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컸다. 그런 도시에 그런 유적지가 있다는게 황당했다. 모양도 아주 이쁘게 잘 지어졌다. 보통 유적지를 보면 이게 뭔가하고 별 느낌이 없을 때가 대부분인데 그 성은 보자마자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 좀 특별했다. 그 도시에서 하루만 자고 바로 출발하려 했지만 이틀은 머물러야겠다고 결정했다. 여행안내책자 없이 여행하는 기분이 아마 그런 걸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간 곳에서 큰 감동을 얻을 때,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하는 것 보다 아무런 기대없이 찾아간 곳에서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얻는 것이 훨씬 즐겁지 않을까.
유스호스텔을 찾아야 했다. 호스텔 안내책자에 약도와 주소가 나와있었지만 카르카손의 지도가 없었으므로 조그마하게 나온 안내책자의 지도를 보고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지도를 봤지만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중심가 주변을 몇바퀴 돌았다. 그래도 유스호스텔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여행안내센터로 향했고 그곳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스호스텔의 위치가 내가 감동받았던 그 성안에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았다. 그런 유적지 안에 유스호스텔이 들어가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아무리 유적지를 소홀하게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한 일 아닌가. 반신반의 하며 성으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 시내에 없던 관광객들이 그곳엔 바글바글 했다. 사람들을 헤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매표소 없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다소 좁은 입구를 지나치니 이런!! 성벽 안쪽으로 마을이 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성의 수명과 비슷하게 오래된 건축물들이었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 음식을 파는 음식점, 또, 호텔까지 들어서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잠깐 헤메고 있으니 한 아저씨가 유스호스텔은 저기라고 알려주었다. 정말로 유스호스텔은 그곳에 있었다. 성안에 있으면 당연히 비쌀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4층정도의 적당한 높이에 내부는 돌덩이로 엮어진 오래된 것이 아니라 최근에 수리를 마쳤는지 깔끔했다. 또, 카운터의 아저씨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친동아시아적인 아저씨였다. 도시에서 느끼기 힘든 친근감을 오랜만에 느꼈다.
‘라 시테’,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성 유적지라고 한다. 많은 부분이 온전하게 유지된 까닭도 있겠지만 1844년부터 ‘비올레 르 뒤크’란 건축가가 재건을 시작하여 1960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돌의 색깔과 배열이 누가봐도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어쨌든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복구시켜 유지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성 내부의 대부분의 지역은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장사하는 건물이었지만 그 내부에 또다른 성이 있었다. 그 곳을 가기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외부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내부는 다소 초라했다. 벽돌로 엮어진 기둥이며 천장과 벽 등 내부의 거의 대부분의 시설물이 단조로웠다. 성당이나 모스크 같은 종교시설과 비교해봤을 때 대단히 검소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벽에 올라섰다. 수직방향으로 얇고 긴 구멍이 나 있었다. 대강 예상해봐도 방어용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았고, 핵심지역을 둘러볼 때 안내하는 아주머니의 설명으로 활구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의 지대도 상당히 높아 주변지역이 훤히 보이는 것으로 봐서 적의 공격에 많은 대비를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그 지역은 권력이 설치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싸움이 있었단다.
내부에서는 성의 건설에 관한 영상물도 상영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성의 건설에 관한 역사와 과학적인 설계 등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물론 프랑스어로 설명이 되니 알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파괴와 재건 등 성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