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설산들은 어디 갔는지 그냥 그저그런 황량산 산들에 둘러쌓인 마을이었다. 다소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22시간 동안 버스의 고통을 감내하며 도착한 곳이 고작 이건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여행자 숙소에 몇 안되는 짐을 풀고는 식사를 시켰다.
그곳 직원의 말로 잠시 후에 폴로경기를 단체로 관람할 거라고 했다. 폴로? 나 학교다닐 때 돈많다고 자랑하려면 입으라던 그 상표? 영국인들이 말끔히 차려입고 말타고 작대기 휘휘 젓는 그 폴로? 하여튼 ‘폴로=비싸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곳에서 폴로경기를 한다고 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여행 안내서에 폴로 경기장이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아주 가끔씩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염두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밥을 먹고 있으니 그곳에 있던 한국인 여행자가 나왔다. 대번에 한국인임을 알아차리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혼자오셨어요?”
“네, 혼자왔어요. 조금있다가 폴로경기 하는 곳에 갈건데, 갈거에요?”
“네, 지금 생각중인데, 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
“외국인 친구 두명이랑 함께 갈건데 괜찮죠?”
그 한국분은 규환씨로 유럽 3개월 계획하고 여행을 나왔다가, 여행에서 ‘무엇인가’를 얻기위해 6개월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언제 이 여행이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른다고 얘기했다. 잠시 뒤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어? 당신은 리갈여행자 숙소에서 만났던 존??, 그리고 당신은 암리차르에서 만났던 카나에??”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규환씨가 얘기했던 외국인 친구 두명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규환씨는,
“어?? 서로 아는사이에요??!!”
폴로경기장은 숙소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입구 좌우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입구편 중앙에는 귀빈석으로 보이는 곳으로 위로는 지붕이 앞으로는 철망이 가리워져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큰 벽돌로 쌓아만든 관람석이었다. 관람석이라고 해봐야 그저 벽돌로 층을 내놨을 뿐 관람석이라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귀빈석에 앉게되었는데 정면에 철망이 가리워져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때로 사정없이 관중석으로 날아드는 폴로용 공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진도 찍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이 상승하고 있을 때, 관계자에게 말하니 ‘왜 안되?’라고 대답했다. 운동장에 내려가서 보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 날은 개막식 같은 행사가 앞서있고 이후에 폴로경기를 치르게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개막식을 장식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북치는 꼬마악대부터 그지역 전통 춤을 추는 사람, 파키스탄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인사를 했다. 외국인과 대면할 기회가 많이 없는 그들은 나에게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부끄러워 했다. 그들에게는 타인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내가 미안했다.
도착한 지, 관중들이 가득 메운지 한참이 지나서야 개막식은 진행됐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늦게온 듯 했다. 개막식이 진행된 이후에도 나는 행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전문가급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다른 여행자도 나처럼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당하는 것을 보고 다소 미안했다. 여러 집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준비하지 못하고 나온 듯 했다. 모두들 행동이 서툴고 서로 눈치를 봤다. 또, 전통춤을 추는 사람들은 무대?에 나가기전에 서로를 떠밀며, 서로나가라는 듯 행동했다. 그래도 모든 상황이 나에겐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운동장에 내려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관중석으로 쫓겨났고 나역시도 철망이 쳐진 귀빈석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폴로경기가 시작되는 듯 했다. 말을 탄 사람들이 긴 막대를 하나씩 쥐고 들어왔다. 경기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작은 공을 향해 뛰기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말들이. 긴 막대로 공을 상대편 진영으로 쳐내어 11자 형태의 풍선 사이로 넣으면 점수를 얻는 것이었다. 골키퍼는 따로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경기를 어찌나 거칠게 하던지, 말들 몸싸움도 몸싸움이지만 말 탄 사람들 간의 몸싸움은, 말들의 발들이 마구 엇갈리는 땅으로 떨어질까 아찔아찔하게 만들었다. 공이 딱딱해 나무로 된 막대는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부러지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지 누군가 금방 뛰어나와 새것을 주었다. 공이 가끔 튀어올랐는데, 그것을 잡은 선수는 곧장 상대편 골로 달려갔다. 상대편 선수는 그 것을 저지하기 위해 몸을 잡고 공을 뺏으려 했지만 쉽게되진 않았다.
처음보는 폴로경기라 너무나 흥미로웠다. 솔직히 ‘비싸다’는 이미지 때문에 재미없을거라 생각했다. 멀리서 공을 툭툭 쳐내기만 할줄 알았다. 말로 어떻게 재빠르게 뛰어다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말은 굉장한 프로였다. 한손으로 막대를 들고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말들은 어찌 그리 말을 잘듣는 것인지, 좌로 우로, 멈추었다 뛰었다 그랬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프로여서 사람이 신호하기 전에 어느정도는 알아차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폴로경기가 끝나고 말들이 퇴장하는데, 온 몸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번들번들 거렸다. 말의 그런모습은 처음보아, 그들을 보며 힘껏 박수를 치고는 나도 퇴장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