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마당에서 바라본 하늘. 일주일만에였던가.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설산들도 드러났다.
키가 큰 나무들과 일출의 햇볕이 비친 구름.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 설산.
여기도 설산, 저기도 설산. 안개가 있을 땐 안보였었다.
햇볕이 들지 않았지만, 이토록 밝은 상태에서 보는 마을도 처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줌을 좀 땡겨서 찍어보았다.
말도 안되는 풍경. 이 세상 풍경이 맞는가?!
저 멀리 골짜기 디테일.

하늘은 4일을 기다린 나에게 축복을 내린 것이었다. 구름들에게 그만 물러나라고 명령을 했고, 구름들은 물러나려면 비를 쏟아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저녁이 되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달님까지 내비쳤다. 다음날은 맑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파키스탄 여행 관련 까페를 운영하시는 분이 추천해 준 ‘훈자투어’를 하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여행안내서에 나오는 ‘파수’근처의 바위산의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곳엔 꼭 가야겠다 생각을 하던차에 잘 된 일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녀오기엔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한 ‘인디아나존스’다리도 건너볼 수 있는 기회였다.

새벽 늦게까지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늦잠을 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른아침부터 거칠 것 없이 방안을 쏘아대는 햇님 때문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훈자에 간 이후 처음으로 직사광선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더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맑은 날의 훈자가 보고 싶어 얼른 옷을 갈아입고 사진기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을 막 받은 눈부신 고봉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높은 고산으로 쌓여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미 네팔에서 그런 경험이 있어 덜 놀랐지 네팔에서 산행을 하지않고 이곳에 왔다면 과연 이것이 정녕 이 세상 풍경인지 의심했을 것이다.

햇살은 훈자계곡 멀리부터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마을 전체를 덮을 것 같은 느낌에, 사진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또 발동하여, 시간에 늦을까 뛰어서 오르막을 올랐다. 오르면 오를 수록 넓어지는 시야는 심장을 두근거리게했다. (사실 2500m라는 고도가 심장을 그렇게 만들었다. 어쨌든) 수많은 벚나무와 살구나무 꽃은 햇살을 받으며 조금 더 밝은 분홍 빛을 내고 있었다. 

햇살이 마을 앞 까지만 다가온다면 큰 작품이 하나 나오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큰 신호가 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문닫은 상가 뿐, 숙소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신호였다. 주민들이 지날갈 때만 ‘살람알레꿈’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를 했지, 아무도 없을 때는 혹여나 바지로 쏟아질까 엉덩이에 힘을 주어 꼭꼭 틀어막고 뒤뚱뒤뚱 뛰어내려왔다. 화려한 훈자계곡의 모습을 담지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도중에 쏟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한숨도 못자고 ‘투어’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 작은 지프차에 운전자 포함 9명이 탑승하고는 ‘파수’방면으로 향했다. 다소 사람이 많은 듯 했지만, 싼 가격에 하는 것이라 불만은 없었다. 사실 돈을 내고 어디를 구경하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새벽에 맑던 날씨가 아침이 되자 다소 흐려졌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날씨는 더더욱 흐려져만 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던 ‘가니쉬’마을을 그냥 지나치고, 2000년 전의 여러 사람들이 새겨놓은 상형문자가 있는 큰 바위에 멈추어 섰을 때는, 그 바위보다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 기가막혀 모두들 주변을 감상하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기막힌 풍경이 나왔을 때는 그 곳에 멈추어 감상을 했다. 사실 알려진 곳보다 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울 때가 많다. 계곡을 타고 올라갈 수록 주변의 풍경은 더욱 날카로워 지고 삭막해졌다. 그 만큼 신비감은 커졌고 심장이 뭉클하는 횟수는 증가했다.

그 다음 목적지인 ‘인디아나존스 다리’에 멈추었다. 이곳에서 ‘인디아나 존스’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는 했지만, 어린시절의 영화인지라 얼핏 기억날 뿐이었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아슬아슬한 다리였기에 영화촬영장이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굵은 쇠줄을 이어놓은 다리가 두개가 있었다. 하나는 도저히 건널 수 없이 망가진 것이었고 하나는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다리였다.

한국이나 돈이 좀 있는 나라라면 이런 다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에 있는 것이 그런 면에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몇가닥의 굵은 쇠줄로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발판 역할을 하는 길죽한 나무판들이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 잠시만 한눈을 판다면 분명 강 아래로 떨어질 것이었다. 또,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강한지, 이 다리의 별칭인 ‘서스펜션 브리지’가 괜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언덕 너머에 위치한 호수근처에서 식사를 하곤, 산길을 조금 달리니 빙하가 나왔다.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얼음강’인데 정말이지 얼음강이었다. 계곡을 빼곡히 얼음들이 채우고 있었다. 얼음이 얼 것 같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압축되고 농축된 눈이라 쉽게 녹지 않나보다. 그리고 빙하는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포로 날카롭게 간 것 같은 모양으로 지형을 침식시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의 많은 산들이 빙하의 침식작용 때문에 그렇게 날카로워 졌나보다. 그 곳은 날카로운 산이 만들어지는 현장이었던 것.

처음보는 빙하에 어이가 없게도 머리속엔 ‘둘리’가 생각났다. 과연 1억년전 공룡이 빙하에 갇혀있다가 서울 한강에 나타날..만 한건가. 차가운 얼음계곡이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을 오래 참지 못하고 곧 내려왔다. 날씨가 흐려 사진으로 보던 옥빛 빙하는 보지 못했지만,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가져다 준 처음해보는 갖가지 상상이 좋았다. ‘과연 이 빙하가 서울까지 오며 어떻게 녹지 않았을까’ 라는…

그날 마지막으로 간 곳은 ‘파수’마을 이었다. 그곳에는 너무나 기대하던, 여행안내책자에 나온 너무나 멋진 사진의 주인공이 있는 현장이었다. 아침햇살인지 저녁 햇살인지를 받아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던 기이한 모양의 산봉들. 하지만 도착해보니 두터운 구름으로 인해 산은 그냥 밋밋해 보였다. 빛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특히 아침이나 저녁의 많이 기울어진 햇살이면 더 좋다. 

그런 빛이 신비한 입체감을 자아내는 것인데, 두터운 구름이 그런 것을 싹 걷어냈다. 아쉬운 하산이었다. 시간이 늦어 더이상 있을 수도 없었다. 역시나 아래쪽에는 비교적 맑은 하늘이었다. 골깊은 계곡을 타고 올라온 강력한 바람이 만들어낸 그 높은 곳의 구름들은 하늘도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마지막으로 남은, 훈자마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는 ‘메리쉬카르’라고 하는 곳은 시간이 늦어 가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투어’를 주선했던 동호회 운영자님은 그것도 ‘투어’에 포함된 것이라고 다음날 아침에 가도록 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걸어가면 3~4시간은 거린다는 ‘메리쉬카르’를 20여분에 차로 올랐다. 그 시간이 8시가 조금 지난 때라 구름들의 활동이 덜하였다. 고도는 내가 있던 ‘카리마바드’보다 수백미터는 더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까 ‘카리마바드’에서 받은 감동도 감동이지만 이 높은 곳에서의 감동은 말할 것도 없다.

골깊은 훈자계곡이 한눈에 펼쳐졌고, 주변의 설산들은 너무나 가까웠다. 대자연이 주는 경이로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사실, 훈자마을에 도착하고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름들에 가린 풍경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산행’ 때의 감동이 너무 진해 이곳의 풍경이 잘 와닿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네팔과 이곳은 다른 풍경이고 다른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네팔은 우거진 숲이 너무나 아름답다. 고도가 높아지며 천천히 바뀌는 식생도 너무나 아름답고,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설산들은 말할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곳은 사람이 심은 나무 이외에는 자라지 않지만, 날카로운 산이 만들어낸 깊은 골을따라 난 강이며 마을이 주는 신비감은 직접 보지 않고는!!

감동 정도가 나의 감동전지의 한계를 넘어서 충전을 했기에 나는 내려와야만 했다. 다만, 낭가파르밧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짧은 산행을 이른계절 때문에 못한 것이 아쉬웠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 봉을 볼 수 있는 ‘사카르두’여행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또 다음을 기약하는 의미로 남겨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18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떠나기 전보다 더 뜨거워진 날씨에 이란대사관이 미웠지만 감동전지를 충전할 수 있게끔 한 것도 그들이니 어찌보면 고마운 일이다.

차량을 타고 마을 아래 쪽으로 내려와 찍은 사진. 험준한 설산과 꽃이 핀 나무들. 이런 풍경이 또 있을까?
차를 타고 가다말고 '스탑'을 외쳤다. 이런 풍경이 멋진 법이다.
자연의 색감은, 특히나 봄의 색감은!
상류를 바라본 모습.
숙소에 있던 여행자들과 함께 투어를 하던 차량.
이런 길을 한참을 달렸다. 이곳도 내가 잡아 세웠다.
인디아나존스에 나왔다는 다리.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넓은 강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빙하로 접근하는 길.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빙하... 여서 규모가 가늠이 안되었다.
여행 책자에서 아주 멋지게 실려있었던 파수... 흐린 날씨 탓에 아쉬움이 좀 컸다.
산세가 너무나 남달랐다.
멜리쉬카르에 올랐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신 기사님 기념샷.
멜리쉬카르에서 바라본 훈자계곡. 이 세상 풍경 맞음?
파노라마 풍경. 약 180도 정도 된다.
주변 설산들. 7천미터 내외급 고봉들이다.
멜리쉬카르 마을.
기계없이 손으로 농사를 짓나보다. 이 때 농사/시골/자급자족에 대해 진하게 감명을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생길 수 있을까?
나의 기념 사진.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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