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근처 과수원.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많았다.
양들. 털을 막 깎은 것 같다. 털이 짧다.
퇴적암 지층으로 이루어진 산들. 오래전에 바다였다는 증거. 신기했다.
철도 건널목의 흔적.
폐허가 된 건물. 사람이 살지않게 된 건물들이 꽤 많았다.
사건사고도 없는 평화로운 주행길이었다. 삼각대를 세우고 셀카를 찍었다. 이럴 때 안찍으면 언제찍나. 운명은 내가 가는 길 위에 있다. = 운명은 만들어나간다.

주변은 정말 황량했다. 밀밭으로 이용되는 것 같은 대규모의 밭이 이따금 모습을 나타냈지만 그곳에 심어진 작물은 없었다. 간간히 밭을 가는 트렉터와 아저씨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올해는 농사가 끝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황량함은 더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며 왜 그런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인간세상에는 오래전부터 운명이라는 개념이 자리잡혀있다. 사전에는 운명이란, ‘인간의 의도나 일을 포함하는 우주 전체가 인간의 의지와 관계 없이 움직이기 어려운 궁극적 결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인지(人知)를 초월한 힘.’ 이라고 나와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벌써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상이나 점, 손금 등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다.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그런 것을 믿을 리가 없다. 최근 서양에서 들어온 타로카드가 유명해진 것을 보면 서양역시나 그런 운명적인 관념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또, 헐리우드 영화 중에 운명을 소재로 한 것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하늘’에서 정한대로 죽지않으면 피하려한들 죽게되어있다 는 내용이었다. 주인공들은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려 애쓰지만 결국엔 죽는다.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다소 과장되게 하고 있다.

운명을 믿게 된 이후부터 나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된 것도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인가. 이후에 나는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인가. 세상 사람들 운명이 다 정해져 있다면, 그것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면 참 재미없는 삶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점술가라도 하늘이 정해놓은 운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황량한 시골길을 지나가며 황당한 생각들을 했다. 주변이 메마르고 지나는 차량들도 10분에 한 대 정도, 바람은 어찌나 센지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십대를 돌려가며 ‘휘이이이’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분위기 탓에 보통사람이 듣기엔 황당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운명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누가 그것을 증명해줄 것인가. 그냥 믿음 그 이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고민에 빠져 하염없이 주행하다 갈림길이 나왔다. 워낙 외진 도로라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진 않았다. 선진국 스페인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아직은’ 이었다. 이틀뒤에 ‘소리아’라고 하는 도시에 도착예정이었다. 만약에 길이 틀어진다면 다시돌아오거나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포르투갈로 향하는 여정이 아예 틀어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 앞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예정대로 소리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길로 들어서 고생꽤나 해야할 것인가. 어떤 길로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디가 더 재미있을 것 같은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길의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선택권은 이미 아예 있지도 않은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두 갈래길 앞에서의 선택권은 ‘그’에게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이리로 가면 이리로 가는 것이고, 저리로 가면 저리로 가는 것이지 내가 선택한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에 수긍하기 힘들었다. 만약에 그것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정한 것이지 ‘그’가 정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이 길로 가는 척하면서 갑자기 돌아서 저쪽길로 가면 그것도 정해진 것인가. 내가 하늘에게 ‘속았지?’하고 놀리면 그는 ‘장난하냐? 다 알고 있었어’ 라고 대답할 것인가.

마음이 더 끌리는 길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시원한 바람이 맞서 불어와 뜨거운 태양 빛 아래라도 즐거웠다. 수많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이다.

저길이 내 운명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나아가고 있다. 정말로 이 길로 가는 나의 행동이 오래전부터 또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도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나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한다.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우수한 신이 들린 점술가라고 할지라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되는대로 그냥 살아갈 것인가!? 점술가가 예언한 것을 믿고 그대로 살아갈 것인가. 내 삶은 나의 선택과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내가 의도하고 페달을 밟아 나가는 이 길 위에 나의 운명이 있는 것이다.

모처럼만에 뜻깊은 생각을 했는지 심장이 가려웠다. 가슴속에서 숨이 푹푹 올라오며 헛웃음을 만들어 냈다. 가려운 심장을 긁어주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사막같은 그곳에서 힘차게 외쳤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하지만 운명은,!! 내가 가는 길 위에 있다.!!”

카스티야 평원의 드넓은 밀밭. 밀을 수확한 후 밀짚베일을 만들어놓았다.
어떤 마을에서 만난 작은 성.
성은 작았지만 방어하기 위해 높고 튼튼하게 지었다. 예전엔 공격이 심했었던 것 같다.
주인 아저씨. 아주 가끔씩 투어를 진행하신단다. 어쩌다가 지나가던 나도 끌려오게?되었다. 스페인어로 설명하셔서 아무것도 못알아들었지만... 신기했다!
밥 해 먹던 자리. 한 번 찍어보았다.
밀밭, 포토밭, 올리브밭 등과 함께 해바라기 밭도 많았다.
해바라기 클로즈업.
El Burgo de Osma(엘 부르고 데 오스마)지역 대성당.
작은 마을, 더운 날씨 탓인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마을과 식당들. 그냥 멋있어 보였다.
더운 날씨 탓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나는 길에 보인 작은 성.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던 걸까.
양들. 털이 바짝 깎았다. 지난 길에 양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나무. 너무 멋있었다.
작은 마을임에도 깔끔하게 유지된다. 부럽..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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