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편_리스본에서 만난 구세주 티베트 식당.

밤 늦게 도착한 리스본 시내.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어야 했으나, 그 때는 기력이 모두 탈출했어서, 남은 사진은 이것 밖에 없다.

페달질이 힘들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타이어 바람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밝은 곳에서 떼우고자 급한대로 바람을 조금 넣고 올라갔다. 밝은 인도에서 바퀴를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티베트에서나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식물의 조각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티베트에서 주행할 때도 그것 때문에 하루에 연속으로 4번이나 펑크가 난 적이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같은이유로 펑크가 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짐을 다 풀고 자전거를 엎은 다음 바퀴를 빼 자세히 살펴보았다. 식물의 왕가시가 4개나 붙어있었다. 그것들을 뽑아내니 기다렸다는 듯이 타이어의 바람은 쉭~하고 빠져나갔다. 가지고 있던 예비 튜브를 다 쓴 상태라 펑크패치로 고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남지 않았다. 다왔다는 생각에 많이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튜브를 분리하여 바람을 가득 넣은 후 코를 갖다대어 구멍이 난 곳을 찾았다. 

예상대로 4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패치는 9개뿐이었으므로 실수가 없도록 꼼꼼하게 표면을 사포로 갈고 본드를 묻혀 패치를 붙였다. 잘 붙을 수 있도록 손으로 꼭꼭 눌러주기도 했다. 바퀴에 튜브를 집어넣고 바람을 넣었다. 이제 가도 될까 하는 생각으로 짐을 달려고 했지만 바람은 또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다시 짐을 풀고, 뒤집고, 바람넣고 코를 대고… 그랬더니 구멍이 작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결국 큰 패치를 반으로 나누어 떼우는 절약을 실천하였음에도. 그러니까 10개의 패치를 다 썼음에도 펑크를 떼우지 못하고, 펑크가 난 채로, 앞뒤바퀴 모두 몰랑몰랑한 채로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시각은 새벽 한시경!!

마지막을 정말 기가막히게 장식하는 것 같아, 배고프고, 피곤하고, 미칠 것 같고, 다리아프고, 어지러웠지만 입에서는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행인이라고는 몸을 팔기위해 서성거리는 창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저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느릿한 걸음을 걸을 뿐이었다. 여행 참 재밌다!

길을 가다 느닷없이 불이 밝혀진 가게가 있었으니, 중국음식점이었다. 두군데가 있었지만 첫 번째는 그냥 지나치고, 두 번째 가게에는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밤을 길에서 보내기로 했으니 졸은 배는 채우는게 좋을 것 같았다. 당연히 괴상한 몰골을 한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놀라움이었다. 무안함을 피해보기 위해 말을 꺼냈다.

“츠판 커이마” (식사 되요?)
“커이 커이” (됩니다)

내 말에 그들은 방금전까지만해도 가지고 있던 강렬한 눈빛을 풀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려고 바로 옆에 있던 중국식당의 사람들이 입구에서 쳐다보았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걸로 보아 그다지 사이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음식점은 안타깝게도 ‘훠궈’를 주로하는 음식점이었다. 훠궈는 사천지방에서 유명한 음식으로 여러 가지 고기와 야채를 뜨거운 국물에 넣었다 익으면 빼먹는 ‘샤브샤브’같은 음식이다. 가격을 물어보니, 양에 상관없이 1인당 15유로라고 했다. 우리돈 2만원에 가까운 돈임을 감안하면, 포르투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요금이었다. 나가려고 고민하다가 ‘그냥 먹자’.

그들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중국에서부터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상해가 첫 도시였고, 리스본이 마지막 도시다. 지금 정말 기쁘다. 등등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대단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메뉴에도 없는 숯불에 구운 양꼬치를 배가 부를때까지 내어 왔고, 피로회복 음료수와 탄산음료 등 더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계속 물어오는 등 눈물이 날 만큼 챙겨주었다. 훠궈의 맛도 사천에서 먹었던 것과는 틀리고, 양꼬치 역시도 약간은 이국적인 느낌을 냈다.

“워먼 라이 시짱” (우리들은 서장에서 왔어요)
“시짱? 티베트?” (서장? 티베트?)
“스아~” (네)
“앗~ 타시데레~ 워 시환 티베트.” (앗~ 안녕하세요~ 저는 티베트를 좋아합니다.)
“하하, 타시데레” (안녕하세요)
“투제쩨”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웃더니 양꼬치와 여러 가지 고기들을 다먹기가 무섭게 내어왔다.

“우리들은 2년전에 라싸에서 이리로 이민왔어요.”
“아~ 정말요? 라싸에서… 저는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에도 가보았습니다.”
“고향이 그리워요. 포르투갈에 티베트인은 우리 3명밖에 없어요.”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친 친절과 다른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밥도 실컷 먹고, 이야기도 실컷 하고, 사진도 찍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려는데 그들 모두 손을 내저으며 그냥 가란다. 돈을 주고싶었지만 완강했다. 도대체 이런 경험이 무엇인가.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왕고생을 시키더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고생을 씻어내는 것인가, 고생을 하게하여 이 분들을 더 좋은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인가. 어쨌든 든든한 배를 감싸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유스호스텔은 그곳에서 한시간정도 걸었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밖에서 밤을 새우는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마무리 아닌가!! 비록 마지막에 고생 꽤나 하게 되었지만,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면 그거 무슨 재미인가!!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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