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산악지대를 통과하고 들어간 숙소
나를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다음 숙소에선 베개와 수건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우기도.
알고보니 돈을 뜯어내기 위한 치사한 수법이었다.

 산악지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무려 300km나 계속된 산악지역이었다. 10km 가 넘는 내리막이 몇몇 있어 신나게 즐겼고, 마지막 내리막은 길도 완만하며 적당히 구불구불하여 여행시작이후 최대의 스릴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수이라는 도시에서 하루를 묵게되었다. 비싼 숙박료를 애교를 활용하여 겨우겨우 깎고는 방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노크소리가 들리길래 귀찮다는 듯이 ‘웨이셤머!’(왜!)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가질않고 계속 노크를 했다. 무슨 큰일인가 싶어 씻다말고 옷을 대충입고는 문을 열었다.

“show me your passport.”(여권을 보여주세요)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온 학생이 말했다. 그것도 중국인답지 않게 발음이 화려한 영어로. 나는 너무 의아해서 아주머니의 표정을 살폈는데, 한손을 입언저리에 갖다놓고 눈동자가 커다랗게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커다란 의심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주저없이 여권을 보여줬다. 여권에 다 적혀져 있건만 학생은.

“are you north korean or south korean ?”(북한사람이에요, 남한사람이에요?)

“I’m from south korea, and traveling by bicycle”(남한에서 왔구요, 자전거로 여행해요)

 그랬더니 그 학생이 얘기하길, 아주머니는 내가 짐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의심을 했었단다. 가방 안에 폭탄이 가득 들어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나보다. 여관이 폭파되는 상상을 했겠지. 아니면 탈북자로 의심한건가? 만약 그 영어 잘하는 학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가방도 다 뒤집어엎어 살펴보았을 것이다. 신고가 되면 일단은 ‘서’로 가서 최소한 기본적인 조사는 해야 되는 것도. 의심을 당해 아주머니가 매우 밉긴 했지만 아주머니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관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 학생이 아주머니에게 천천히 설명을 하니 그제서야 긴장해던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곱고 하얗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쌔까맣게 변했다. 누가봐도 ‘수상한 사람’이 되었다.

 시수이 바로 다음 도시였다. 에쪼우라는 도시였는데, 싼 숙소 찾기도 귀찮고 해서 우리나라 러브모텔 수준의 숙소로 들어갔다. 더운 날씨 덕에 나 돌아다니지도 않고 쭉 쉬다가 다음날 아침에 짐을 챙겨 나왔다. 승강기 앞에 짐을 두 개 놔두고 짐을 더 가지러 가는데 그 층 담당 아주머니가,

“투이팡마?”(퇴실하세요?)

라고 아주 크고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스아”(네)

 했더니 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갔다. 나머지 짐을 들어주려는가 보다 생각하곤, 아주머니 참 착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방엘 도착해보니 가방은 그대로고 뭘 자꾸 들춰보고 있었다. 일찍 청소하고 쉬려나보다 생각하고는 나머지 가방을 들고 나왔다. 힘들게 1층까지 짐을 내리고는 자전거를 가져다가 짐을 달았다.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

라고 얘기했다. 나는 ‘귀찮게 또’ 하는 생각을 하며,

“워 팅 뿌동 쭝원”(중국어 몰라요)

라고 얘기하고 짐을 계속 쌌다. 그래도 이야기를 그치질 않아,

“워 스 한궈런, 쯔다오마”(한국인이에요, 알겠어요?)

하고는 보증금을 돌려받으려 하는데, 계속 반복되는 얘기. 돈은 돌려주지 않고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자 그제서야 의심을 갖고 반복이 제일 많은 단어들을 사전으로 찾아보았다. ‘베개’, ‘수건’, ‘의심’ 이런 단어들이었다. 해석해보자면 ‘네가 베게와 수건을 가져간 것이 의심이 된다.’였다. 이런일이 다있나해서 침착하게, 수건은 처음부터 없었고, 베개는 있는 그대로라고 힘들게 얘기했다. 카운터 아줌마와 윗층 아줌마가 다시 전화통화를 했고, 베개가 하나밖에 없다는 소식이 내려왔다. 그 소식에 베개가 겹쳐져 있다는 시늉을 했다. 결국 카운터 아주머니도 확인하러 올라갔다.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기에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은 줄 알았다. 또, 표정은 의심하는 그것이 아니었기에 나도 시큰둥했었는데, 이렇게 의심을 하다니 괴씸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손님들에게 이런 식으로 덮어씌워 자주 돈을 뜯어내는 듯 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이었다면 주변에 있는 물건이 하나이상 파괴되었을 판이었다. 또, 경찰에 고발하여 모든 사기가 들어날 수 있도록 적극 수사에 협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고 까딱 잘못했다가는 내가 손해 볼 가능성이 더 컸다. 가슴을 툭툭 쳤고 숨은 거칠어졌다. 두명 다 내려와 8시까지 기다리라고 얘길했다. 7시에 내려와 7시 반까지 실랑이를 벌이고 또, 30분을 기다리라고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워 나거 뿌 야오!!”(나 그런거 필요없어)

라고 크게 소리쳤다. (설마 그 큰 베개가 필요했을까!) 다른 말로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생각나는 중국어가 그것밖에 없었다. 또한번 소리쳤다. 이번엔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띄워가며 더 큰소리로 외쳤다.

“워!! 나거!! 뿌!! 야오!!”

 가까이 불러세우고는 그것 없으면 30원을 내야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그렇지!’ 의심했던 그대로다. 계속 기다리게 하고는 어쩔 수 없이 30원을 내고 가게끔 하나보다. 절대로 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영화 ‘고릴라’의 고릴라가 ‘그녀’가 없을 때 불안하게 쉭~ 쉭~ 거리는 모습을 흉내내며 그 아줌마들에게 나의 화난모습을 표현했다. 결국 내가 화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자신들의 사기가 통하지 않겠다 생각했는지 보증금 110원을 모두를 돌려주었다. 그 곳을 빠져나오며 보이는 중국인들은 모두 하나같은 사기꾼으로 보였다.

 외국에서는 한국말을 하지말자는 혼자만의 법칙을 만들어놔서 우리말로 욕을 하지 않았지 그런 원칙이라도 없었으면 한국말로 욕바가지를 쏟아냈을 것이다. 결국엔 그 원칙을 지키느라 보통화로 ‘워!!!(나) 나거!!!(그거) 뿌!!! 야오!!!(필요없어)’ 만 큰소리로 또박또박 떠들어 댔던 것이다. 참을성의 승리였다. 그리고 결국 나를 그냥 보내줬다는 것은 나를 죄인 취급한 것이 자기들 음모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 그다음부터 보이는 중국인들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배고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잘도 참아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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