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티베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나라이다. 수도 ‘라싸’는 고도가 3700m에 달하며, 서부티베트는 평균고도가 4000m를 넘는다. 천만다행이게도 그렇게 고도가 높지만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고원’지대라 사람이 어렵사리라도 살만한 것이다.

고도가 낮은 보통의 지형에서 살던 사람이 이 고원지역에 오게되면 대부분이 고산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정도로 높지만, 이곳에 적응된 티베트인들은 특별한 문제없이 잘 산다. 오히려 티베트인들은 평지로 내려갔을 때 몇일동안 앓는다고 들었다.

그렇게 높은 곳이기에 특징적인 풍경이 있다. 첫 번째, 너무나 맑은 공기. 공기가 희박하긴 하지만 이 높은 곳에는 제대로된 공장이 없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가며 본 공장이라고 할만한 것은 산을 깎아 건축재료를 만드는 ‘채석장’ 같은 것뿐이었다.

또, 먼지가 없다. 티베트 거의 대부분이 고원사막지대로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형이다. 그렇기에 먼지가 꽤나 많이 일어날 것 같은데 금방 가라앉는건지 없다. 두 번째, 건조하다. 자전거를 타고가다보면 숨을 쉬기가 바쁘게 입안이 바짝 말라버린다. 물로 입안을 적신 후에 십분이 안되어 입안이 마르니!

라싸 근처의 강변 풍경.
고도 5000m에서 바라본 풍경. 말그대로 고원지역.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 꿈 같던 길.

보통의 평지 위에는 먼지와 습기가 많아서 먼 곳까지 내다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불과 몇 키로 앞도 내다보기 힘들 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봄, 가을에 가끔 오호츠크해 기단이 맑고 깨끗한 기운을 가득 몰고와 상당히 멀리까지 볼 수 있을 때가 있다. 

티베트가 그렇다. 거의 항상 그렇다. 아니 훨씬 더 깨끗하다. 한번은 높은 고개위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산까지 한시간이면 도착하겠지 했던 것이 몇시간이 걸려 도착했을 때도 있다. 또, 시가체라는 도시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미국인 친구 둘과 고도 4000m에 육박하는 산에 올랐었다.(시가체가 4000m에 육박하니까! -.-;) 날카로운 돌에 손이 찢어지고 길도 없어 힘들게 올랐다. 

원래 일몰을 보려고 올랐었지만 그날은 날씨가 흐려 해는 구름속에 갇혀있었다.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시내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구름은 시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는데, 모두는 기상캐스터가 되어 ‘시가체에 곧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보’하고 그곳을 재빨리 내려왔다. 못해도 20~30km 의 것까지 눈앞에 펼쳐진 듯한 선명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셋 째, 뭉게구름 천국이다. 우리나라에서 봄, 가을에 가끔 볼 수 있는 뭉개구름을 우기가 끝난 가을철 티베트에서는 매일 볼 수 있다. 다른 계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그 때는 거의 항상 그랬다. 파아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들. 거기다가 무채색의 티베트 마을들, 산들, 벌판과 어울려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산증에 약한 나는 매일을 나른한 기분 속에서 지냈다. 그런 상태로 그런 풍경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칠 때는, 몽롱한 꿈속 나라에서 물속을 헤치듯 하늘나라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뭉게구름, 민둥산, 양떼. 척박한 곳이지만 억센 풀은 자라고, 이렇게 목축도 하고 있다.
양 치는 아저씨. 이 사진은 교과서 사진으로 팔렸는데 어느 책인지 모르겠다.
풍경이 신비함 그 자체이다.

넷 째, 고원 사막지역이다. 고도가 4000m가 넘어가면 세계어디에서든 자생적으로 식물은 살기 힘들게 된다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균고도가 대충 4000m인 티베트엔 자생적으로 자란 식물이라고는, 키 작고 억새기 그지없는 나무들 밖에 없다. 

그 억새기로는, 식물 가지의 가시가 자전거 타이어 펑크를 하루에도 네 번이나 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면 알만할 것이다. 길 주변에 보이는 산들은 그 식물이 있든 없든 다 민둥산처럼 보인다. 아니! 민둥산이다. 둥글둥글한 구릉성 산도 있는가 하면 칼로 도려낸 듯 날카로운 정상과 계곡을 가진 산들도 있다. 

보통 봐 오던 산들이 대부분 나무로 빽빽하여 그 산의 실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 이곳은 다 벌거벗겨져 있어서 그 산의 내막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공기도 깨끗하기에, 멀리있는 산이라도 고배율 망원경만 있으면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다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풀 뜯는 말들과 푸른하늘, 뾰족한 산.
머릿짐을 지고 먼 길을 가시던 아주머니.
칼 같은 산들.
작은 마을.

한번은 저녁 늦게까지 주행한 적이 있다. 해가 넘어갈 때쯤엔 야영지를 찾고 야영을 해야했지만 동행했던 아저씨는 여관을 고집을 했었다. 그래서 해가 넘어가는 것을 길 위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 전까지도 눈부신 빛을 발하던 태양. 지표면 위로 빛을 반사할 수 있는 물질이 희박하여 그런지 해가 넘어간 이후로 급속도록 날은 어두어졌다. 

보통은 주변의 수증기가 붉게 물들어 황홀한 색상으로 세상을 덮지만 공기중 수증기 양이 적어 그런 것은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고 페달을 밟으려다 우연히 뒤를 돌아보았다. 뒤편에 펼쳐진 풍경은 심장을 멎게끔 만들었다. 지표면의 모든 것은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민둥산 위로 피어있는 거대한 구름들은 오렌지 빛깔과 붉은 빛깔로 온통 물이 들어있었다. 

태양이 지는 쪽이 아닌 그 반대편이 그토록 물이 들어 아름답게 펼쳐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 이후로도 보지못했다. 소리없이 불타오르는 장엄한 구름의 풍경은 결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풍경 자체만으로는 그때까지 그 것이 최고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한다. 티베트의 특별한 자연배경이 아니면 그러한 풍경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해 지는 반대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무 맑아 오히려 서쪽하늘은 멋이 없었다.

티베트 풍경! 물론 모든 곳이 그곳만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티베트야말로 가장 특이하다고 할만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신비한 풍경들. 그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이 신비한 자연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푹 적시고자 방문한다. 결코! 자동차로 이곳저곳 휙휙 날아다니는 여행으로는 체험하기 힘들다. 티베트는 한번이고, 두 번이고, 몇 번이고 여행한다고 해도 결코 지겨운 곳이 아닐 것 같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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