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나 도착해서 뻥졌던 골목길. 조금만 올려보아도 이게 21세기인지 17세기인지 헷갈린다.
올드카 발견. 56년부터 68년까지 생산했던 독일차. DKW Munga라고 한다.
길에 펼쳐진 밭들. 그 전에 만났던 곳들이 완전 다른 풍경.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등등
평범한 마을 길. 여기도 오래된 길 같다.
아씨씨 입구. 평지는 밭이고, 도시는 언덕에 있다.
길도 함께 찍었다.

관광안내소에서 ‘올드시티’라고 부른 곳, 그곳 건물의 건립연대는 수백년씩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관리를 비교적 잘 했는지 그곳에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사람들이 사는 곳도 있었다. 짧은 시간 앙코나를 둘러보고 유명한 관광지방인 ‘토스카나’지방으로 향했다. 한산한 그리스 도로와는 다르게 고속의 차량들로 도로가 붐볐다. 갓길도 없었기에 위태 위태하며 주행하다 그곳은 고속도로와 곧바로 이어지는 도로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힘겹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골 깊은 구릉들이 펼쳐져 있던 중동부지방을 이틀 달려 첫 번째 방문지 ‘아씨씨’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산 사면을 채우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아씨씨’는 내가 아는 유럽의 중세도시 이외 다름 아니었다. 당장에 철 갑옷을 입은 말 탄 용사가 ‘뭣하러 이곳에 왔느냐?’ 하고 물을 것 같았다. 물론, 그는 이탈리아어 그곳 방언으로 이야기 할테고 그의 아래 자막이 흐르겠지.(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다음날 아침일찍 그곳으로 출발했다. 가장 유명할 것 같은, 좌측 끝에 위치한 성당을 찾았다. 산 프란세스코 성당으로 오래전 훌륭하게 살다 간 ‘프란키스쿠스’라고 하는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단다. 아니나 다를까 거리 기념품 상점에는 그분의 벽화를 본 딴 열쇠고리하며 인형에다 그림까지 갖가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대번에 그 성당의 유명세와 그 성당에 모셔진 ‘프란키스쿠스’신부님의 명성을 알 수 있었다.

마을입구부터 큰 아치형의 문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 길 바닥은 이스탄불에서와 마찬가지로 돌이 촘촘히 박혀져 있는 구식 포장도로였다. 길 양편의 늘어선 집들은 이곳이 도저히 21세기의 마을일 수는 없다고 얘기했다. ‘이래서 이탈리아’구나 감탄을 금치못하며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주변에는 무슨 큰 무대행사가 끝이났는지 무대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성당은 의외로 무료로 개방되어있었다. 솔직히 내부에 들어가면 대단한 감동을 받을거라 생각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웬걸 그저 미적지근했다. 그 화려하다는 ‘스텐인드 글라스’를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윗층 아래층 다 둘러보아도 안타까운 실망뿐이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연발했지만 그것들이 가슴속에서 절로 나오는 감동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파키스탄을 떠난 이후 가장 더운 날씨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성 ‘로카 마조레’ (ROCCA MAGGIORE)에 올랐다가 온몸을 적시는 땀을 체험하고 극구 후회하며 내려왔다. 시야하단이 중세건물로 가득차고 멀리엔 각종 밭들이 펼쳐지는 신비한 풍경을 뒤로한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당입구. 옛 건물에 기념품점들이 많았다.
한 낮엔 너무 더웠다.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
옛 도시긴 해도 차가 다닐 정도는 된다.
입구 아치문.
어느 성당이었나... 예수님 상을 모셔놓았다.
아씨씨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로카 마조레
로카 마조레에서 바라본 아씨씨
아씨씨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로카 마조레
로카 마조레에서 내려다 본 프란치스코 대성당
프란치스코 대성당
돌아가는 길에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아씨씨. 해바라기가 다 뒤돌아 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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