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마바드 시장
길가에서 만난 마스지드의 기도

이슬라마바드는 계획도시이다. 도시이름부터 이슬람의 도시,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필요에 의해 구상되었고, 계획되었고, 지어졌다. 파키스탄의 본래 수도는 남서부에 위치한, 지금도 파키스탄 최대도시인 카라치. 파키스탄의 모든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 그외 여러가지 이유로 수도로써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1950년대에 옮기기로 결정하고, 1960년도부터 이슬라마바드에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펀잡지방과 비슷한 분위기의 라호르 – 이슬라마바드 구간을 3일 달렸다. 3일째 되는 저녁무렵에 도시외곽에 접어들었다. 시야 멀리에 간간히 불빛은 보였지만 그곳에 파키스탄의 수도가 위치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쉬이 예상이 되지않았다. 보통은 도시 외곽 몇 키로 전부터 복작복작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로 접어들면서 도로는 더 넓어지고, 차량들의 속력은 훨씬 빨라졌다. 보통 도시로 들어서면 활기차고 지저분한 모습이 와닿기 마련인데, 그 반대였다. 너무 넓은 도로와 빠른 차량들, 적적한 주변 분위기에 오랫만에 미아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겨우겨우 만난 사람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G-6’ 구역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뭐라고 얘긴 했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그 사람이 가리킨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도로는 복잡한 격자형으로 되어있어 내가 달리는 도로 뿐만아니라 여기저기 도로가 달리고 있었다. 헷갈리는 밤, 지나는 행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세상엔 멈추지 않는 차량과 낮은 조도의 가로등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한참을 헤메어 도착한 ‘G-6’구역 ‘아빠라’시장. 그나마 사람냄새가 조금씩 풍기는 곳이었다. 

그 건너에 목적지인 ‘여행자 야영지’가 있었다. 다른 숙소는 모두 300~500루피 였지만, 야영장은 하루 50루피면 족했다. 물론 외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또, 그곳에는 라호르에서도 만났던 자전거 여행자들이 있었고, ‘캠핑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숙소로 제격인 곳.

하루를 휴식으로 그저 보내고, 그 다음날 파키스탄 안전문제 및 이란비자 문제로 한국대사관을 찾고자 했다. 외국나온지 9개월만에 두번째로 찾는 한국정부시설이다. 첫번째는 친구따라 함께간 인도의 한국대사관.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파키스탄의 날’이라고 하는 파키스탄 국경일이라 한국대사관도 쉴까 그렇지 않을까 고민하던 사이, 다른 여행자들이 중국비자를 받아온 것을 보고, 외국대사관은 상관이 없나보다 생각했다. 

파키스탄 횡단 경로 중에 특별히 유의해야할 지역은 없는지, 어느지역에서는 폭탄테러나 총기사건이 빈발한다던지 하는 그런 사항과 이란비자를 받을 때 한국대사관에서 추천서를 받아가는지 아닌지 물어보는 것 뿐이라 휴일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는 그곳에 있는 누구나 대답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최소한 그곳의 한국사람은 모두 전문가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대사관은 아주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불친절하기 짝이없는 입구의 파키스탄 경찰검문을 겨우 통과하여 구석으로 구석으로 들어가 대한민국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한국대사관을 간신히 찾았다. 예상대로 입구의 경비원은 오늘은 휴일이니 한국대사관 직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려는 찰나, 경비원은 누구에게 전화했고, 누군가 있다고 얘길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나오니까 경비실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의리의리한 대사관 건물외부를 구경했다. 그 건물은 한국 청와대의 부속건물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아주깔끔하게 지어진 건물과 주변의 고요한 분위기, 산뜻한 날씨는 ‘과연! 대사관에서 일할만하구나!’ 였다. 20분 가량을 기다렸다. 3일을 더 기다려 월요일에 와야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하던 차에 경비원 아저씨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방금 전 입구를 통과한 지체높은 분에게 전화하는 것 같았다. 경비원의 태도로 봐서 최소 영사 이상되는 신분의 사람 같았다. 나의 사정 –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는 수화기를 나에게 주었다.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 인데요? 이슬라마바드에서 타프탄까지 자전거로 가려하는데 안전상황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왔거든요?”
“파키스탄 위험한데 여행을 왜 해요? 그것도 자전거로. 파키스탄 정세안좋아요.”
“네…”
“저는 온지 얼마안되었으니 오래되신분 보내드릴께요”

그 전화가 끝나고는 곧 한국사람이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려는데, 그의 표정은 이 휴일에 왜 왔냐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잘못했지. 그리고 이야기를 꺼냈다.

“X-X 구역에 한국식당이 있어요. 아, 명함이 여기 있었는데. 대통령 궁이 있는 큰 길로 쭉 올라가시다가 XX 주유소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되요”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한국식당에 대해서 얘기했다. 당연히 물어보지 않았다. 경비실 안에 앉아서 한국식당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뭐, 속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사실, 한국음식점이 있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설명이 끝나고 가져간 파키스탄 지도를 꺼냈다.

“제가 자전거를 타고 라호르에서 물탄을 거쳐서 수쿠르, 퀘타 그리고 타프탄으로 가서 이란으로 넘어갈건데요. 위험한데나 테러가 잦은 곳 좀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거길 왜 자전거 타고 가요.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말구요. 파키스탄 사람들 다른 종교에 대해서 간섭은 하지 않지만, 이슬람교에 대해서 깎아내리는 소리나 흉보면 굉장히 싫어하니까 종교 관련한 발언은 자제하시구요…”

그 정도의 대답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다음질문을 했다.

“이란 비자를 받는데 한국대사관 추천서가 필요하나요?”
“이란 비자를 받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란 대사관에 먼저 물어보세요.”
“전에는 어떻게 했나요?”
“이란 대사관에 먼저 물어보시라니까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분은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대사관에 XXX인데요. 지금 한국 분 한사람 갈거에요. 잘해주세요”

‘친절하게도 한국식당에 전화도 걸어주다니!!’

경비실에서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났다. 휴일이라서 그렇겠지만, 다소 기분이 나쁘긴 했다. 그곳 시설 모두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설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명으로써 기분이 좋지않을 수 밖에. 자신들 말대로 ‘정세안좋은’ 파키스탄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의 안전은 완전히 관심밖이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나와있듯, 위험지역 출입시 연락해 달라고 한 것은 순 거짓말 아닌가. 자신들 앞에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하는 내가 나타났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한국대사관에서 내가 알고자 하는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 대사관에는 파키스탄의 많은 정보들을 캐서 한국으로 보내주는 정보원도 있을 것이다. 테러조직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나라에 그런 사람도 없겠는가. 그건 비공개라 치고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탄테러, 총기사고 등의 신문기사 내용 정도는 갈무리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제공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했나보다.

에어쇼를 하는 비행기
파키스탄의 날, 에어쇼를 보는 사람들.
에어쇼를 구경하는 인파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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