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면 쉬는 게 원칙, 하지만 아침까지 비가 오지 않아 출발
비가 오락가락하며 흠뻑 젖었다.
마음을 내려놓고나니 오히려 즐거운 경험
도로 위 빗물은 하늘을 반사시켜 꼭 구름 위를 주행하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않았다.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습기도 많았다. 비가 오면 쉬어야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아 그대로 출발했다. 주변에는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산들이 보였고, 오르막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점심을 떼우고 난 뒤에 비는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주행하니 무엇인가 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도리어 좋아졌다. 빗속에서의 낭만 같은 것을 생각한 것 같다. 온몸을 휘감는 물기가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을 감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분위기. 앞뒤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흙탕물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루하루 더위에 지쳐가며, 음료의 노예가 되어 힘들었는데, 짙은 구름과 적절히 내리는 비는 고마운 것이었다. 멀리에 산도 보이고 멋진 주행이었다.

 도중에는 황산으로 향하는 도로도 만났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산이라 가보고 싶었었다. 산 자체가 너무 멋지니까. 그 교차점에서 황산은 불과 70~80km의 거리였다. 빡세게 몇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때만해도 티베트에 일찍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에 서쪽으로 채찍질 하던때라 어쩔 수 없이 넘겨지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달린 후에 슈퍼에서 음료를 하나 사먹었다. 잠시간의 휴식을 하며 옅은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비 맞으며 주행하는 것에 대단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게 좋아진 기분으로 다시 길을 나섰는데 천둥번개가 먼저 세상을 몇 번 후려감는다 싶었는데, 하늘이 소리와 빛으로 아예 지랄을 했다. 순간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온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하늘의 강한 의지를 내뿜는 듯 세찬 비가 내렸다. 와이퍼가 달려있지 않은 내 안경은 빗물로 인해 올록볼록한 렌즈가 되었고, 조금씩 노출되어 있는 피부는 따가워 견디기 힘들었다. 안경을 벗고 달려보려 했지만 눈으로 들어오는 강력한 빗줄기를 견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길가의 어떤 집 처마 밑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비를 신나게 맞고 나니 저절로 흥겨워졌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고생을 즐기는 단계인가 보다. 비가 살짝 멎을 때쯤 다시 주행하기 시작했다.

 길은 바로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그전까지 없었던 상당히 길고 높은 오르막이었다. 서쪽에서 몰아치는 빗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기란 예삿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높은 오르막을 걸어갈 순 없어 페달을 꼬박꼬박 밟으며 힘겹게 올라갔다. 심장은 조금씩 가빠지고 마음속에서는 ‘의지’가 용솟음 쳤다. 겨우겨우 오르막 끝까지 쉬지않고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마주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휴! 이맛이야!’

 금방까지 몰아치던 비는 잠잠해졌고, 하늘은 조금씩 밝아져 뭉글뭉글한 구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의 휴식 후에 약간은 가파른 내리막을 향해 달려나갔다. 도로 위로 차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힘껏 페달을 밟았다. 속도계는 50km/h를 나타냈다. ‘주르르르르’ 하고 타이어가 도로위의 얇은 수막을 걷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려 세상을 바라보았다. 얇게 깔린 도로의 물들 위로 하늘의 반영이 생겼다. 하늘나라가 위에 하나, 그리고 아래에도 하나 생긴 것이다. 빠르게 내려가는 나의 주변은 온통 하늘나라가 되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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