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하하농장 & 마사 소개

하하농장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작은 농장입니다. 농사를 짓고, 흑돼지를 사육합니다. 집 앞에 작은 식육공방을 지어서 다양한 식육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하>는 하하농장의 아이들 이름, 모하와 윤하에서 따 왔습니다. ‘하’는 강을 뜻하는 ‘하河’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을 닮고 싶어서 지은 이름입니다.
로고의 웃는 모양은 강(하)의 원천인 산을 상징합니다. 아래의 큰 입은 그릇을 뜻합니다. 자연에 가까운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창의적인 삶자립적인 삶행복하고 즐거운 삶지속가능한 삶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하농장의 ‘하하’는 흐르는 강을 뜻합니다. ‘마사’는 강과 함께 흐르는 모래입니다. 하하농장 정육점 이름이 바로 <마사>입니다. 농사도 함께 지을 예정이어서 정육점 이름을 따로 지었지만 일단은 ‘하하농장’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2~3주마다 직접 사육한 흑돼지로 생고기, 훈연햄, 소시지, 라드, 사골곰탕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MEMBERS

식구들

MEDIA

미디어에 비친 우리들

강의 & 강연

방송출연

기고 & 연재

한살림 살림이야기 집도 땅도 구하기 너무 힘들어, 부부의 우여곡절 농촌 정착기 _2015년 3월
<함께 나누는 삶> 동물자유연대 소식지 2019년 1월호
월간참여사회 7-8월호 ‘우리는 채식하다가 양돈업자가 되었다. ‘ _2021년 7
한겨레신문 [애니멀피플] 슬기로운 육식생활 _2018년 12월~

인터뷰

the bike 2009년 2월호 ‘길의 끝, 길의 시작’ _2009년 2월
전원속의 내집 182호 채색과 유하의 ‘온화전(田) 답답(畓)’ _2014년 4월
월간 참여연대 4월호 [만남] 유하, 모하, 채색 – 송유하 회원 _2014년 4월 7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1일자  돼지들아,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자유롭게_2018년 10월 1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달려라 자전거] 선정 _2008년
국민일보 [책과 사람―‘달려라 자전거’ 펴낸 김성만씨] 상하이∼리스본 432일간의 기록 _2008년 10월 13일

BOOKS

쓴 책

달려라 자전거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가을까지, 중국 상하이부터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 여행은 대단했다. 풍경 속에서 거친호흡을 쉬면, 풍경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글로는 다 표현할 줄 몰라서 재미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이 여행은 이후의 내 삶을 결정했다.

서울성곽걷기여행

서울성곽 여행안내서. 환경단체 활동을 하며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자연과 분리될 수록 환경파괴는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자연’을 자꾸만 별개로 인식한다.  ‘걷기’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좋은 ‘운동’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우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다. 제주올레, 지리산둘레길이 유행하던 그 때, 서울 가까운 곳에서 걸을 수 있도록 ‘걷는 길 안내서’를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활동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1년여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답사하며 책을 썼다.

TIMELINE

우리들의 간추린 이야기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귀농하다

기후변화, 동물들의 멸종 등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다. 숲 속에서 얻은 재료로 직접 집을 짓고, 작은 밭에서 농사지어 먹을거리를 모두 자급하고, 목화도 길러 옷도 지어입는 그런 꿈. 그러나 그 꿈은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시골에 가자마자 깨달았다. 그것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떠나본 적없는 땅과의 교감이 전혀없는 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무턱대고 덤벼든 자연농

귀농하기 전부터 유기농 농산물에 관심이 높았다. 생협같은 유기농 매장에서 먹거리를 구입했다. ‘농약에 찌든’ 농업이 싫었다. 또한, 기계가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 불만이 많았다. 석유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농업이 바뀌어야만 현대인들의 건강문제는 물론 환경문제 역시 해결이 가능할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농사는, 낫이나 괭이, 삽 같은 손도구만을 쓰는 ‘자연농’이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매년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의 이유는 다름아닌 능력부족. ‘자연농 꾸러미’를 운영하는 선배들이 너무 부러웠다. 2018년엔 옥수수와 들깨농사를 정말 열심히 지었다. 가을에 지인들에게 수확물을 팔았는데 수익은 80만원 정도. 헛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전 해에는 수익이 전무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익이었지만 우리 가족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농사는, 자연농의 꿈은 잠시잠깐 접어놓기로 했다.

생태건축 – 스스로 집짓기

집의 역할이 끝나면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는 집을 꿈꾸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서 벗어나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그런곳을 그렸다. 시골로 이주하며 읍내의 아파트, 오래된 시골집에 먼저 살았다. 어느날,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행에 옮겼다. 

그로부터 약 12개월 동안 거의 혼자서 ‘흙부대공법’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집을 지었다. 흙부대에 흙을 담고 다져서 벽을 쌓고, 중간중간에 철근과 철망을 넣었다. 부대 안팍으로 흙미장을 했다. 40cm가 넘는 벽두께 거의가 흙으로 되어 있다. 집을 짓는데 들어간 흙은 약 120톤에 달한다.

처음 터닦이를 빼고는 거의 혼자의 힘, 사람의 힘으로 해냈다. 이 집에 살게 된지 4년 째. 왜 흙집, 흙집 하는지 깨달으며 잘 살고 있다. 주거의 자립은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자연출산 – 부부가 집에서 낳은 하하형제

“임신은 병이 아니잖아요? 왜 임신을 하면 병원엘 가죠? 아기가 병이에요?” 선배에게 들은 출산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임신을 하면 산부인과’라는 ‘당연한’과정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켠에 자리를 잡게 됐다.

자연주의출산 관련 책을 보며 우리도 스스로 출산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집도, 먹을거리도, 입을 옷도 스스로 짓기를 꿈꾸는데, 아이도 자연스럽게 우리가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첫째 모하는 2013년 12월 17일 오래되고 작은 시골집에서, 둘째 윤하는 2016년 12월 23일 스스로 지은 흙집에서 부부의 힘으로 낳았다.

슬기로운 육식생활 – 채식하던 우리가 돼지농장을 열다

2008년 광우병 시위를 계기로 육식문화에 대한 현실을 엿보게 됐다. 고기를 좋아했지만 사육의 현실을 본 뒤로는 그 이전처럼 좋아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너무 무지한 상태로 육식을 해왔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나(성만)는 3년정도, 유하는 4년정도 채식생활을 했다.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었던 나에게 친구들은 ‘니가?’라는 반응이었고, 나는 ‘내가 사냥해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맨날 사냥만 하러 다닐거야.’하고 대답했다. 사육문화에 대한 반기였다.

시골로 이주한 뒤 이웃 중에 몇 분이 건강하게 흑돼지를 키우고 있었고, 맛이 꽤 괜찮았다. 우리에게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어느날 우리를 돌아보니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육식문화, 사육문화에 대해 불만과 고민이 많았던 터라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했고, 2018년도에 축사 준공, 2019년도에 축산업 허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 농장을 운영하던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약 240평의 축사에 최대 150마리의 돼지들이 생활한다. 어미돼지들은도 케이지가 아닌 4평정도 되는 널찍한 돈방에서 새끼들을 돌본다.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은 숭숭 통한다. 바닥은 깨끗한 톱밥이 깔려있어 안락함도 주지만, 맛있는 간식이기도 하다. 돼지 똥은 모아서 퇴비를 만들어 밭으로 나간다. 소위 ‘경축순환농업’이 되는 셈이다.

채식하던 사람이 어떻게…하고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되려 채식하던 사람이니까 사육에 대해 더 고민했기에 더 잘 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다.

친환경 흑돼지농장 직영 온라인 정육점

‘스스로하기’의 개념이 가공과 판매에까지 뻗쳤다. (아직은 멀었지만) 흑돼지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게 될테고, 잘 아는 사람이 만져야 가장 맛있게 된다. 또한, 소규모로 농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접 판매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판장에 돼지를 내놓는다면 사료값은 물론 인건비도 못건진다.

흑돼지는 흰돼지와 다르게 사육기간이 두 배 이상 길다. 또 우리농장은 일반 농장보다 사육밀도가 4배이상 낮다. 건강한 사육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접 정육점을 운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읍내 상가에 가게를 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몇 군데를 돌아보곤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게, 의외로 월세가 비쌌고, 지저분하고 건물이 허술했다. 늘 상주하는 가게가 아니었기에 읍내나 시내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집 앞 자투리 땅에 건축이 가능한 지 알아보곤 곧바로 신축을 추진했다. 5년치 월세정도에 내가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믿기 어렵지만 약 3개월 동안 14평짜리 건물을 거의 혼자의 힘만으로 지었다.(해냈다!) 단열에 특히 신경을 썼다. ‘냉장고 같은 정육점’이 컨셉이었다. 그 컨셉에 맞게 작업실에는 에어컨이 아닌 3마력짜리 냉동기를 달았다. 한 여름에도 거뜬히 냉장실 온도로 내려갈 수 있다. 오랜 준비 끝에 건강한 축사와 신선한 정육점을 운영하게 됐고, 2019년 12월부터 시작하게 됐다. 

마사 인터넷정육점

가공은 한 참 뒤에나 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어렵고, 손도 더 많이가고,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과거 농사를 짓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때는 큰 동물을 사냥하면 바로 소금에 절이고, 연기를 피워 건조해서 보관했다. 보관한 고기를 조금씩 먹었다. 농사의 역사라고 해봐야 만 년 정도이니 지금 인간의 직속조상이 살아온 수십만년 동안 고기는 그렇게 먹었다. 

생각이 그렇게 미치니 염지와 훈연을 통해 만든 베이컨, 햄과 소시지가 어려운 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수십만년간 우리의 주식이었으니 입맛에나 건강에도 좋을 게 아닌가? 철저하게 공부를 하고 시작하면 좋으련만 몸 속 유전자에 기록돼 있는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시골에 이주하고 여러가지 일에 부딪히며 나도 처음 접한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이번에도 우리 속에 숨겨져 있던 깜짝놀랄 능력이 튀어나오길 믿는다.

2020년부터 했던 이 고민은 수 차례의 연습, 실험 끝에 2023년 3월에 훈연햄을 판매했다. 아직은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건강하게 자란 흑돼지의 가공육은 시중엔 거의 없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