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과거 신화는 유럽의 문화를 꽃피우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 신화지만, 제우스나 헤라클레스 등 신화속에 등장하는 몇몇 신의 이름을 알고있다. 어릴적 만화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으며, 얼마전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리스 신화를 다룬 ‘트로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주인공 ‘아킬레스’는 제일 좋아하는 서양남자배우 ‘피트 행님’.
그 신들이 산다고 하는 산이 지나는 길에 있어 들렀다. 이름은 ‘올림포스’. 바다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정상의 높이는 2917m나 되는 높은 산이었다. 처음에는 정상까지 올라가볼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터키에서 겨울옷을 모두 보내 정상 근처에서 입을 옷이 없어 이내 단념했다. 그래도 중턱까지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기에 자전거로 그곳에 향했다.
바닷가에서부터 시작한 길은 한번의 쉼도 없이 계속 오르막이었다. 체력이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는지 발바닥이 땅으로 향할 때면 자전거도 쑥쑥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는 20km 정도 였으며, 고도는 1100m 였다. 짧은 거리도 아니었고, 낮은 고도도 아니었다. 집 뒷산 600m 정도 되는 곳까지 올라가는데도 낑낑거리던 나였는데, 너무 쉬웠다. 그런만큼 여유를 부리며 올라갔다.
해안에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기에 오르면 오를수록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수많은 애벌레가 기어가는 듯했던 구릉지도 평탄한 땅으로 보여졌다. 지중해성 기후로 키가 작은 나무가 대부분이었는데, 산 중턱 이후로는 꽤나 울창한 수림이 펼쳐졌다. 첫 번째 산장을 지나서는 골 깊은 계곡의 사면을 가로지르며 들어가는 도로였는데,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어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산행로 입구엔 조그마한 찻집 뿐 아무것도 없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지만 ‘보호료’ 명목으로 돈을 받지도 않았다. 많지않은 산행꾼들이 산으로 향하거나 나오고 있었다. 나 역시도 자전거를 묶어놓고 산으로 향했다. 적당히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네팔 이후로 이토록 울창한 수림 안으로 들어온 것이 처음이었다. 차고 맑은 물소리와 짙은 잡목숲은 가슴속에 답답하게 막혀있던 우주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자연과 동화되도록 작용하는 것 같았다. 발 아래 보이는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들과 이슬을 머금은 잡초들. 지나던 동물이라도 다치지 말라는 숲의 뜻인지 바위 위에는 지의류들도 두텁게 깔려있었다. 한시간 가량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평온한 느낌에 더 걸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계곡 안쪽으로는 비가 조금씩 내렸기에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신들이 살만한 곳이었다. 정상부위는 구름이 두껍게 덮여져 있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이 산에서 그러한 신들이 산다고 충분히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회의를 하고,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거나 상을 내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 신화들이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큰 상상력의 싹을 얻었을 것이다. 인도인들이 똑똑한 이유중 하나가, 어릴 적부터 수많은 힌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크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정상까지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되돌아 나왔다.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별 수 있나.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