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운하로 접어들었다. 만든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운하와 오솔길 뿐이었다.
배도 작은 배만 다닐 수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배들.
때로는 숲이 아니라 가로수 정도이기는 했다.
물이 흐르는 다리! 들어는 봤나. 본 적은 있나. 건너는 봐나. 건설 당시에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라고 했던게 와닿았다.
마침 배가 지나가길래 한 컷. 물이 아래로 새지않다니! 수백년 전에 만든 '물다리'에서.

그 즈음 경로선택을 해야만 했다. 프랑스를 가로질러 스페인 서북부지방에서 포르투갈로 가느냐, 스페인 동북부로 들어가 스페인을 가로지르느냐. 프랑스 동부해안에서부터 내륙으로 잘 발달된 운하가 있어서 결국 프랑스를 먼저 가로지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운하는 그리스에서 만난 스페인 자전거 여행자 올가와 페르난도로부터 처음 얘길 들었다. 프랑스를 횡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동차도 없고 오직 배와 자전거만 다닐 수 있다고 했었다. 그 다음에 몇몇 여행자를 통해 그 곳에 대한 보충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좋은 곳이라고.

‘까날 두 미디’, 뚤루즈에서 지중해까지 흘러가는 운하로 230여km를 달린다. 로마시대부터 19세기까지의 토목공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이것은 17세기에 건설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과거엔 운송로로써, 현재는 관광수입원으로써 많은 수익을 지역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운하가 시작되는 agde라는 조그마한 마을에도 여행정보센터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운하에 대한 정보는 물론 운하 주변도시에 대한 정보도 다량 갖추어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센터 내부에는 운하의 사진이 몇몇 걸려있었는데 나무가 우거진 수로 위로 조용히 지나는 배가 여간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몇몇 전단지를 집어들고 운하로 접어들었다.

마을을 잠깐 헤메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입구까지 안내를 부탁했다. 들어선 운하는 참으로 조용한 분위기의 그것이었다. 폭이 15m가량 되어 보이는 운하의 양편에 자전거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소로가 나 있었다. 길 양 옆으로는 키가 큰 나무들도 줄지어 서 있었고, 등산로 같았지만 한참을 달려도 평평했다. 

그렇지만 운하의 수차를 조절하는 갑문을 만났을 때는 약간씩 올라가야 했다. 갑문은 예전 중국 이창의 ‘창 장’(양쯔강)에 설치된 ‘거쪼우 댐’ 끄트머리의 거대한 갑문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다. 중국의 그 큰 것을 본 후였기 때문에 그곳에 몰려있는 관광객들에 비해 호기심이 적었다. 갑문은 모두가 알 듯이 운하의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다. 다만 그것이 17세기에 만들어 아직도 기계식으로 동작을 한다는게 신기했을 뿐이다.

운하는 극히 조용했다. 도로와도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적었고 지나는 배도 적었다. 배들은 대부분 고급형 소형선박으로 운하위를 흘러다니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소로로 자전거 타고다니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는데 안전한 곳에서 여유롭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일을 즐긴다는 것이 대단히 부러웠다. 

하지만 19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최대규모의 토목공사라고 하는 것이 그저 관광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니 조금은 안타까웠다. 야생나무가 많지않아 그렇게 만들더라도 큰 자연훼손이 안되어 그러는지 나무가 우거지고 맑은 물이 산야에 흐르는 한국같은 나라에 그런 운하가 생긴다면 오히려 큰 손해일 것 같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운하 양편으로 숲이 대단히 우거져 있는 듯 보였는데, 가면 갈수록 나무는 줄어들었고 도로의 가로수처럼 운하의 양 옆에만 줄지어 있었다. ‘Through the nature’라고 하던 광고문구가 무색했다. 

그 밖으로는 보통 포도밭이나 다른 작물들이 심어져 있는 벌판이었다. 여러개의 갑문을 통과하니 어느새 운하는 언덕위를 굽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넓은 구릉지대의 포도밭을 바라보며 많이 쉬다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 왔고, 스페인 자전거 여행자가 알려준대로 그냥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잠을 준비했다. 바로 옆에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는 진짜 계곡도 있었기에 샤워는 아니더라도 몸을 씻었다. 바쁜 마음만 아니었더라면 하루 더 있으면서 고독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계속 생각했다. 이대로 프랑스를 횡단할 것이냐, 다시 스페인이 있는 남쪽으로 향할 것이냐. 자전거 여행이 참 불편한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만나면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다 가는 도시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아테네를 넘기고, 이탈리아의 로마까지 넘겼다. 프랑스의 파리까지도 넘겨버릴 생각이었으므로 유럽의 대도시 하나정도는 가보고 싶었다. 

도시에서 보다는 자연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훨씬 많기에 가지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인간이 만든 문화공간도 나름대로 배울 것이 있는 것이다. 결국엔 몇일전에 결정한 프랑스 횡단을 번복하고 말았다. 미리 이런 생각을 했다면 해안을 끼고 바르셀로나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을 텐데 거의 어쩔 수 없이 ‘카르카손’이라는 도시에서부터 피레네를 넘기로 했다. 유럽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알프스와 피레네, 알프스를 넘지 못했으니 피레네를 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카르카손에 거의 다 왔을 때, 너무 돌아가는 운하가 미워 주변의 국도로 자리를 옮겼다. 운하의 높이가 높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로는 계속 아래로 흘러들어가더니 결국 굉장한 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갑문.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가려는 배들이 갑문을 하나씩 내려가고 있다.
배에 탑승했던 사람들. 그냥 구경온 사람들. 사람들이 많았다.
고도차가 꽤 나는 곳까지 내려간다.
운하 옆에는 늘 오솔길이 나 있었다.
너무나 평온했던 그 길!
운하에서 바라본 풍경. 그렇다. 운하는 상당히 높은 곳에 있다. 가장 낮은 곳을 흐르는 강하고는 완전 다르다. 인공시설임이 분명했다.
정박중인 배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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