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침일찍 눈이 떠졌다. 전화를 하기 위해 나가는 중에 호텔 메니져 아저씨는 경찰이 데리러 온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본척만척 고개만 끄덕이며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은행이 있었다. 7시 반정도 밖에 안됐지만 은행에는 많은 직원들이 나와있었다. 하지만 정상영업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거기있던 남자직원에게 물었다.
“영어 할줄 아세요? 환전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영어를 할줄아는 여직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환전을 하려는데요, 가능할까요? 달러에요”
이란은 서양은행과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 ATM이 있지만 국제현금카드로 인출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반드시 이란입국전에 충분한 현금(유로나 달러)를 소지하고 들어가야 했고, 나는 파키스탄에서 달러로 바꾸어 갔다.
“담당직원이 아직 안왔어요. 기다려야 하는데요”
그 말을 하고 높아 보이는 남자직원에게 뭔가 이야기 하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돈을 바꾸어 주었다. 달러화에 비해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이란화폐였기 때문에 100달러짜리 두장을 바꾸었을 뿐인데 백장짜리 돈뭉치 한 개와 수십장의 지폐를 더 받았다. 무려 백팔십만 리알이 넘었다.
제일 큰 단위가 만리알인데 그것은 1달러가 조금 넘는 가치를 했다. 다행히 리알이라는 단위에서 0을 하나 뺀 투망이라는 단위를 사용하여 가격들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돈을 바꾸고 나서 전화를 하기위해 물었다.
“한국에 전화하려고 하는데 잠깐만 써도 될까요? 수신자 부담이라 괜찮아요.”
“아… 은행에 있는 전화기는 국제전화가 안되요. 제가 할 수 있는 곳을 알려드릴께요”
그녀는 ‘파르시’로 전화할 수 있는 곳의 주소와 한국에 전화한다는 말을 적어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호텔의 매니져가 아침에 경찰이 온다고 얼른 돌아오라고 했기에, 그 경찰에게 부탁을 해야겠다 생각하곤 호텔로 돌아갔다. 그에게 그것을 보여줬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은 희망사항.
또 몇시간을 기다렸다. 법정으로 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또, 일방적으로 당할 것 같았고, 폭력사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에 간절하게 전화를 찾았다. 쪽지를 여러사람에게 보여주며 시도해보았지만 경찰서 내에 국제전화가 있을리 만무했다. 법정으로 향하는 길에 동행하는 경찰에게 보여줬지만 묵인당했다.
결국 아무런 조치도 못한채 법정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경찰에게 소지품을 맡기고 몸을 수색했다. 수색하는 경찰이 나의 양 유두를 꼭 쥐었다 놓으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기에, 손을 내치고 마빡으로 빼곡히 박힌 옥수수를 다 부셔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복도 양 편으로 조그만 사무실이 십여개 있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일종의 재판을 받는 듯했다. 나역시 그 사무실 중 하나에 들어가 재판?을 받게되었다.
“영어할 줄 아세요?”
“네, 천천히 얘기하면 알아 들어요”
그 얘기에 전날의 억울했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검사에게 어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때는 이미 보상을 받겠다는 것은 완전히 접은 상태여서 폭력사건에 촛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검사의 반응은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태연했다. 한국같으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그곳은 이란이었다.
“I think that’s no problem.”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요)
돌아간 경찰서. 뜻하지 않게 그곳에 영어를 할줄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통해 어제의 상황을 설명하고 경찰서장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서장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비교적 편안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했다. 분명 그 사람은 어제의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반응은 그 검사와 마찬가지로 그저 태연할 뿐이었다. 그는 부하직원에게 무엇인가를 얘기하더니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UN 사무실로 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잘 됐다. 그곳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면 되겠다’
길을 한참 헤맨 후에 UN사무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깥에는 UN refugee centre, 그러니까 난민을 구호하기 위한 사무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주로 돕는 듯 했다. 안에 들어서니 직원이 내려왔다. 그도 역시 이란인이었지만 영어는 화려했다. 그에게 전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거 국제적인 문제 아닙니까? 어떻하면 좋을까요?!”
“네. 큰 문제네요. 그런데 여긴 난민구호센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그러게요, 저도 여기 들어오면서 봤어요.”
“아무쪼록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더이상 없었다. 빨리 빠져나와 대사관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전화도 하기 힘든, 스스로 해를 끼친다는 단체, ‘자해단’을 빠져나가고 싶어 결국엔 테헤란에 가겠다고 선언하곤 그들이 대충 태워다 준 버스정류장에서 테헤란행 버스를 탔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