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미래라는 단어의 시제가 언제나 미래여서 오래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미래의 대안으로 전통을 선택한다는 뜻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읽어보니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 삶이 현대적 삶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가득차 있었다. 현대적 삶이 전통적 삶보다 나은 것이 많지 않다면서 ‘생태개발’을 내세운다.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는 라다크 지역의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그곳에 첫발을 내딛는다. 라다크가 적극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던 1975년도다. 그러던 중 혹독한 환경속에서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과 그들의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급격한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져가고, 청정했던 지역에 환경오염이 발생했으며 더욱 빈곤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라다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전통문화 부흥과 재생에너지 사용 장려를 위한 프로젝트다.
책 초반부는 어떻게 라다크 사람들이 혹독한 기후환경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기술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중앙에 위치하여 ‘겨울은 무려 8개월이나 지속되며 영하 40도의 기온이 유지되며 작물을 키울 수 있는 기간은 단 4개월에 불과한’ 지역에서 자급자족을 수백년간 지속했으며 외지에서 들어오는 건 소금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많이 그렸다. 저자의 친구인 체링돌마라는 분의 기막힌 말,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는 않다는 건가요?”
중반부 이후부터는 자본의 유입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나 라다크는 히말라야 오지라는 지형적인 요인으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식민지배를 받지않았다. 그래서 최근(1970년대) 까지도 전통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와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에서 이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로써 확실히 인도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관광업을 중심으로 개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라다크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필요한 경우 물물교환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개방이 되며 교통이 발달하고 관광객이 몰려들며 많은 돈이 유입이 됐고, 외국인 한 사람이 쓰는 돈이 라다크 가정 1년동안 쓰는 돈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 라다크 사람들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데, 이전까지는 ‘무척 행복하고, 잘 살고 있다’고 여겼었지만 개방 이후부터는 가난하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객들도 그들에게 동정심을 표현하며 가난하게 보았단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부부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라오스를 여행하며 산골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했단다. 다음에 갈 때는 꼭 신발을 몇컬레 사 가겠노라고 다짐했다는 얘길 들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잘 사는 기준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지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불쌍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 없이도 잘 살고 있음에도.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어요 – 체왕 팔조르, 1975년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 체왕 팔조르, 1983년
저자는, 더군다나 스웨덴 출신의 사회운동을 하는 저자는 서양의 자본주의 단점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전통적인 사회에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 그곳에서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언어학을 공부하며 라다크어를 할 줄 알았기에 그 지역민들과 수십년간 소통을 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 뿐만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들여다 본 것이다.
결국에 그녀는 전통의 복원과 외부의 에너지를 들여오지 않아도 되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권장하는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된다. 라다크 주정부와 인도 중앙정부를 꾸준히 설득하여 정부의 지원도 받았다. 외국인의 입장에선 쉽지 않았을거라 짐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난방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한 ‘트롱브의 벽’을 개발하거나 중력으로 작동하는 펌프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협업으로 결국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국제기구로 성장했고, ISEC(에콜로지및문화를위한국제협회)라는 기구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레(라다크 수도)에 ‘생태개발센터’를 짓고 그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존경심이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남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다. 시기만 다를 뿐이지 우리나라 역시 그들처럼 자급자족의 생태적인 생활을 수천년간 지속했으나 최근 백여년 사이에 무너진 것이니까. 또한, 그렇게 살지 않은 나라들이 어디있을까. 그녀가 주장하는 전통복원이 라다크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력히 느끼게 되었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다름아닌 전통문화를 복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미래로 이끌어 나가자는 뜻 아닐까. 전통을 복원하자는 이야기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자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수천년 전부터 백여년 전까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상식이다.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진단을 해보고, 어떤 대안이 있는지 응당 살펴봐야 한다. 지금의 세계는 역사의 시간 속 어느 때보다도 빨리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과거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주변환경과 너무나도 조화롭게 살아온 과거를 말이다. 라다크는 그 변화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