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행렬.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신부 관계자가 함께 하자며 끌어들였다.
결혼식의 흥을 돋우는 악단과 조명.
춤추는 사람들
조명을 지고 있는 사람. 무거워 보였다.
춤추는 사람들
신부의 언니(혹은 동생). 그곳에서 가장 열심히 춤을 추셨다.
춤추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하루는 길을 지나다 결혼식 행렬에 휩쓸리게 되었다. 인도의 결혼식은 대단히 요란하게 하는데 반경 200여m의 주민들은 모두 알아차릴 정도 같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결혼식 하객들이 큰 전등을 짊어진 사람들과 요란한 악대를 따라갔다. 하객들은 수시로 악대들을 멈춰 세우고는 춤 삼매경에 빠졌다.

전에 그것을 못 본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너무 시끄럽고 악대의 연주도 자기들 멋대로이기에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였다. 하루는 어떤 시골마을의 조그마한 호텔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밤 9시가 넘어 큰 음악을 틀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셨는지 내 방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쳤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문을 이중으로 굳게 닫고는 귀마개를 하고 잠을 자려고 노렸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혼식이었다. 무슨 개판도 이런 개판이 있나 싶었는데, 결혼식이라니!. 음악도 차분하게 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무슨 콘서트용 스피커를 가지고 찢어져라 크게 틀고는 춤 삼매경에 빠졌었다.

그런 결혼식 행렬에 내가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처음엔 춤추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사진이나 한방 찍으려고 했다가 결혼식 관계자? (형이나 동생)에게 붙들려 자기네 결혼식에 오라고는 말을 붙였다. 맨날 귀찮아만 하다가 어떤것인지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따라갔다.

결혼식 행렬 제일 앞에는 10여명 되는 악대가 있었다. 그들 뒤로 하객들이 쭉 따라갔고, 하객들 왼쪽편으로 5명 쯤 되는 사람들이 대형 전등을 짊어지고 띄엄띄엄 서 있었다. 하객들 뒤로 신랑과 그의 조카쯤 되는 (아들은 아니겠지?) 꼬마가 돈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말을 타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는 전등을 밝히는 발전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악대는 걸어가며 계속 연주를 했고, 사람들은 걸어가며 춤을 추다가 ‘삘’을 받을 때면 멈추게 하고선 그자리에서 춤판을 벌였다.

우리민족도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지만 인도만 할까 싶었다. 그 속에서 나마저도 어깨가 들썩거리는데 여부가 있을까.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시끄럽기는 했지만 적응되고 나니 견딜만 했다. 나도 한번은 관계자?의 손에 이끌려 춤판 가운데 집어넣어지려 했지만 카메라에 손가락질 하며(카메라가 위험하다는 시늉) 뺐다.

그길로 한참을, 그러니까 한시간이 넘도록 걸어가다 춤추고, 춤추다가 걷고 하다가 결국엔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결혼식장이라고 따로 우리처럼 예식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터에 천막으로 식장을 만들어 놓았다.(물론 호화스러운 예식장도 많이있다) 이미 그곳은 음식으로 손님들을 대접하고 있었으며, 거대한 스피커로 음악을 즐기며 춤판이 벌어져 있었다. 결혼식을 매번 길에서만 힐끔힐끔 봐왔지 이렇게 예식장소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었다.

예식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사람만 둘이었으며, 사진사도 둘이나 됐다. 예식 단상도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져 있었고, 음식이 차려진 곳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이미 밥을 먹은 상태라 많이 먹진 못했지만 그래도 뜻깊은 음식들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결혼식 행렬을 만난 것이 9시 경이었고 예식장에 도착한 것이 10시 반경, 그리고 신부는 11시 반경에 들어왔다. 밤이다 밤. 신부 표정은 기쁜 것인지 슬픈것인지 피곤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고, 우리나라 처럼 누군가가 운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신부와 신랑이 ‘맞절’을 하고 이제 부부가 되려는 행사를 시작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비디오 기사와 사진 기사, 그리고 3~4명의 근친 뿐이었다.!! 하객은 100여명이나 됐다.

다들 먹고, 춤추고, 이야기 하느라 진짜 결혼식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었다. 어찌 그럴수가!! 특히나 인도는 결혼하는데에 돈을 굉장히 많이 쓴다고 들었다. 보통 신부집에서 돈을 대는데 딸 하나 시집보내는데 집안기둥정도는 깔끔하게 하나 뽑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 연유로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초기에 성별을 확인하여 딸일 경우에 지우는 것이 어떨까하고 광고한단다. ‘아이 하나를 다시 갖겠습니까? 집안 기둥을 뽑겠습니까?’ 이런식으로… 물론 들은 얘기라 정확하지는 않다. 하여튼 그런 기둥이 왔다갔다 하는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에게 관심 좀 가져주지…

시간이 늦었었기에 밤을 새우고 가라는 관계자?의 권유를 마다하고 숙소로 향했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여행자와 관계없는 보통사람들?의 생활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다만 당황스러운 것은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 같지도 않았는데 결혼식을 너무 화려하게 치르는 것 같았다는 것. 우리나라 같으면 예식장 순서에 밀려서 빨리 끝내고 식당가서 밥이나 먹고 가면 그만인데, 여긴 밤새도록 마시고 춤추고 수다떨고 놀다가 끝난다. 

행진을 하다가도 멈추고서는 다시 춤판을 벌이기도 하고, 다시 가기도 하고.
신랑은 행렬의 가장 뒤에서 말을 타고 천천히 갔다.
결혼식 행렬을 구경하는 이웃주민.
결혼식 행렬을 구경하는 이웃주민.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로 지나가는데도 단지 구경할 뿐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식장. 마을 한 켠에 결혼식장을 꾸며놓았다. 실외다.
신랑님. 신부를 맞기 직전이다.
신부님. 여러 들러리와 함께 들어왔다.
신부님. 이보다 화려할 수 없다.
신랑과 신부. 어둡고 긴장된 표정은 오간데 없고, 밝게 웃었다.
신부님 동생(혹은 언니)
신부 어머니와 동생(혹은 언니)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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