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는 ‘리갈촉’의 구석에 있었다. 한참을 헤맨 뒤에 그곳에 도착했다. 라호르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 숙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좁은 복도와 가파른 계단이 4층까지 오르는데 상당한 장애물이었다. 짐을 들고 4층에 당도하자 아니나 다를까 훼란이 멋쩍게 앉아있었다. 그 이외에도 10여명 안팎의 여행자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훼란~ 언제 왔어요?”
“30분전에 왔어요”
“일찍 갔잖아요?”
“라호르 들어와서 한참을 헤맸어요”
오래된 건물의 두개의 층을 개조하여 여행자 숙소로 운영하고 있었다. 거의가 ‘도미토리’로 운영되고 있었고, 서양 여행자가 많이 묵고 있었다. 넓은 공간을 합판으로 나누어 침대를 띄엄띄엄 놓고, 3개의 욕실과 화장실이 공동으로 쓰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숙소와 다른 것이라고는, 손수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는 것과 두런두런 얘길 할 수 있는 의자가 몇개 놓인 휴게실.
하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휴게실에 앉기만 해도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대화하고 즐겁게 있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분위기이겠지만, 그런 분위기로 인해 하루 150루피(우리돈 2300원 가량)라는, 시설에 비해 약간 비싼 가격임에도 수많은 여행자가 방문하는 것 같았다.
여러명의 서양 여행자들, 그들 대부분은 장기간 동안 여행을 지속하는 일명 ‘장기여행자’들이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들중 4명이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것. 영국에서 온 아저씨, 네델란드와 스위스에서 온 젊은 청년, 그리고 훼란. 그들은 모두 유럽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치거나 중동을 거쳐 그곳에 온 것이었다. 그러기에 누구는 인도로 향했고, 누구는 파키스탄을 거쳐 우루무치로 향했다. 이란을 거쳐 유럽을 가는 사람은 나 하나.
제일 궁금했던 ‘안전’에 관해 물어보았다. 터키, 이란은 너무나 좋다고 했다. 파키스탄 서부는 경찰에게 완전히 쫓겨가는 신세가 되어 제대로 여행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부 발루치스탄 지역은 분리독립운동이 한창인데, 정부건물에 대한 폭탄테러가 수시로 일어난다고 한다. 자신들 발언에 힘을 싣기 위해 외국인에 대한 습격 또한 몇차례 일어났고,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폭력적인 활동 역시 활발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경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 역시도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주행을 했단다. 몇주간의 주행에서 잠은 모두 경찰서에서 자야만 했고, 기상시간, 점심시간, 쉬는시간 까지 통제받으며 여행을 했다고 한다. 힘이들어 조금이라도 천천히 달리려고 하면, 다른 지역으로 넘겨버리고 싶은 그들은 손짓을 하며 빨리가라고 재촉을 했단다. 말만 들어도 허무감이 치달아 올랐다. 그것이 과연 여행일까.
또, 자신이 잤던 경찰서 주변의 건물이 폭탄에 의해 폭파되었던 적도 있다고 하니, 파키스탄 북부를 여행하며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신중한 판단을 해서 가야할 것이다. 내가 너무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 분위기가 조용해져 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히 미안해 하고 있는데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가 정적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날 터키 해변가를 주행하고 있었어요. 날씨는 첫사랑을 다시만난 듯한 두근거리는 맑은 날씨였죠. 사랑스런 주행이 이어졌고 터를 잡고 야영을 해야하는 때가 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낮은 절벽 아래의 하얀 백사장이 내 야영지다’ 하고 그곳으로 향했죠. 어찌나 멋지던지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어요.”
자전거 여행자가 많아서 그런지 그 얘기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낭만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진홍빛 해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죠. 자전거 여행하며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사르르 녹는 듯 했습니다. 저녁도 손 수 해먹고,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혼자 불지피고 노래도 한참이나 불렀죠. 몇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날도 많이 어두어지고 추워져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모두의 표정이 과거 스위스 여행자의 그 진홍빛 해를 보는 듯 반짝반짝 거렸다. 물론 나역시 그 터키의 해변을 상상하며 마치 내가 그곳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친 몸 때문인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무렵. 갑자기 차가운 느낌이 느껴지는거 아니겠습니까? 벌떡 일어나 주변을 확인해보니,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죠. 정신을 급하게 차리고 다시한번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 바다쪽에서 신나게 달려오는 거대만만한 파도와 눈이 맞게 되었습니다. 오!!! 쉣!!! 사람이 놀라니까 순간적으로 멈칫하더군요. 그리고 그 파도를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그리고 다음 파도가 오기전까지 텐트에다가 짐들을 대충 담은 후에 그것을 들고 파도가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휴~”
“와하하~!!”
“fucking nature!!”(엿같은 자연!!)
“달빛에 물건들을 대충 확인해봤죠. 그랬더니 뭔가 많이 없는거에요. 나중에 확인해봤는데 가벼운 것들은 다 파도가 가져갔더군요. 또, 옷과 가방 할 것 없이 다 젖었어요. 그래서 젖은 옷으로 밤을 지새는데, 태양이 그렇게 그리운 적도 없었어요. 그후로는 아름다운 일몰이고 간에 다시는 그런 곳에서 안잘거라고 다짐했죠.”
폭소의 연속이었다. 그 여행자의 표정역시 일품이었는데, 혹독한 경험, 그 당시의 표정이 자연스레 나오는데 웃지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웃음뒤에 아픈 그를 위해 모두들 어깨를 토닥거리며 ‘아임쏘리’를 빼놓지 않았다. 그래도 몸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위로했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가 이어졌고, 자전거 여행자가 많아 그런지 여행수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들 자기가 본 신기한 여행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훼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란 도로에서 혼자 걷고 있는 ‘세계 도보여행자’를 만났어요”
엄숙한 분위기가 잠시 흘렀다. 네델란드에서 온 여행자가 말을 이었다.
“저는 길에서 슈퍼용 ‘카트’를 끌고 걸어가는 여행자를 만났어요”
웃을까 말까 멈칫하는 분위기. 여행자들 사이에서 널리퍼져 있는, ‘리어카’로 여행하는 일본인 이야기도 나왔다. 직접 본 사람이 있느냐고 서로 물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인 아저씨는,
“런던시내를 거닐고 있었지.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뭔가가 지나가는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도에서 봤던 오토릭샤 아니겠어? 그래서 바로 세웠 물었지. 어디서부터 왔냐고. 그랬더니 인도에서 런던까지 왔대!!”
마음속에 감탄이 이어지고 지고 있을 때, 훼란이 나에게 이야기 했다.
“저분은 자전거 릭샤로 여행했대요”
“우와~!! 정말요??”
하지만 놀라는 것은 나 혼자뿐. 놀란 것에 멋쩍어 하며 왜 놀라지 않냐고 물어보니, 아까 다 이야기 했단다. 자전거 릭샤는 동남아시아, 중국, 네팔, 인도 등지에서 널리 쓰이는 교통수단의 하나로 자전거를 개조하여 운전자 1명, 승객 2명이 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타고 타지않고를 떠나서 릭샤 자체가 무거워 빈 것을 타기에도 버거운 것을, 오르막길이 산재한 세계의 도로를 주행했다고 하니 할 말을 다 한 것이다. 이번엔 그가 직접 얘기했다.
“덴마크에서 그걸로 돈도 벌었어요. 시내에서”
그는 프랑스 사람인데, 너무나 놀라운 나머지 목이 턱을 바짝 당기는 것은 물론 ‘하~’하는 감탄사도 연발했다. 어떤 이유에서 여행을 했는지, 어디어디를 가 보았는지 구체적으로는 묻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그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얼마전 한국여행자로 부터도 신기한 여행자에 대한 얘길 들었었다. 어떤 일본인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여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어 국경마을 시장에서 당나귀와 그의 수레를 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고 다른 나라로 옮겨갔다고 했다. 물론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 전에 그것을 제 값에 팔고 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덜컹거리는 당나귀 수레를 타고 여행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하는 것은 둘째치고 신기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당나귀가 지칠 때면 길가 나무에 묶어놓고 풀을 먹이고, 자신은 주머니 깊숙히 숨겨놓았던 달콤한 사과 한입 물고. 먼 길을 걸어가는 노인이 있으면 태워 데려다 주기도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옛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티베트에서 야크를 끌고다니며 여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몽골 초원을 말을타고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넓은 고원지대를 걸어다니며 이 이생각 저생각에 빠지고, 배가 고플때면 야크 젖이나 짜서 마시고, 밤에는 모래알 같이 촘촘히 박힌 별이 빛나는 밤을 즐기고,. 가다가 만난 유목민 천막에서 차한잔 얻어마시며 추위를 달래고,, 옛 우리 선조들도 그렇게 생활 했듯이 그런 것을 통해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벗어나 다르게 한번 생활해 보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당장이라도 티베트나 몽골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것들이 왜 나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만드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또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이 또 용솟음 치는 것이다. 역마살인가?!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