심을 대량으로 먹지 않으면 금방 퍼져버리기에 신기할 뿐이었다.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휴식할 때나 아침이나 저녁에 분위기 잡는걸 좋아했다. 아니 그 아저씨는 뭔가 하더라도 분위기가 있어보였다. 코도 크고 눈도 들어가고, 얼핏보면 뉴에이지 작곡가 ‘야니’를 닮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중국인처럼은 보이지 않아 혹시나 다른나라사람인가 물었는데 토종 중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외모에 조용한 성격에 그리고 기다란 머리카락과 수염까지.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면 영화속 주인공이 분위기를 잡는 듯 느껴졌다.

 야영을 잘 하지않는 그였기에 위험스럽게 밤까지 주행하기도 했다.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그가 싫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티베트를 티베트라고 생각하는 나와 티베트는 중국땅이라고 생각하는 그와 맞지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중국어를 못하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며 식당도 항상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그와 계속 같이 다니다가는 티베트를 느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중국에 대한 불만만 쌓이다가 끝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
티베트 사람 집. 네모나게 생긴 집이지만, 주변풍경이랑 참 잘 어울렸다.
어딜 쳐다봐도 신기했다.
해가 지평선에 걸리도록 달렸다.
나는 텐트가 있고, 식량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에 어디서나 야영할 수 있었지만 장 아저씨는 ‘숙소’를 꼭 찾아야했다.
해는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고 뒤 쪽 하늘 위에는 붉은 구름이 걸렸다.
밤 늦게까지 도착한 곳은 어떤 식당 옆의 창고. 이 식당도 중국인이 하는 식당. 나는 티베트 사람과 교류하고 싶었다. 점점 불만은 높아졌다.

 3일을 함께 달려 시가체에 도착했다. 여행안내서에 나오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에 가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일방적으로 그런데는 비싸고 좋지도 않다고 자기가 알아볼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두어군데 알아본 후에 두사람 25원짜리 방을 알아냈다. 들어가보니 그럭저럭 깨끗은 했다. 내가 가자고 했던 곳은 한사람 30원이었으니까 가격도 괜찮았다.

창문이 깨져있고 옆방과 얇은 합판으로 가려져 있는 것이 불만이긴 했다. 빨래와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샤워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그곳에는 없다고 했다.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5원을 내면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낮동안 헤어졌다가 저녁에 방에서 다시 만났다. 아저씨는 볼에다가 그림을 그려왔다. 한쪽은 중국지도였고 한쪽은 붉은 오성기였다. 자신의 애국심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좋긴 했지만 그곳은 아직도 독립운동을 하고, 중국사람에게는 특별한 불친절을 베푸는 티베트였다. 그 불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서 무엇을 먹을지 의논했다. 항상 중국인 식당에만 가던 것을 생각하며,

“워 야오 츠 티벳차이, 뿌 쭝궈더”(티벳요리 먹고싶어요. 중국거말고)

“짱차이마? 짱차이 예 쭝궈더 차이, 쯔다오마?”(장족요리? 장족요리도 중국요리야. 알겠어?)

나는 아무생각없이 말한 것이었는데, 아저씨는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항상 티베트를 티베트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고, 아저씨는 그 반대였을 것이다.

 숙소에서 멀지않은 식당을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청소를 하던 두 티베트 소녀가 기겁을 하며 문을 닫으려 했다. ‘어~’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귀신이라도 본 듯한 놀란 눈빛을 뿜어냈다. 아저씨는 다소 무안했던지 숟갈을 입으로 넣는 시늉을 하며,

“츠 판!!”(밥먹는다고!)

라고 소리치곤 거의 닫혀진 문을 밀치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너무나 놀라운 장면이었다. 분명히 중국군인들에 의해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에 틀림이 없었다. 아저씨 상의가 얼룩무늬 군복이었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어린 소녀들이었으니까 최근에도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자리에 앉아도 메뉴판을 갖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있는 티베트어를 총 동원해서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것을 표현해 보았지만 식당 내의 묵직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밥을 먹는 중에도 계속 침묵을 지켰다. 더 이상 그 아저씨와의 동행은 힘든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저씨에게 시가체에 며칠 더 머물것이라 얘길하곤 이별을 고했다.

장아저씨의 복장. 어찌 이렇게 민감한 지역에서 군복을 입을수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 아저씨 갈 길 가세요!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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