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떡해! 돼지들이 탈출했어!” 전화기 너머로 아내 유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던 일을 급하게 접고, 아주 전속력으로 집 앞 임시축사까지 허겁지겁 뛰어갔다. 150m를 뛰어가며 오만가지, 십만가지 생각이 멤돌았다. ‘돼지들이 산으로 올라갔다면?’, ‘논에 들어갔다면…?’ 끔찍했다.
작년 여름에 씨돼지를 할 요량으로 데리고 온 녀석들이 탈출한 것이다. 거의 10개월을 산 녀석들이라 7~80kg은 거뜬히 나간다. 도망갔다면 한마리 한마리 잡아와야한다. 힘 좀 있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건강한 돼지, 아니 건장한 돼지들을 잡아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껏 큰 문제없이 축사를 준비했는데 ‘이제 망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도착해보니 하우스 안에는 두마리가 보였고, 다른 돼지들이 어디있나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법같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흩어져 있던 돼지들이 나에게 오는게 아닌가. 다섯마리의 돼지들이 거짓말같이, 정말 마법같이 나에게 왔다. 순진무구 초롱초롱한 눈망울, ‘아저씨 밥주러 온거야?’하는 표정을 하고 총총총 걸어왔다.
뭉클해졌다. ‘고맙다. 그런 눈빛으로 맞이해주어서!’. 동시에 애매한 감정이 또하나 솟았다. 나는 이들의 자손을 키워서 죽이고 고기로 팔아버리는 사람이다. 나는 이 돼지들에게 아주 나쁜사람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를 최소한 ‘밥 주는 사람’으로, 이곳을 자기들의 집으로 생각해 준 것이다.
잠시 전까지의 절망스러운 마음은 다 사라지고, 어디로 빠져나왔는지가 궁금해 졌다. 아니나다를까 돼지들의 습성대로 코로 땅을 파며 놀다가 허술한 철망까지 들어올린 것이다. 축사가 지어지기 전에 임시로 만든 곳이라 대충만든 탓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큰 돼지들이 한 뼘 조금 더 되는 좁은 틈을 빠져나온게 신기했다.
안으로 들여보내는 방법은 딱 한가지였다. 비닐하우스 안에다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다. 먼저, 가까이 있던 루핀(콩의 일종)을 몇 바가지 던져넣었다. ‘개구멍’ 주변에 있던 두마리가 토끼처럼 재빠르게 들어갔다. 개구멍과 거리가 있던 나머지 세마리는 여전히 꿀맛 같은 산책을 즐겼다.
두 번째로는 이들의 주식인 발효사료였다. 미강(현미를 백미로 만들며 나온 가루)을 여러가지 재료와 섞어 발효시킨 것인데, 향기가 좋다. 때에 따라 천연발효빵이나 된장냄새가 난다. 돼지는 후각이 개보다도 더 발달했기에 냄새로 유인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세 마리 중 두 마리에게 기가막히게 통했다. ‘빨리 먹어야하는데’하며 허둥지둥 개구멍을 찾아서 들어갔다.
마지막 한 마리는 두 가지 작전에도 끄덕없었다. 어슬렁 거리며 여기저기 냄새맡고, 코로 땅을 파보고 다녔다. 그때 아내가 “사과를 줘볼까? 돼지들이 사과 좋아하잖아”라며 마지막 작전을 세웠다. 사과는 우리집에서 돼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다. 보통 주변 과수원의 낙과를 얻어다 주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먹으려고 사다 놓은 사과였다.
아주 큰 사과 한 개를 눈앞에 딱 갖다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느꼈다. 바로 뒷걸음질로 개구멍 앞까지 유인했다. 그러고는 볼링공을 굴리듯이 개구멍 안으로 사과를 밀어넣었다.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사과를 따라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탈출한 돼지들을 모두 우리안으로 돌려보내고, 뜯어진 개구멍을 수리하고나니 순간 울컥해졌다. 나를 보면 여기저기 도망가며 흩어질 것만 같았는데, 강아지처럼 쫄쫄 따라오던 그 몸짓과 그 눈빛이 아른거렸다.
밖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가 집에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잔뜩 쌓인 루핀과 발효사료, 사과들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돼지들이 꼭 그 모습 같았다. 우리가 자연양돈으로 흑돼지를 키우기로 결심하기 전, 아내와 나는 3~4년 정도 채식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알고나니 육식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시골에 내려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두, 돈까스, 탕수육, 소시지 등등 고기가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시골에서 만나는 창이 없는 일반돈사를 만날 때마다 빛이 들어갈 틈도 없이 꽉 막힌 모습과 잊혀지지 않는 악취로 그 고민이 더 해졌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그런 돈사를 눈앞에서 보니 이렇게 생산된 걸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의 건강한 먹거리, 덜 미안한 먹거리를 위해 시작한 양돈이다. 생명을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불편함은 지울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채식을 하지 못 한다면 적어도 그 생명이 자라는 동안 만큼은 쾌적한 환경에서 최소한 생명에 대해 지킬건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돼지들의 탈출을 겪으며, 자연속에서 노는걸 즐거워하고 밥주는 사람을 기억해 쫄래쫄래 따라오는 이런 돼지들을 좁은 스톨에 가두고, 주사기로 수정시켜 새끼를 만들어 내고, 악취로 가득한 곳에서 짧은 기간 급속도로 키워내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문화를 꼭 바꿔야겠다고 확신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자연양돈 톱밥발효돈사 방식이 축산문화를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기존 축사에 개선점을 제시하고 대안을 보여주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자유연대 소식지 ‘함께 나누는 삶’ 2019년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