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비자를 받고, 미룰 것도 없이 바로 출발했다. 이슬라마바드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페샤와르를 거쳐 인더스강을 따라 서쪽으로 나가는 인더스 하이웨이를 따라 퀘타를 통해 이란으로 가려했었다. 하지만 그 도로가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한국대사관에서 알려주지 않은데다, 아무래도 ‘위험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이 가까워 보통의 자전거 여행자가 다니는 물탄을 거쳐 수쿠르에서 꺾어지는 남쪽 경로를 선택했다.
이슬라마바드의 날씨는 이미 훈자마을 가기 전과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그저 태양빛이 뜨거웠을 뿐 그늘에만 있는다면 괜찮은 것이었다. 하지만 후에는 공기까지 후끈 달아올라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초여름 날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주행 첫날 ‘모터웨이’라고 하는 고속도로로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생쑈’를 하고난 후 ‘GT로드’라고 하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돌아갔다.
분명 주행첫날 밤 숙소에서는 얇은 이불을 덮어야만 하는 날씨었다. 하지만 둘째날은 이불은 물론이고 상의를 벗고 천장의 선풍기를 내내 돌려야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적응이 되지않았으나 잠깐 더위가 왔다가나 생각했다. 태양도 너무나 뜨거웠다. 때마침 모자도 잃어버린 상태였던지라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얼굴을 포함하여 온 몸은 열창고가 되어 찬물로 샤워를 한 후에도 열은 가시지 않았다. 라호르의 여행자 숙소는 그야말로 더위창고였다. 천장에 돌아가는 선풍기는 선풍기가 아니라 드라이어 였다. 공기가 너무 뜨거워 마치 한증탕에서 ‘후~’하고 불었을 때 느껴지는 뜨거움과 같았다.
여행자 숙소 직원에게 물탄을 거쳐 퀘타로 갈거라고 얘길하니 가지말라고 말렸다. 이유인즉 그곳은 라호르보다 훨씬 더 더워 매우 힘들거라 했다. 섭씨 50도도 쉽게 올라간다고 얘길했다. 라호르도 견딜 수 없을만큼 더웠는데 그곳보다 더 더운 곳이라면 얼마나 덥다는 것일까. 한편으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두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물탄시 이후부터는 위험지역이라 파키스탄 경찰의 경호 아래에서 이동할 수 있다고 이미 통과했던 여행자들이 얘길 했었다. 위험한데다 매우 덥기까지 하다니!
라호르에서 휴식을 하는 3일동안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더위와 위험을 무릎쓰고 자전거를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고집을 꺾고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란으로 이동할 것인가. 이미 중국에서 40도를 넘는 더위를 경험했었기에, 납치나 권총강도 이야기를 몇몇 여행자를 통해 들었기에 여간 어려운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내가 어릴적 보온병의 뜨거운 물이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입을 바로 갖다대 물을 먹으려 하다 소리를 치고 발악을 한 적이 있었다. 또, 동전을 입에 넣지말라는 수도없는 잔소리를 들었음에도 그것을 입에 넣고 있다가 삼키는 바람에 몇일동안 신문지 위에다 변을 하고, 3일째 되는 날의 변을 뒤져 나온 동전을 보고 즐거워하던 누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경험으로써 하지말라는 이유를 그대로 깨우친 것이었다. 커가면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식들 모두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책을 통해 배우거나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익혀간다. 하지만 역시나 책이나 말을 통해 배운 것과 직접 경험하며 배운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경험하고 배운 것들이 후에는 다른 것들을 배우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이것을 이미 경험하고 배운 상태에서는 저것을 배우고 알기가 쉽다. 지식은 서로 친화력이 매우 높아 녹아들어있는 지식들이 다른 지식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아프면 성장한다고 한다. 왜 그런말들을 할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 쉬운일도 있고, 어려운 일, 힘든 일도 있다. 아프지 않은 일도 있고,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는 일도 있다. 일상에서 어느날, 그 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가장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하자. 그는 너무나 힘들어 그 일을 넘겨버리고 싶을 것이다. 참다참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것이다.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견디지 못하고 벗어난다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닥친다면 또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대로 견뎌내고, 참아내고, 이겼다고 치자. 굉장히 혹독했고, 그 일 이후의 자신은 절망적인 육체, 정신상태가 되었다고 치자. 그러나 그는 그 최악의 상황을 견뎌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상황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이하의 모든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최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냈기 때문에 이제 그에게는 못해낼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랬다. 파키스탄 횡단주행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겸험이 될 것이었다. 그토록 뜨거운 날씨를 언제 경험해 볼것이며, 그런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의 정신상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몸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며, 어떠한 배움을 얻게 될 것인가. 이 길을 피해서 간다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것인가. 경찰에게 쫓기어 다니며 자유를 뺏기기 전까지는 주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라호르에서 불안한 출발을 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