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카손에서 피레네 방향으로 페달을 밟았다. 서서히 올라가는 길이었지만 몇일동안 즐거운 관광을 한 덕에 평소보다 페달질이 가벼웠다. 도중에 들른 수퍼마켓 아주머니는 ‘지금 네가 가는 길이 몇일전 뚜르 두 프랑스 선수들이 지나간 길’이라고 말해주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뚜르 두 프랑스 대회가 열리는 길은 대체로 아름다운 길이고, 피레네 산맥 코스를 이 길로 선택을 했다면 이 길이 아름답다는 말이 되니깐.
큰 산들의 발밑을 흐르는 중급하천 옆에 위치한 Axat 의 야영장에서 하루를 쉰 뒤, 본격적으로 피레네 산의 골을 따라오르는 길을 탔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좁고 계곡의 지형을 거의 그대로 타고나는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오르막이었지만 거의 쉬는 일도 없이 올라갔다. 때로는 물이 뚫어 놓은 큰바위 사이를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도로가 그늘이 질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도 지나갔다.
길은 거의 작아지는 규모의 도랑을 따라올라갔다. 좁은 도로라 그런지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으나, 사이클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의 응원을 받자니 우쭐해지기도 했다. 졸졸거리는 계곡소리와 산새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산을 오르니, ‘역시나 도시보다는 자연이야’
분명히 1714m의 언덕이라면 그리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상에 닿기전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야 했음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50km 정도를 달렸던 탓에 걱정이 됐다. 그러던 도중에 뜬금없이 정상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나왔다. 나의 체력이 향상된 이유일까. 어쨌든 그 언덕에서는 동서로 길게 뻗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을 나누는 피레네 산맥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날의 계획대로 Err 라는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피그말’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걷는게 더 좋다. 신발이라는 두꺼운 물체가 땅과 사람을 구분짓지만 그래도 걷는 것이 자연을, 산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은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 차량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차와 함께 달려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산을 오르면 차는 물론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교통수단과 떨어져 다닐 수 있다. 그렇기에 인공적인 부자연스러운 것과 떨어져 결국 인간이 되돌아가야할 자연에서 마음껏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산에도 기운이 흐른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리산 천왕봉 같은 곳에 올라가면 민족의 정기를 운운하는 표지판이 서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 오르면 머릿속을 누군가 안마하듯 시원해진다. 특히 정상에 오르면 찌릿찌릿 하면서 가슴이 탁 트이지 않는가! 이곳 유럽에서도 산에 올라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유럽의 산에서 흐르는 정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피레네로 향했고, 그 중 피그말이라는 봉우리를 택했다.
도착한 날이 때마침 일요일이어서 슈퍼마켓 문은 모두 닫혀져 있었다.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소비한 상태라 비싼 돈을 치르고 주변의 ‘바’에서 피자로 배를 채웠다. 다음날 아침 슈퍼마켓 개방 시간에 맞춰 그곳에서 비상식량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그날 오를 피그말 봉은 2910m나 됐다. 우리나라의 1916m나 되는 천왕봉도 이틀은 잡고 산행해야하는데 그보다 1000m나 높은 그 봉을 하루만에 갔다올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피그말을 하루만에 갔다올 수 있나요?”
“그럼. 가능해.”
“높이가 거의 3000m 인데요?”
“괜찮아~”
아침일찍 나서면서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본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량을 많이 준비한 것. 그 산 사면에 발달한 스키장 덕에 스키장 입구 2000m 지점까지 도로가 나 있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그곳까지, 그 다음부터 정상까지 걷기로 했다.
예전 덕유산에 올랐을 때, 아름다운 산의 사면을 면도기를 밀 듯 밀어내고 스키장을 지은 것에 참으로 불만이 많이 쌓였었다. 이곳의 산에도 그런식인줄 알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에 보이는 그곳엔 아예 나무의 흔적같은 것은 정말 드물었다. 스키장이라고 만들어 놓은 곳은 물론이고, 고도가 2000m가 넘어가면서 나무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수많은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스키장도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이다. 이렇게 높은고도 때문에 나무가 없는 곳에 겨울에는 자연스레 눈이 쌓이고 그곳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우리에겐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산 중턱 도로가 끝나는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그곳에서부터 나무는 거의 없었으므로 어디를 꼭 길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으나 앞서가던 사람의 뒤를 따랐다. 비교적 완만한 길이었다. 숲이 울창한 그런 길을 상상했건만, 높지도 않은 곳인데 완전 고산사막이었다. 아무래도 높은 위도 때문에 고도가 높지도 않은데도 그런 지형이 형성된 것 같았다. 가을부터 봄까지 내린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황량한 거산이 괴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다소 뾰족한 봉우리도 보였지만 대부분 둥글둥글하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봉우리였다. 낮은 풀들이 많은 그 황량한 곳에서도 목축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누렁이와 같은 색의 소들이었다. 그러다 날카롭게 쪼개어 진 돌밭을 힘겹게 오르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멈추어선 어딘가를 쏘아보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 쏘아보던 곳을 바라보니 뿔이 나무줄기 같은 큰 사슴류의 동물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고도가 높아져 그런 것인지 정상에 닿을 때쯤에는 숨쉬기가 조금은 곤란해 지는 것 같았다. 2500m부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하니 그럴만 했다. 결국엔 계속 올려다보며 오른 곳에 올랐다. 마지막 몇걸음은 뛰어가며 정상까지 온 것을 자축했는데, 웬걸, 그곳 둘레로 더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가파른 경사 탓에 주변의 산들의 높이를 가늠하지 못한 탓이리라.
오른쪽에 보이는 제일 높아보이는 봉우리로 향했다. 다행히 조금전보다는 훨씬 덜 힘들었다. 얼마 후 도착했고, 또다시 조그만 절망을 느꼈다. 내가 올라온 반대쪽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는게 아닌가. 그 것이 분명 피그말 봉인 것 같았다. 프랑스라서 프랑스 식으로 헤메는 것일까. 과거 나폴레옹이 그러지 않았던가. “얘들아 이 산이 아니다.”
목표로 했던 봉우리가 아니더라도 그곳에서의 경치또한 일품이었다. 그곳의 지형은 내가 앉아있는 그곳의 산맥과 야영장이 있는 고원지대를 중앙에 두고 건너편에 또다른 산맥이 달리고 있었다. 산맥 위로 뭉게구름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태양은 그런 구름들 사이로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고원지대의 작물들이 햇빛의 유무에 따라 색상을 바꾸고, 산맥들의 색깔도 햇볕의 상태에 따라, 비록 무채색의 민둥산이었지만 아름답게 빛났다. 고요하게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곳에서 초콜릿을 씹자니 저절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가 나왔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부르는 그 노래.
감상에 젖은 마음을 접고 다시 일어나 그 봉우리에서 내려왔다. 최고봉 피그말에 갈 것인가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하던중에 산행꾼을 한명 만났다. 그에게 어느봉이 피그말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금 그 봉우리에서 보았던 최고 높은 봉우리가 피그말이었다.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가보고 알려달라’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 별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이왕 가는거 높은 곳까지 가보자’
황량한 산이니까 가고 있는 건지 마는건지, 여기가 거기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1시간 가량을 걸으니 봉우리와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 우리나라처럼 비석이 세워져 있을줄 알았다. 자랑이라도 하려고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휘어진 철제 십자가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앉아서 나머지 간식을 먹으려 했지만 최고봉답게 거센 바람이 체온을 자꾸 뺏어가 내려가야만 했다.
역시나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것 같았다. 자전거가 있는 그곳까지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산에만 오르면 느껴지는 무릎통증도 놀러왔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가파른 곳을 올랐는지 뽀족한 돌에 손을 딛고 한발 한발 내려서자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힘들게 힘들게 겨우 겨우 내려왔다. 다행히 자전거는 안전했다. 남은 것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내려가는 일 뿐. “악!! 완전 지긴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