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려서 높은 산 쪽은 안개로 덮여있다.
중앙에 우뚝 선 건물이 발팃성
살구나무들이 정말 많다.
마을 건물과 설산. 설산은 흐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가게 아저씨. 여기서 말린 살구를 사서 먹었다.
성품이 너~무 좋으셨다.

몇일동안 대화만 하다보니, 훈자의 신비한 풍경이 아쉬워할 것만 같았다. 그곳까지 가서 그 풍경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흐려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괴상한 핑계였다. 폭우가 쏟아져도 자전거를 타는 나이기에.

숙소를 나와 뒤쪽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너무나 한산한 분위기에 ‘이렇게 유명한 여행지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하고 생각했다. 반면에 이런분위기가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길을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살람알레쿰’하고 인사하면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레쿰살람’이라고 대답했다. 어린아이들은 어찌나 순수한 눈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이라도 빠질 것만 같았다. 

네팔이나 인도에서처럼 그 어떤 어린이도 돈을 달라거나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여행객을 보면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치면 ‘꺄르르’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여행자가 많이 찾고 있음에도 이토록 사람들이 순수한 것을 보면 사람들 스스로 그것을 지키는 듯 느껴졌다.

기념품 상점에서 내어놓은 훈자마을 엽서는 정말 아름다웠다. 훈자의 4계절을 파노라마로 담은 것이었는데,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참 드물것이라 생각했다. 또, 살구를 많이 키우는 곳 답게 살구를 말린 것 등 각종 지역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전날 다른 여행자에게서 얻어먹은 살구말린 것이 생각이 나 한봉지 사서, 달달한 그것을 하나씩 씹으며 올라갔다.

황량한 그 지역의 특색답게 집들은 대부분 커다란 바위를 네모나게 깎아 쌓은 돌집이었다. 또, 과거 훈자공국의 왕이 살았다고 하는 발팃성에 도착해보니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했지만 그 둘레만 도는 것은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그곳 ‘카리마바드’는 우루무치와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와 조금은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그랬기에 자동차 소리가 거의 없는 그곳은 고요 그 자체였다. 발팃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과 깊은 계곡에서는 불을 뿜는 익용이 한 마리 나타나 두리번 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뜨끔하며 도망갈 것 같았다. 시간은 대낮이었지만 두터운 구름으로 인해 어두침침한 분위기,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여행 안내서를 들춰보니 발팃성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그 쪽으로 몇시간만 오르면 굉장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다. 마을이 크지않아 그렇게 돌아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올라가보기로 결정하고 성을 돌아 뒤쪽으로 갔다. 아무래도 성이 그 마을의 끝인 것 같았다. 그 뒤쪽으로 왼쪽 오르막 사면으로는 황량한 언덕이고, 오른쪽 내리막 사면으로는 밭으로 갈아놓은 상태였지만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큰 바위가 떡하니 놓여져 있었고, 그 뒤로는 높은 부분은 구름에 가려 끝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높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절벽같은 산이지 절벽은 아니었다. 내가 가야할 길은 안타깝게도 그 절벽같은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큰 바위를 돌아들어갔다. 굉장히 날카로운 계곡으로 물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일으키는 높은 소리는 귓가에 맴돌며 겁쟁이 인 나를 공포에 빠뜨렸다. 용기를 내어서 더 들어갔다. 5분정도 더 들어갔을 뿐인데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오래전에 남겨진 듯한 발자국 이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갑자기 검은 옷의 유령이 덮칠 것만 같아, 하얀 소복의 여인이 불쑥 나올 것 같아 ‘다리야 나 살려라’ 하고 뛰어 나왔다.

그 길을 떡하니 지키고 있던 큰 바위를 지나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갑자기 세상이 밝아진 듯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무한한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나의 얼굴은 미소를 지었다. 하늘을 보았다. 땅을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방까지만해도 그들은 하늘이고 땅이고 바람이고 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은 그저 인간들이 편의상 붙여놓은 명사로만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되었다. 그리곤 앞서 혼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대단히 부끄러웠다. ‘명사로만 표현할 수 없는 무엇’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들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내가 ‘혼자’라고 생각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마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지나가는 아이. 눈이 어찌나 큰지!
높은 돌담과 살구나무.
앉아 쉬시는 할아버지.
날 보러 뛰어온 아이.
마을 풍경.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분도 찍었다. 부끄~
살구꽃이 만개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계절에 왔을까!
이런 풍경을 보며 혼자서 산을 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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