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길깃에서 하루정도 더 있어도 될 듯 했지만 대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에 젖고 싶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훈자로 출발했다. 훈자는 그 지역 일정부분을 포함하는 지역명칭이다. 다른 여행자들이 다들 ‘카리마바드’라고 하는 곳에 간다고 하길래, 나는 ‘왜 훈자로 가지않고 그곳으로 갈까’생각했다.
그리고 지도 속에서 도대체 ‘훈자’라는 마을이름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었다. 그러니까 ‘경상남도’정도의 큰 명칭인 것 같다. 당연히 경상남도에서 경상남도의 명칭을 가진 곳을 찾을 수가 없지. 훈자는 파키스탄에 합병되기 전 1947년 까지 미르(수장)의 통치를 받는 작은 공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훈자라는 명칭은 나라이름이다.
그래서 나도 ‘카리마바드’로 출발했다. 모두들 그쪽으로 출발했기에. 한시간 정도 계곡을 따라 난 길을 거슬러 올라갔더니 차량들이 다들 멈추어 서 있었다. 무엇인가 해서 차량들 끝에 갔더니 눈사태가 나 눈을 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눈사태의 설산을 넘어 반대편의 차량으로 갈아타고 갔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거의 마무리 단계라 잠시 기다리는 것이었다. 눈사태의 규모는 엄청났다. 버스 등 사람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눈사태 당시에 그길을 지나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얼고 숨막혀 죽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장장 3시간을 기다려 출발했다. 좀 더 많이 보고자 다른 여행자보다 일찍 출발했는데, 결국엔 늦게 출발한 여행자들과 함께 도착하게 되었다. 일본여행자들이 많다는 여행자 숙소에 짐을 풀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맑은 날에는 칠천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사방에 펼쳐진다고 했지만 그날은 구름이 많이 끼어 어렴풋하게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벚꽃과 살구꽃이 그 지역에 펼쳐져 있어 지금의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고봉들이 보이지 않긴 했지만 그 지역의 분위기는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황량하고도 날카로운 산이며, 강이 흐르는 그 양편으로만 나무들이 자라있고, 약간 완만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지구상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다른 행성에 왔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20여시간동안 버스를 타고오며 그 비슷한 풍경에 익숙해져 버려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었다. 짧은 거리를 밤세워 차를 몰아 오는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는 것을.
날씨가 흐린탓에 아침이든 저녁이든 비슷한 풍경에 다소 실망하곤, 숙소의 식당에 앉아 책을 보거나 다른 여행자와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 있는 여행자는 거의가 장기여행자로 최소 6개월 이상된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일본인 할 것 없이 모두다. 아무래도 계절이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 것 같았다. 그곳엔 7개월전 티베트에서 만났던 일본인도 있었고, 서로 세계 어느곳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낭여행자들이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는 이곳 ‘훈자’로 많이 흘러들어온다고 듣긴 했는데, 꼭 그런 분위기였다.
숙소엔 몇 개의 도미토리방과 식당이 전부다. 보통의 마을처럼 식당이나 기념품점 등이 거의 없다. 그곳 숙소의 여행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식사를 해결하려면 숙소의 식당에서 해야한다. 그런데 그걸 꼭 예약을 해야만 한단다. ‘예약을 못하면 밥도 못먹는건가!!“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키지 않아도 다 예약을 했다. 그리고 바깥 날씨가 흐렸고, 딱히 걸어서 가볼만한 곳도 없어 그곳 식당에 다들 앉았다.
“저희는 여기 3일이나 있었는데, 계속 날씨가 흐리네요”
여행 10개월째 접어든 기노씨, 용선씨의 말이다.
“살구꽃과 벚꽃이 핀다는데, 기다려도 안펴요, 해도 안뜨구요”
“이슬라마바드에선 계속 날씨가 맑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들어오면 올수록 날씨가 흐리더라구요.”
오랫동안 여행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야깃거리가 줄지 않았다. 나, 규환씨, 기노씨, 용선씨 이렇게 네명 구석에 앉아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이야기했다. 여행지에서 있었던 웃지못할 사건들하며 그곳에 대한 자신의 느낌들, 생각들. 좋지않은 날씨가 밖으로 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그들과의 대화는 재미있기만 했다. 아침먹을 때부터 저녁먹고 난 후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했다. 이틀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야기 * 2 로 지냈다.
결국엔 훈자의 하늘은 비를 쏟고 바람을 불렀다. 허탈한 나머지 잠을 잤었는데 해질녘이 되자 잠깐 하늘이 열렸다. 그 틈을 타 전에 봐두었던 사진 포인트를 찾아 이리뛰고 저리뛰고를 반복했다. 결국엔 붉은 빛이 감도는 하늘과 신기한 패턴의 키큰 나무가 어우러져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만들어 졌다. 실제로 보는 것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는 역시나 한계가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