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보일러 장작 받침 만들기

보일러를 살 때 함께온 장작 받침대가 1년 전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나무가 잘 타려면 공기통로가 넉넉해야 하고, 그걸 위해 장작 받침대도 필요하죠. 1년도 안되서 받침대는 끊어졌고, 조금씩 짧아지더니 이제 한 뼘도 안남았습니다. 따로 구입하기에는 애매해서 하나 만들었습니다. 집에 돌아다니던 각관으로 하나, 돌아다니던 하우스 파이프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용접은 거의 처음하는거라 구멍도 많이 났지만 얼추 붙긴 붙었습니다. 이웃집에 […]
수동 옥수수 탈곡기

옥수수를 털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콩 탈곡기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대여가 가능하지만 옥수수 탈곡기를 빌려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양이 적으면 손으로 털어내도 되겠지만 우리집 옥수수 양은 그렇게 적은 양은 아니다.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지만. 여러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봤지만 옛날옛적부터 내려온 중고 탈곡기는 있었지만 새 탈곡기는 없었다. 중고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걱정없이 구매하겠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
아직, 처마에 걸려있는 옥수수

지난해 옥수수가 주작물이었다. 판매를 목표로 노력했지만 우박과 긴 장마로 어렵게 되었다. 우박은 한 뼘 정도 자란 옥수수를 사정없이 꺾어 놓았고, 7월 초순 경에 시작한 비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8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는 비는 처음이었다. 비도 비였지만 해가 구름에 가려 습도가 너무 높았다. 옥수수는 결국 비가 오는 중에 거두었고, 상태가 매우 안좋았다. 원래도 곰팡이가 […]
겨울 밭

이제 1월도 다 끝나간다. 고추 농사를 짓는 데는 2월부터 농사 시작이다. 모종을 2월부터 기르기 때문. 우리집은 그렇게 빨리는 못하더라도 농사준비는 슬슬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밭에 나가봤다. (코 앞) 어쩌다가 ‘자연농’에 꽂혀서 밭을 볼 때마다 부담이 된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땅을 가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라 이런 고민 자체가 필요 없을테다. 모종은 어찌 저찌 […]
드디어? 의자에 올라가는 윤하…

윤하가 의자에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윤하가 만지지 말아야 할 물건들은 식탁 위, 책상 위로 옮겼었다. 키가 크면서 그 물건들 위치도 더 안쪽으로 보냈고. 이제는 식탁위나 책상위에 만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의자를 발판삼아 올라간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물병이나 컵을 엎어버리기 일쑤다. 모하의 장난감들도 책상 위나 식탁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
홈페이지 다시 시작합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재미있는 일은 아닌데, 몇 번을 고쳐 만드네요. 온화전 답답을 몇 년간 유지를 했었지요. 디자인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름도 가벼워 보이고,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하농장 hahafarm.net으로 바꾸었지만 윤하가 태어나고 관리를 못해 정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홧김에 삭제해버렸지요. 이번에는 확실히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합니다. 업데이트도 꾸준히 하고, 저의 가장 오랜 […]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 보름달이 뜨면 풍경이 차갑게 빛난다. 한 해가 너머가고 처음으로 맞는 보름달이라 다 같이 나가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농부라서 농사 잘되게 해달라, 건강히 한 해를 보내게 해 달라 등 달님께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말했다. 소원인지 요구인지 모를 이 주문들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메세지’ 남기고 ‘지구를 떠난’ 성자부족 이야기

나는 베스트 셀러가 된 책들을 피하는 편이다. 상업성을 띠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몇해 전, 눈에 띤 책 중 <무탄트 메시지>라는 것도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일부러 외면했다. 왠지 ‘원주민’들의 삶을 곡해하여 써놓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북미 인디언의 사상을 추종하는 나로서 ‘원주민’의 삶이 야만적으로 표현되는 걸 극히 꺼린다. 얼마 전, 주변에 사는 지인이 <무탄트 메시지>를 추천해 주었다. 그 […]
농부는 ‘놀고’,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

(2012년에 쓴 리뷰) 내가 20대를 지나오며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꿈의 변화이다. 마냥 어릴 땐 통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가 머리가 조금 굵어진 다음에는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언어를 배우며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통역가’라는 직업에 끌렸던 것이었고, 거기에 ‘자유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첨부해 변화한게 ‘여행작가’였다. 사실 그 직업을 갖고 싶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