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이 때는 사진을 많이 안 찍었나봐요. 카메라는 늘 메고 다녔지만 항상 찍는 건 아니었어요. 머릿속엔 생생한데 사진은 없습니다. ㅠㅠ
이란비자가 문제였다. 어떤 새해연휴인지 몰라도 3월 중순부터 4월 2일까지 휴무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이란비자는 신청후 시간이 오래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열흘은 기본이고 가끔은 한달까지 걸린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연휴에다 그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실, 기다려야 하기때문에 ‘KKH'(카라코람하이웨이)로 알려진 유명한 훈자마을에 다녀오려고 했었다. 워낙 장거리 버스여행이라 꺼려졌던 것도 사실. 또, 대량의 짐은 누구에게 맡겨두리.
갈까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훈자행을 결정한 다음날 아침. 멀리에 있는 라왈핀디의 장거리 버스정류장까지 택시를 타고 향했다. 첫번째 목적지 ‘길깃’까지 가는 버스는 의외로 많이 있었고, 제일 이른 시간인 12시 버스의 표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었다.
“도 빠라따, 에끄 짜이”(빠라따 두개, 짜이 하나)
나의 주문에 식당안의 모든 사람들은 시선이 나에게 모이며 황당하다는 듯 웃어, 새삼 내가 여행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는 출발했다. 여행안내서에서는 15시간에서 17시간 걸린다고 했다. 거리는 600k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길이 워낙 험한 탓인 것 같다. 그래도 즐겁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경로를 구상할 때, 내 머릿속에 가장 신비롭게 남아있었던 풍경이 ‘KKH’이다. 황량한 산에 또, 서양사람인지 동양사람인지 분간이 되지않는 사람들. 깎아지른 절벽과 맑은 물. 그런 이유로 티벳을 통과하여 이 KKH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려했었다. 수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가고싶어한다는 그곳을. 그러나 여행은 변하는 것. 날씨문제로 네팔로 향했었고, 인도와 파키스탄을 건너가게 되었다.
인도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 후회는커녕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 그곳의 사진을 우연히 볼 때면 가슴이 아팠던 것은 사실. 이란비자가 속을 터지게는 했지만, 그 덕에 시간을 버릴 수가 없어 그곳으로 간다. 기다려야만 하는 이란비자,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기분이 나빠해야 할 것인가.
버스는 간다라 미술의 탄생지인 ‘탁실라’를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 히말라야가 펼쳐진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주변의 풍경은 황량하게 변해갔다. 암석지형이었다. 산은 딱딱한 암석층이 아직 풍화가 덜되어 식물이 자라기에 부적합한 상태였다. 사람이 사는 평평한 곳은 사람에 의해 개간된 것이 분명했다. 날이 저물어가면서 버스도 더욱 깊숙이 들어갔고, 주변의 풍경은 황량해져만 갔다.
불편한 자리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편하게 있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몇시간이 지나니 아무렇게 있어도 불편했다. 그렇다고 잠도 오지않아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버스는 군데군데 정차하여 휴식을 했고, 잠시 정비하는 시간도 있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어지고, 창밖풍경도 TV꺼지 듯 꺼졌다. 밤사이 버스는 운전사가 졸립던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위험하게 가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이 낫다싶어 나 역시 그 시간에는 비교적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새벽, 날이 밝아오자 신비한 풍경이 펼쳐졌다. 도로는 가파르고도 황량하기 그지없는 산사면 한 부분을 긁어 만든 것이었다. 보통은 가파르더라도 식물의 뿌리가 돌이나 흙이나 잡아주고 있어 크게 위험한 것은 없는데 이곳은 아무것도 없으니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도로 군데군데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있어 간담을 서늘케 했다. 또한, 계곡쪽 사면은 그냥 낭떨어지. 만약 버스가 실수로 계곡쪽으로 핸들을 돌린다면 버스 앞머리가 그대로 쿵 하고 계곡바닥을 칠 것 같았다. 도로는 어찌나 좁은지 한대가 겨우겨우 지나갈 정도였으니, 마주오는 차량과 비켜서기를 할 때는 창밖으로 바퀴가 절벽으로 빠지지않나 불안한 마음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어느정도 들어가자 좌우로 설산들이 펼쳐졌다. 그 중 하나가 내 눈을 끌었다. 눈이 산을 완전히 덮고 있었는데, 그리 높게보이지 않아 ‘여기는 낮은 산에도 눈이 쌓이는 구나’ 생각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이상함을 느끼고는 여행안내서를 들추어 보았다. 내가 막 지나는 마을을 지도에서 찾아 그 산이 무엇인지 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킬링 마운틴’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봉 중의 하나 높이가 무려 해발8126m에 이르는 ‘낭가파르밧’이었다. 역시나 준봉은 준봉이라 내 눈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위험한 도로, 수많은 설산들 사이를 지나고 지나 목적지인 길깃에 도착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