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암리차르 가는 길.

바라트, 힌두스탄, 인디아, 오천축국, 인도!! 등등 내가 알고있는 인도의 명칭만해도 다섯가지다.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까닭인지 그 반대인지, 사람도 많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짧은 두달 반의 인도여행이었지만 수많은 감정이 – 여행안내서에서 미리 ‘경고’했듯 – 가슴속에서 머리속에서 오락가락 했다.

멈추기만 하면 순식간에 모여드는 사람들. 또, 그속에서 태워버릴 듯 강력한 눈빛을 쏘던 사람들.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수많은 강들의 풍화로 생긴, 끝을 가늠할 수 없던 드넓은 평원., 그 속에서 너무나 평화롭게 살아가던 순박한 인도인들. 한겨울임에도 울창한 숲을 이루었던 빠뜨나 주변의 정글지대.

한국보다 두배는 커보이고 두배는 붉은데다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속까지 태워버릴 듯 하던 고요한 일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보던 수많은 사람들. 맑은 기운을 적잖이 느낄 수 있었던, 세계 곳곳의 승려와 순례자들이 모이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수천킬로미터를 흘러가며 사람에 의해 자기 정화기능을 잃고 온갖 더러움을 가지고 있어 여행안내서에서는 절대 목욕을 하지말라던 바라나시의 ‘겅가'(갠지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 모든 더러움을 깔끔히 소화해 버리는 힌두 순례자들. 강변에서 하루에도 수십구의 시체를 화장하고, 때로는 수장도 하는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물을 마시고, 목욕을 즐기던, 보통의 한국사람 및 기타 다른 민족들은 쉬이 가질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가득 들어찬 버스안이 좁아 지붕에 가득 올라탄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지붕에 오르는 사다리에 메달리어 가는 승객들. 게을러 그런 것인지, 운전자가 무심했던 것인지 길 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수많은 개들과 소들.

수백년의 세월을 견디어낸 바라나시의 오래된 건축물에 여지없이 페인트를 묻히고 광고문구를 쓰는 사람들.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한 장소에 100만명 정도? 라는 생각을 무참히 깨뜨린 1000만명 가까이 모인 알라하바드의 ‘쿰부멜라’축제. 동화속, 영화속으로 들어간 듯한 환상적인 자태를 자아내던 오르차의 망가진 성.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멀쩡한 것은 물론, 섬세한 조각과 거대한 풍채가 과연 천년전에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던 카주라호의 힌두사원.

보는 순간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몰아다 준 극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아그라의 타지마할, 다른 인도지역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면 처절한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았던 뉴델리지역. 한 나라 내에서도 다른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철저히 증명해준 시크교인들이 사는 펀잡지역. 아주 모범적인 종교를 보여줬던 시크교인들, 하리만디르. 관객의 심리를 쥐었다 놨다 하는, 심리학, 사랑학 박사가 만든 듯한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인도의 ‘볼리우드’영화들.

인도관광청에서 Incredible INDIA 라고 광고한다. incredible 믿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그런 뜻을 담고있다. 한 단어로 나타낸다면 그 단어 이외 적합한 단어가 없을 정도로 선택을 잘 했다. 때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때로는 황홀하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때로는 한번에 그것을 느끼게 해줄때도 있다. 다시 가고싶다고는 생각이 안되지만, 결국엔 다시찾게된다는 무서운 나라. 인도여!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바라나시 골목에서.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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