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교는 힌두적 요소와 이슬람교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종교라고 한다. 15세기의 나나크 라고 하는 구루(영적스승)가 창시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수행하며 느낀 것을 새롭게 정립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이 종교화 했나보다. 그 종교는 이 곳 ‘펀자브’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최고 중심이 되는 사원 ‘하리만디르'(황금사원, 골든템플)가 있는 암리차르가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암리차르는 시크교 4대 구루였던 ‘람다스’가 ‘암리타사리스’ 라고 하는 성스러운 저수지 주변에 세운 도시라고 한다. 그 저수지 이름에서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고, 그 저수지 위에 5대 구루 ‘아르준’이 ‘하리만디르’를 세웠다고 한다. 그 하리만디르라고 하는 사원에는 수많은 시크교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솔직히, 암리차르로 향하기 전에는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몇일 쉬다가는 도시쯤으로 생각했다. 펀자브 지방에서 중요한 곳으로 여기지는 도시라 휴식하기에 알맞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주행하면서 시크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시크교에 대해 알아가면서 암리차르는 시크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곳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특이하게도, 하리만디르에서는 순례자들에게 무료 숙식을 제공한다. 잠자는 것도 무료고 먹는 것도 무료다. 외국인 여행자도 예외가 아닌데, 힌두 사원, 이슬람 사원, 무덤에서 돈을 무지 긁어가는 것과 상당한 대조를 이루었다.
길은 비가왔던지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살짝살짝 피해가며 ‘Golden temple’ 이정표를 보며 찾아갔다. 펀잡지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곳 암리차르도 길위의 소들이 거의 없었다. ‘Golden temple’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혼잡해졌고, 굳이 어디가 골든템플인지 묻지않아도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들어가니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무료숙박을 하기위해 어디론가 들어가야 했지만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어리버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했다.
“!@$%$@^**(&*^%$#^@%&%*^&%^$&%#@&%&%$^”
힌디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었다. 펀자비(펀자브어)였다.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는 것을 보니 내가 가야할 입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호객꾼인줄 알고 잠시 멈칫했지만 왼손으로 어깨를 밀며 오른손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가서 또한번 어리버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엔 안쪽에서 또다른 아저씨가 나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어떤행동을 해야할지 몰라 그저 자전거를 끌고 따라갔다. 하얀 건물 안으로, 그리고 그 안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숙박계를 꺼내 적으라고 하곤 두손을 안에서 바깥쪽으로 벌리며,
“!@$!%#^&*$$%^#^@%!$~@%#^”
라고 말했다. 나는 의미를 직감하고,
“아~~ 오케이~~ 닷네밧” (고맙습니다)
여기 침대 중에 아무데나 쓰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여행자의 짐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비어있는 침대였다. 공짜니까 여행자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썰렁 그 자체였다. 돈에 대한 얘기, 몇일 묵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 등 일체 불편한 심기? -.- 를 일으키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수년전 한국에서 도보여행 할 적에 절과 교회에 잔 적이 있었다. 절에서는 방값, 밥값 하느라 오전 3시간 정도를 청소했었고, 교회에서는 밤 10시부터 1시까지 설교를 들었어야 했다. 누구에게나 열린 종교라고 하지만 자기들의 종교에 대한 포교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다음날, 신성한 사원에 들어갈 때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시크교의 교리에 따라 모자를 눌러쓰고, 또, 발을 깨끗히 해야한다는 교리에 따라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숙소를 나섰다. 걸어가며, ‘맨발로 가면 발이 더러워져 사원 바닥 또한 더러워 질텐데’ 생각했다. 하지만, 입구에는 발씻는 곳이 있었고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사원으로 들어서게 되면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도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 종교의 창시자들은 힌두교의 계급적 차별에 대해 대단한 반대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원은 누구라도! 다른 종교인이라도, 외국인이라도 깨끗한 발과 머리만 가린다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입구가 있어 어느쪽으로든 쉽게 출입할 수 있다. 입장료 징수는 딴나라 얘기였다.
아침햇살에 번쩍거리는 황금사원.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평등을 강조한 종교이지만, 황금으로 된(구리에다가 황금을 도금했다고 한다) 사원을 보고 누가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아무런 우상이나 신상을 모시지 않는다는 시크교인들은 사원을 다른종교의 신 처럼 모시고 있는 듯 보였다.
곳곳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은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중앙의 큰 호수와 사방을 둘러싼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때문인지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는 맑게 구석구석 퍼지고 있었다. 사원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노래는 마치 따로생각할 수 없는 존재같이 느껴졌다.
또, 상당히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웬만한 한국의 온돌방 수준은 유지하는 듯 했다. 신성하다고 하는 저수지의 물 또한 깨끗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그 곳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몇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살펴보았는데, 특정시간에 사원에 소속된 듯한 사람이 청소를 시작하면 주변의 일반인들이 모여들어 청소를 도와주었다. 앞사람들은 깨끗한 저수지의 물을 대리석 위로 뿌렸고 쫓아오는 사람들은 물기를 제거하며 따라왔다. 태양은 조금 남은 물기를 말리는 역할을 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청소하는 사람이 무려 백여명은 되는 듯 했다.)
저수지를 돌아 도착한 하르만디르(황금사원).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내부에는 노래부르는 사람들,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 시주하는 사람들, 시주가 들어오면 그것을 돈통으로 던지는 사람들, 절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자리에 앉아 중얼거리는 사람들이었다. 시크교에는 따로 집회 같은 것이 없단다. 그렇게 와서는 경전을 펼치고 소리내어 읽거나, 흘러나오는 노래를 조용히 따라부르거나 가만히 앉아있거나 하는 것이 종교활동이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풍경이었다.
나 역시도 한쪽 모퉁이에 앉아 분위기를 느꼈다. 너무나 포근한 분위기에 나도모르게 살짝 졸기도 하고,, 반복되는 구절이 많은 노래를 잠시 따라 불러보기도 하고,, 알지도 못하는 ‘펀자비’로 된 경전을 슬쩍 보기도 했다. 혹시 내가 과거의 시크교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포근한 느낌이 마치 내방 한 귀퉁이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음악을 듣는 듯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하리만디르에서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포근한 곳이었기에 아침부터 밥을 든든하게 먹고는 책을 들고가 하루종일 읽었다. 어려운 책이라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신성한’ 곳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 평소의 배는 더 됐다.
아~! 암바차르!(암리차르 지역민들은 그렇게 발음했다) 깨끗한 이미지의 시크교인들. 사실, 델리나 다른 도시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인들을 봤을 때, 항상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이고, 지나친 제약이 아닌가 싶었다. ‘알라뷰’의 주인공 아저씨도 시크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아저씨 차에서 보던 사진이 여기 암리차르 기념품점 곳곳에서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 암바차르에서 그 이미지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심지어는 시크교인들을 보다가 다른 힌두교인을 보면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