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풍경들을 지나치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하여튼 몇일이 지나갔다. 몇일이 지나가며 깊숙이 들어왔고 고도도 많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멀리 멀리서 이따금씩 보이던 높은 설산들이 ‘바가르찹’이라는 마을을 지나고 ‘코또’라는 마을에 이르니 거대한 설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저 산 이름이 뭐죠?”
“저기 저 제일 높은 봉이요?”
“네”
“안나푸르나 2봉이에요. 7937m의 봉이죠”
지나가던 현지인에게 물었다. 포카라시에서 멀리 보이던 그 안나푸르나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그 봉의 높이가 7937m나 된다니!! 가히 초고산이라 할만한 높이. 초모랑마 봉이 8845m 이니까 1000m 가까이 낮긴 하지만 이 정도 높이의 산을 산 바로 아래에서 본다는게.!! 지도상으로 내가 위치한 곳과 봉우리까지의 직선거리는 10여km밖에 되지않았다.
티베트에서 자전거 타고 넘어올 때 초모랑마 베이스캠프를 가느냐 안가느냐로 고민을 너무너무 많이 했었다. 주 도로에서 이틀정도만 빠져서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5000m 가 넘는 고개를 또 넘어야 하기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그 바로 전 5200m 고개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그래도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초모랑마를 가까이에서 보고왔다는게 마냥 부러웠다.
그 기나긴 여행에서 불과 몇일만 투자를 했다면 보고 오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이제 그 후회는 싹~ 하고 사라졌다. 티베트 방면의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는 초모랑마 봉과 다소 거리감이 있어 어떤 사람얘기론 너무 멀었다, 너무 작게 보였다. 뭐 그런 얘기들이 있어서 더욱 더 그랬다. 여긴 안나푸르나 산 바로 아래니까.
이 설산에 너무 반하여 한참을 보다가 결국엔 그 곳에서 잠을자고 가기로 하곤 숙소를 잡았다. 맛없는 저녁을 최대한 맛있게 먹고는 어두어지길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반달정도 크기의 달이 떠있었는데 그로인해 기대했던 별은 많이 보지못했지만 달빛에 비친 설산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당연 눈앞에 펼쳐진 신비한 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사진기를 삼각대에 달고는 좋은 자리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결과는 꽝! 어두어서 자동으로 촛점도 못잡는데다가 수동으로도 잡기 힘들어서 촛점이 다 나가버렸다. 장시간 노출한 탓인지 사진에는 ‘노이즈’가 너무 많이 생겨 쓸 수도 없었다. 그래도 멋진 풍경을 눈으로라도 오랫동안 담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코또’라는 마을에서 안나푸르나 2봉을 만난 후 산은 계속 산행로 주위에 서 있었다. 너무나 큰 산이었기에 주변에 집이나 사람이 산과 겹쳐보일 때는 그것들이 한없이 작게만 보였다. 너무나 크고 높아서 너무나 작고 낮은 나를 주눅들게 했지만 익숙해져 감에 따라 그 큰 산 옆에서 우뚝 서 있는 동등한 개체로 느껴졌다. 그러고는 이상한 자부심 같은게 생겨나더니 안나푸르나 산행 온 것에 대한 대단한 기쁨으로 바뀌어 온몸이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즐거움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한발한발 나아갔다.
계곡은 좁아질대로 좁아졌고 골이 깊어져서 세상의 소음역시 많이 사라졌다. 가끔씩 나타나 짖어대는 까마귀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졸졸거리는 물소리만 들릴뿐. 다음 묵을 마을중에는 ‘어퍼 피쌍’과 ‘피쌍’이 있었는데 왠지 어퍼 피쌍에 마음이 이끌려 그곳으로 향했다.
어퍼피쌍에 해질녘이 다되어 도착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곳은 완전 티베트식 마을이라는 것. 어두침침한 벽돌을 쌓아 집을 만들고 그곳에다가 몇가지 색을 입힌 깃발이 집집마다 날리고, 순간적으로 중국의 압력에 못이겨 피난온 티베트 사람들인가하고 생각했는데 그곳 숙소의 아주머니 말로는 오~래전(몇백년전?)에 넘어왔다고 했다.
티베트는 중국에 의해 파괴되어 있어서 본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오히려 이곳에는 티베트식 문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곳 ‘어퍼피쌍’ 에서는 안나푸르나 봉이 더욱 더 자세하게, 가까이에서, 너무나 완벽한 설산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이건 말도 안되는 풍경이야!!”
라고 속으로 겉으로 몇번이나 말했다. 내가 이런 설산 바로 아래에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바로 앞에 이런 설산이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맛없는 저녁을 최대한 맛있게 먹고는 또다시 야간 촬영을 시도하였다. 이번에는 해가지기 전에 ‘무한대 촛점’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놓았기 때문에 노출시간만이 문제가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번의 노출실패 이후에 두번째는 완전성공!! 노출도 거의 정확하고 촛점도 맞는데다가 흔들림도 없었다.
달빛에 비춰진 거대한 설산! 새하얀 만년설로 인해 달빛만으로도 은은한 빛을 내는 설산! 고요한 빛깔이 사람의 눈을 잡아 끌어 쉬이 눈을 뗄 수 없는 설산! 고산의 소소한 바람에도 스스로의 황홀한 위엄으로 결코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는 설산! 거대한 형상이 마치 신이 지상에 내려와 넓은 어깨를 드리우며 ‘내가 너희를 다스릴 지어다!’ 하는 모습이었다.
달빛에 사라진 별들도 많긴 했지만, 차마 달빛에 수그러지지 못한 별들도 이 산과 함께 어울려 광활한 풍경만들기에 동참하고 있었다. 너무나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에 사진을 찍고도 황홀경에 빠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 위대한 안나푸르나여!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