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물마시려 멈추기만 해도 우르르 몰려든다.
한 번 더 찍으니 딴청을 피운다.

네팔과 인도는 역시나 분위기가 틀렸다. 내가 만난던 많은 네팔사람들은 인도사람들을 싫어했는데 이유는, 너무 많다고 했다. 내가 첫번째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좀 차갑다는 것. 네팔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하면 거의모두가 응답을 해줬는데 인도사람들은 무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두 번째, 도로에 ‘핏자국’이 많았다. ‘아니, 여긴 사람들이 모두 피를 흘리며 다니나!’ 할 정도로 많은 ‘핏자국’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핏자국이 아니라 ‘빤’이라고 하는 것을 씹다가 뱉기 때문이었다. ‘빤’은 빈랑자 나무의 열매로 만드는 것으로 세계인구의 1/10이나 씹고 다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침을 아무데나 칵~ 칵~ 뱉어서 비위가 좀 상했었는데, 빤을 씹고 뱉는게 나를 좀 힘들게 했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저런 색의 짙은 것을 씹고다니는데 이는 많이 상하지 않고 깨끗했다.

또,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게가 없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때문에 몸에서는 차가운 음료수를 많이 원했는데 냉장고가 있는 가게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고 미지근한 콜라라도 사먹을 수 있는 가게도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 한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조그만 ‘원두막’같은 곳에서 몇가지 과자와 일회용 샴푸를 팔 뿐이고 콜라는 먼나라 얘기였다. 더군다나 페트병에 담긴 물도 팔지않았는데, 이곳사람들이 먹는 수동펌프로 올려지는 지하수는 아주 다양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듯 다양한 맛을 냈다. 특히 비릿한 냄새와 맛,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 같은 맛, 그래도 물을 사먹지 못해 그 지하수를 좀 마시긴 했는데도 설사를 하지않아서 다행이었다.(그곳 비하르 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다른 인도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인도가 다 그런줄 알고 얼마나 낙담했는지!)

재미있는 점은, 인도에서는 길을 묻기 위해 누군가를 찾거나 어디를 갈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군것질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시장이 나타나기만 하면 오렌지를 꼭 샀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20~30여명은 순식간이고 그 모인 것을 보고 무슨일이 났나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그리고 길에서 잠시 휴식을 할 때도, 분명히 사람들이 없는 곳에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앉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마치 ‘삐리삐리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으니 이곳으로 당장 순간이동하라, 삐리삐리’ 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길을 물어볼 때도 너무나 편했다.

빠뜨나에서 싸싸람 가는 길이었다. 그 때는 지도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여행가이드의 극히 단순한 ‘개념’지도를 들고서 길을 따라갔다. 주요도로와 지방도로의 차이는 극히 미미하여 갈림길에서 항상 물어봐야 했다.

“싸_싸~람/”
손으로 두 길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못해도 20명이 둘러싼 듯 보였다.
“키로? 킬로미터? 케이 엠?”
거리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거기있던 사람들 모두 토론자가 되었다. 그저 모두 서로 낯선사람들일텐데 말이다. 웅성웅성 하더니 누군가가 대답했다.
“100km”

하루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인지 아닌지 불명확하여 거리를 계속 물었는데 묻는 사람들마다 다른 거리를 얘기했다. 최초에 물었을 때 100km 였던 것이 20~30km를 주행했을 땐 도리어 거리가 더 늘어나 200km 라고 얘기했다. 누군가는 80km를 얘기했고, 누군가는 150km, 또 누군가는 200km를 얘기했다. 도무지 누구 얘기가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신기한 것이 그러한 답들이 모두 최소 몇 명이상의 사람들의 토론을 거쳐 나온 답이라는 것이다.

그냥 그저 가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인도여행 초기인데다가 숙소가 어떠한 도시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먼지가 펄펄 날리는 반포장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도 싸싸람에 관련한 어떠한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또, 수십키로를 달리고서 거리를 물었는데도 여전히 80km, 150km, 200km라고 대답을 했다. 다양한 거리라 할지라도 내가 달린 거리는 빼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다가 결국 체력이 다 닳았고 뜬구름 잡는 거리를 믿고 계속 달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다리 아래의 움막같은 집들. 식생들이 평소 보던 게 아니다.
철로를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어디까지 직선인가.
재미있는 구경거리 놓칠세라 재빨리 뛰어와 구경한다. 나는 멈추고 '나마스떼'하고 인사한다.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이 인사하니 웃는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건물. 누군가 외쳤을 거다. 구경거리다! 밥먹다 말고 이상해서 올려다 본 옥상. 아이들이 계속 보고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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