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배도 고프고해서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고급 주택가 사이에 있는 것을 우연히 찾게되었다. 김치찌게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대사관에서 전화가 와서 아픈사람이 오나 싶었단다. 그리고는 대사관 어땠냐고 물어오시는데,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라고 대답을 했더니, 대사관에 대한 안좋은 기억들을 털어놓으셨다.
기가막히는 것은 대사관에 나 처럼 한국사람이 도움을 청하러 오면 아주머니가 계시는 식당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대사관에다 그런 것 묻지말고, 이곳에 오래 살고 있는 한국 아주머니에게 물어라 그런 식인 것 같았다. 한국사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사관이, 아주머니가 착하거나 나쁘고를 떠나서, 어떻게 민간인에게 그런 것을 떠넘길 수가 있는지!! 아주머니 얘기는 다소 주관적인 내용이 많이 섞인 것일 수도 있으니까 묻어두고, 전에 내가 다른 여행자를 통해서 들은 얘기를 하고싶다.
나 역시 건너들은 얘기라 정확하지는 않다. 어느나라에선가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폭탄의 작용이 그러하듯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갈기갈기 찢고 톡~ 하니 터트려 놓지않는가. 그래서 신원을 확인하기에는 매우 힘이들것이다. 그럼에 일본 대사관에서는 여행자가 많이 묵는 숙소마다 전화를 하여 자국민들의 안전을 확인해 나갔다. 그러는 중, 한 한국인 여행자는 일본인 여행자로 부터 그러한 소식을 접하곤, ‘나는 한국대사관에서 전화오기전에 내가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 한국대사관에 무사함을 알렸다. 반응은 ‘왜 전화했어요?’ 였다고.
솔직히, 여행자들 사이에 떠도는 헛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우로 미루어 보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파키스탄 여행경로는 솔직히 위험하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로부터 들은 얘기로 폭탄, 총기사고가 잦고, 위험지역에서는 줄 곧 경찰차에 쫓기며 잠도 경찰서에서 자야했다고 얘기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대사관을 찾았던 것이고, 만약 대사관에서 정보를 못줄 망정 그런 위험지역으로 가는 나에게, 말리진 못하더라도 인적사항과 여행경로정도는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프가니스탄 테러 조직이 어디선가에서 납치를 한다면 그 위치가 어디쯤일지 예상은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대사관이기에 그 이야기를 헛소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는 나의 그날 일정을 물어보았고, 페이샬 모스크에 갈 예정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모스크에 있는 한국 유학생에 대해 이야길 했다. 그 학생은 아랍어 전공을 하는데, 이슬람교의 체험을 하려고 무슬림으로 가장, 그곳의 종교학교에 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을 소개시켜 줄테니 그 모스크에서 만나보라고 했다. 바로 그 학생과 전화통화를 하고는 약속을 정했다. 그 전에는 갈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약속이 잡힌 후에는 가야만 했다. 스스로 그냥 바람가는대로 구름 흐르는 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약간 부담은 됐다. 그래도 모스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겐,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좋게 생각하곤 그곳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지금까지의 모스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거라 생각했기에. 솔직히 그랬다. 촛불모양의 돔, 높고 웅장한 기둥과 입구, 가장한 듯한 울림이 생기는 내부 등 비슷비슷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스크를 보는 순간, 헐리우드 SF 영화 ‘스타워즈’ 검은 옷의 그 ‘아버지’가 생각났다. 왜냐하면, 모스크의 모양이 그 ‘아버지’의 입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 사방의 큰 기둥은, 하늘이 꺼진다면 그곳에 솟아날 구멍을 낼 만한 그것이었다. 그곳에 신의 지혜가!! 도는 소문에는 그 기둥에 미사일을 숨겨놨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얼핏봐도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미국이 그곳에 핵무기가 숨겨져 있다고 억지를 부리며 파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전통식 모스크가 아닌 완전한 현대식 모스크였다. 다녀오고 나서야 여행안내서를 들춰보며 그곳은 새롭게 도시가 만들어지며 덩달아 그 도시와 어울리는 모스크를 지은 것이란 걸 알았다. 사우디 아라비아 왕 ‘페이샬’이 오천만불을 기부하여, 터키의 건축가가 ‘사막의 천막’을 본따 만들었단다.
시간에 맞춰 진우씨는 나왔다. 뜻밖에도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동향이었다. 식당 아주머니로부터 전해들은 대로 그는 아랍어 전공이며 문화체험을 위해 무슬림은 아니지만 종교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와 조용히 주변을 산책하며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던 중,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에게 함께 기도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그 곳은 무슬림이 아니면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가 ‘무슬림’이라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마자 또, 걸음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내부는 참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웠는데, 특히 전기를 이용한 전등이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만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그 넓은 공간이 아주 밝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사광선이 들어오도록 훤히 뚫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스크는 교묘하게 햇빛을 받아들이고 실내를 은은하면서도 밝게,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지어진 것 같았다.
성당의 신부님이나 절의 스님 처럼 ‘이맘’이 중심에 서서 집회를 진행했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횡대로 ‘메카’를 향해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공간이 워낙넓어 몇줄되지는 않았다. ‘이맘’이 마이크에다가 코란으로 느껴지는 주문?을 외웠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동작을 바꾸었다. 나역시도 무슬림인척 들어갔으므로 따라했다.
불교사원에서 하는 절과 동작이 비슷했지만 한동작씩 따로 따로 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않지만 그 때는 정말 깔끔한 집회구나! 생각했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야한단다. 일출, 정오, 오후, 일몰, 저녁 이렇게 다섯번. 그래서 무슬림이 있는 곳이면 거의가 예배당이 마련되어 있고, 큰 국제행사 때에도 그들을 위해 예배당을 따로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때는 귀찮게 5번이나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 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경건하며 깔끔한 예배였다. ‘이맘’이 조용히 코란을 외우면 그에 따라 한동작씩 예배를 드렸고, 분위기는 조용했지만 그들의 신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찬송가를 부르거나,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우거나, 미친듯이 춤을 추거나 하던 예배만 해오다 이것을 겪어보니 감동이 절로 밀려왔다.
외국인에게 성추행을 일삼고, 술은 안된다 하면서 담배나 마약을 마구 피워대던 사람들. 나쁜짓 한번 보여주고, 멋진 것 한번 보여주며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를 중간치로 잡아두려는 것인가. 10여분만에 예배는 끝이나고 사람들을 따라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