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한 컷. 오른쪽 뒤에 보이는 사람이 페란(훼란)이다.

오래보관할 수 있는 장기기억창고에 담겨진 하리만디르를 떠나 드디어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인도에서 하고자 한 일을 다 한 것이 아니라 아쉬움이 많았지만, 새로운 것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곳으로 가는 기대감도 커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쉬울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파키스탄하면 불법체류자가 가장 우선 떠오른다. 네팔, 방글라데쉬, 동남아의 몇몇 국가들도 떠오르긴 하지만 파키스탄의 느낌보다는 덜하다. 아무래도 신문에서 불법체류자 현황을 내보일 때나, 방송에서 이야기를 많이 한 탓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준비기간에 불법체류자 문제로 파키스탄 무비자 협정이 잠정적으로 없어졌다는 사실을 많이 상기한 탓에 그럴 것이다. 

또, 무법지대 같은 느낌이다. ‘총을 든 이슬람 원리주의자’ 하면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등이 생각이 난다. 각종 테러의 주범이 모인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그런 나라. 종교 분파간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핵 개발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에 좋지않은 눈총을 받아왔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에는 인도 델리에서 출발, 파키스탄의 라호르로 향하는 열차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국제노선을 한동안 국가간의 불화로 잠정 중단해왔는데, 사이가 잠시 좋아진 틈을 타 재개를 했던 것.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그에 불만을 품은 – 아무래도 사이가 좋아지는 것에 불만이 많은 집단?사람? 들/이 저지른 것 같았다.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들리는 바에 의하면, 파키스탄 서부지역은 ‘발루치스탄’ 독립문제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의해 수시로 폭탄테러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외국인 여행자가 통과할 때면 경찰에 의해 경호를 받게되고 잠도 어디서든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자전거 여행자의 경우 경찰에 쫓기듯 가야한다고 말한다. 과거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총기 등 살상 무기들을 대량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암거래 시장에서 보란듯이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구입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 머리속에는 파키스탄에 대한 좋지않은 모습 밖에 없다. 다른 여행자들이 의외로 친절하다는 소리도 위와같은 생각에 묻혀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군대에서 비교적 총을 많이쏘고 다루어 봤던지라 총에대한 무서움은 누구보다도 크기도 해, 총! 소리만 들어도 쥐구멍으로 달아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전날 비가왔지만 해가 아침부터 땅을 쬐어 예상했던 진흙길은 아니었다. 도로도 생각보다 깨끗하게 깔려져 있고, 몇일간의 휴식덕에 편하고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끔씩 라호르와 델리를 잇는 버스가 경찰의 경호아래 번개처럼 지나가는 나를 놀라게 하긴 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헬로~’, ‘헬로~’ 하길래 또 뭔가!! 하고 뒤돌아 봤더니,

“훼란~!! 내일 간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네, 그런데 지겨워서 그냥 왔어요”
“누나들은 갔나요?”
“내일 다람살라로 간대요. 아, 라호르에 자전거 여행자가 많이 모여있대요? 아세요?”
“아니요, 처음듣는 얘긴데. 친구들이 있는거에요?”
“아니에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그곳에 몇 명 있는거에요.”

잠시 뒤 국경에 도착했다. 철조망 사이에 난 마지막 문을 통과하기전 주변 가게의 호객꾼들은 마지막 맥주를 마시고 가라고 난리였다. 이슬람은 술을 금기하고 있기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는 것. 파키스탄, 이란을 시원한 맥주한잔 못하고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멈칫했지만,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대낮부터 마실 순 없어 통과했다.

인도측 출입국 사무소에 간단한 출국확인표를 제출하고 세관검사를 받았다. 세관검사 역시 크게 검사치 않고 여권의 몇몇 항목만을 기록하고 통과하는 것이었다. 다만 훼란이 여권을 내밀었을 때는 그 안의 직원들 모두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이봐~, 여기 신기한거 있어~”
페란은 웃으면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자기 나라 국기모양의 뺏지를 꺼내 내부의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냈다.
“안도라에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있어요. 이거 받으세요”

걱정했던 파키스탄 측 출입국 사무소. 암리차르에 있을 때 부터 쭉 파키스탄 인사를 외워왔건만 자꾸 입안에서는 ‘나마스떼’가 우물우물 거렸다. 다행히 사무소 직원에게,

“살람 알레쿰”(아랍식 인사, 알라의 평화가 있기를!)
“말레쿰 살람”(인사를 받을 땐 거꾸로 하지만 뜻은 같다.)

겁먹었던 것을 사르르 녹여줄 만큼 친절을 보여줬던 그곳의 파키스타니(파키스탄사람). 세관 검사 역시 수월했다. 가방을 다 열고는 꼼꼼하게 살핀다. 종교적인 책자가 보이면 압수당한다. 도색 비디오물을 가지고 있으면 경찰서로 끌려간다. 등 세관검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했었다. 그래서 노트북 내에 있는 몇몇 도색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파일들을 한데 모아 ‘숨김’으로 해놨었고 불상이 크게 인쇄된 불경을 깊숙이 넣어놓느라 힘들었었다. 설마 숨긴 파일까지, 깊숙한 곳까지 찾아낼까 하고는…

수많은 가방을 검사하는 수고가 귀찮았던 것이었는지, 내가 믿음직스러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출입국 사무소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여권에서 몇몇 사항만 배껴적고는 가라고 손짓했다. 긴장했던 커다란 마음이 한순간에 큰 기쁨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기에!

훼란은 스포츠 강사 답게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나갔다.

“김! 라호르의 ‘리갈게스트하우스’에요. 거기서 봐요. 기다릴께요”

1st battle 이라고 적힌 조형물.
처음만난 상징이 총알이라는 게 의미?가 남달랐다.

훼란과 헤어지고 난 뒤 얼마가지 못해 신기한 조형물을 발견하였다. 총알 모양의, 높이가 3m 쯤 되는 조형물이었는데, 표면에는 ‘1st battle’ 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아무래도 첫번째 격전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 같았다. 총과 총알은 전쟁을 대표하는 것이고 크게 해석해서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알에 맞아 죽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일까. 

1cm 안팎의 조그마한 탄두. 그것 하나면 사람의 목숨이, 동물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 기가 막힐 ‘뿐이다. 아무리 못난 삶이라도 그 탄두에 쉽게 죽을 만큼 못났을까.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보통은 그런 곳에 그들의 동상을 세우거나 아니면 죽어간 그들을 위로하는 어떠한 기념물을 세워 위로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종교를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목숨바쳐 전투에 임한 그들을 위해. 그러나 그들을 죽게만든, 종교가, 신념이 무엇이든 그 현장에서 총알 하나에 벌벌떨었고 살기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엔 그들을 죽게한 그 1cm. 그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그 기념물을 조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쟁을 싫어하는 이방인으로써는 곱게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어떤 이유라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옛 전쟁은 잘 모르겠지만, 현대의 전쟁에서는 땅위의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죽여버릴 정도의 무기들이 많다. 보통 군인들, 일반인 들의 목숨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조리 파괴해버린다. 그런 이유로 전쟁을 부추기는 총알 모양의 기념물은 옳지 않은 것 같다.

파키스탄에 대해 좋지않은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처음부터 주는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길가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인도에서 느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고, 새로운 경험들이 많이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비교적 깨끗한 거리, 검은 피부의 ‘드라비다 족'(인도원주민)의 피보다는 이란계통의 ‘아르얀 족’의 피가 많이 섞였는지 약간은 틀린 사람들이 그랬고, 도로와 골목을 헤메고 다니는 소들이 없는 것과 어슬렁 거리며 사람들 눈치보며 피하는 개 대신 무엇인가 자전거로 부터 지킬 것이 있다는 듯 지나갈 때 짖어대는 개들이 그랬다. 

자전거 릭샤는 온데간데 없고 또, 네팔, 인도에서 지겹게 봤던 TATA 버스, 트럭 대신 여러가지 종류의 버스와 트럭들이 있었다. 인도 트럭들은 ‘오빠 달려!’할 때 쓰는 오토바이 경적과 비슷하게 심장을 찢을 듯 ‘빠라바라바라밤’하는데, 그런 경적은 사라지고 높은 주파수의 ‘휘익~’하고 큰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경적들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같은나라 였지만, 종교분쟁으로 나뉠 수 밖에 없었던 파키스탄. 

위에 언급한 안 좋은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못박혀 있지만, 다가올 수많은 경험들이 파키스탄의 다른모습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처음 도착한 대도시 라호르. 깨끗하고 발전된 도시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인도에서 불과 30km 를 벗어났지만 완전히 다른 나라인 것을 음식에서 확인을 하고, 기대의 잠자리에 들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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